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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세르비아

세르비아 크랄레보: 펑크 선생님과 외딴 수도원 (여행 91일째)


(2016년 10월 17일 이어서...) 참새 광장에서 만난 카우치서핑 호스트 보이칸은 훤칠한 체격에 지적이고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보이칸은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면서, 펑크(Punk) 밴드의 일원이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음악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 음악 세계에 따라서 그 사람들의 철학이나 행동, 대화 주제, 분위기 등 많은 것이 달라진다. 마치 특정 음악을 즐기고 자주 듣는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듯 하다. 아니면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에 따라 듣는 음악이 달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습니까?"라는 질문을 했고, 자기가 듣는 종류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보이칸은 펑크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역사 선생님 답게 이 장르의 발생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장르와의 차이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기존에 갖고 있던 펑크라는 단어의 느낌은 검정 자켓에 머리를 스테고사우르스 등뼈처럼 세운 사람들, 약간의 사나움과 무질서였다. 보이칸의 설명을 들어보니 펑크는 기존의 복잡한 기교, 엘리트주의, 상업화된 주류 문화에서 벗어나 간단한 코드를 바탕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네 스스로 해라(DIY, Do it yourself)'를 추구한다고. 그렇게 반항적인 음악을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칸은 무정부주의(anarchism), 반파시즘(anti-fascism), 이교주의(paganism)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펑크 소년 소녀들 (source: Flickr)


(source: Wiki Commons)


대화를 나누며 따라가 도착한 곳은 보이칸과 친구들이 다용도 근거지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시티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고 작은 마당이 딸린, 일자(一字)로 길쭉한 구조의 집이다. 세로로 길쭉한 집을 따라 세로로 좁고 길게 뻗은 작은 마당에는 시든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고, 현관으로 들어가면 주방이 나온다. 주방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거실과 방이 하나 있고, 오른쪽으로는 화장실과 방이 있는데, 집이 말 그대로 일자여서, 오른쪽 끝에 있는 방에 가려면 화장실을 거쳐가야 한다. 


집구조: [방1]-[거실]-[주방/현관]-[방2]-[화장실]-[방3] 


이 집은 보이칸과 친구들이 임대하고 있는 공간인데, 임대료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세르비아의 니시에서도 혼자 살만한 작은 아파트를 구하는데 60유로면 충분하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니시보다도 작은 도시이니 그럴만 하다. 한국의 도시에서 같은 크기의 빌라나 아파트를 사려면 최소 1억 5000만원이 필요할 텐데, 그 돈이면 이곳의 임대료를 넉넉잡아 10만원이라고 해도, 1500개월동안 임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칸이 잠을 잘 곳과 난로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열쇠 꾸러미까지 준 후 떠난다. 이럴수가! 최악의 경우 이슬을 맞으며 노숙(露宿)할 생각을 하고 온 도시인데, 첫날부터 땡전 한 푼 쓰지 않고 이 커다란 집을 나 혼자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와이파이까지 있어서, 그야말로 행복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아지트의 구석구석에서는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터나 스티커를 볼 수 있었다.


오후에는 홀로 크랄레보 근처에 위치한 지차(Žiča) 수도원에 방문하기로 했다. 수도원까지 걷기에는 꽤나 거리가 멀었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한적한 소도시 외곽의 풍경이 약간 우울해 보였다. 그녀에게 선물할 예쁜 나뭇잎이 없나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걸었다. 떨어진 낙엽은 잔뜩인데, 그리고 대충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막상 집어보면 벌레가 잔뜩 먹었거나, 한쪽 귀퉁이가 뜯겨져 나갔거나, 너덜너덜하거나, 구멍이 송송 나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관심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고르려고 하니 그림처럼 완벽한 나뭇잎은 생각보다 찾기 힘든 것이었다.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다녀서 그런지, 마당을 지키던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기도 했다. 정원에 나와 앉아 있다가 인사를 건네는 노인도 있었다.


강을 건너 도시를 빠져나와 수도원을 향해 걷는다.



항상 축축한 신발을 신고 다니다 보니, 중고가게가 보이면 한번씩 눈길이 간다.


군용으로 보이는 트럭들이 수십대 주차되어 있다.



한참을 걸어 수도원 부근까지 왔다.


구글에서 확인했던 수도원 방문시간이 이미 지나있어서 큰 기대없이 왔는데, 감사하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방문객이 거의 없어 한산했다. 수도원 구역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맞은편 언덕에 있는 집과 예배당, 묘지를 방문했다. 수십개의 묘비에는 이 수도원에서 살다가 죽은 듯한 수도사들의 이름과 출생일, 사망일이 적혀 있었고, 무덤마다 꽃이 피어 있었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에는 빨래가 널려 있고 아이가 한명 놀고 있었다. 수도원을 관리하는 사람의 아이가 아닐까하고 추측해 본다. 그 옆의 사용하지 않는 듯한 예배당에는 오래된 프레스코 벽화가 남아있는데 색깔의 묘한 뒤섞임이 팝아트 초상화를 연상시킨다. 언덕을 내려와, 두꺼운 벽 사이로 뚫린 대문을 통해,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수도원 뜰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들이 특별히 눈에 띄거나 정교한 것은 아니었지만, 건물 입구 마다 그려진 빛바랜 성자(聖者)들의 그림이 아름다웠다. 평화롭고 고요한 수도원 뜰. 한 건물에서는 아카펠라로 성가를 부르는 낭랑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물로 잠시 들어가 앉아서 성직자들이 의식을 행하는 것을 보며, 홀로 경건한 기분이 된다.

수도원 근처 언덕의 가정집.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이 창고에 잔뜩 쌓여 있다.


작은 예배당의 벽화.



오래된 무덤들과 새로운 무덤들.


수도원 내부.


수도원의 대예배당 건물인것 같다.



건물 입구마다 그려진 성화가 아름답다.






수도원 근처의 상점이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버려진 듯 어둡고 조용했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종이.


굿바이 지차.


퓨쳐라마의 벤더같이 생긴 파이프 인형이 철물점을 지키고 있었다.



지는 해와 함께 오늘 묵을 둥지로 돌아와 보니, 아까는 없었던 아기 고양이 두마리가 마당에서 사료를 먹고 있다. 그리고 집에는 불이 켜져 있다. 누군가가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