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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세르비아

세르비아 크랄레보: 폭격, 전쟁, 난민 캠프, 집시 여인의 삶 (여행 93일째)

2016년 10월 19일 수요일

 

(오전 09:08)

고양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 못 내려오고 앵앵거리는 것을 구출하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나 듣던 일인데, 아기 고양이가 마당에서 기둥을 타고 포도나무 캐노피 위로 올라갔다가 못 내려와서 애처롭게 울고 있다. 나도 키가 간신히 닿아서 바둥바둥 밑으로 내려주었다. 올라갈때는 닌자처럼 그 높은 기둥을 타고 올라가더니 내려오지는 못한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일본 만화나 게임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잡동사니.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닌자 고양이 두마리.


여기서는 커피를 끓여 먹을 때 '터키식'이라고 하며 커피 콩 간 것을 설탕과 함게 끓는 물에 그대로 진하게 끓여 마신다. 커피 건더기를 거르지 않기 때문에 마시고 나면 커피잔 밑에 가루가 두껍게 남는다.

 

아침에 보야나가 차를 마시러 와서 (어제는 본인 집에 갔었음)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지난주에 크로아티아 쪽 국경에 있는 수용소에 난민들을 만나러 갔었다고 한다. 난민들은 대부분 중동(시리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부터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난민들 중에 나처럼 몸이 안좋은 사람들은 처지가 어떨지 상상도 안돼. 특히 여성들은 생리를 할 때 어떨지, 약품이나 생필품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모르겠어. 캠프에는 따뜻한 물도 없는것 같아."

 

난민들은 국경을 넘어 독일로 향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가도 크게 상황이 달라질 건 없지만 무작정 그쪽으로 향하는 것 같다. 독일에 친지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독일에 가면 모든게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마치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슷하다.

 

"여러 국가들이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건 거대한 흐름, 게르만족이나 슬라브족 같은 민족의 대이동처럼 막을 수 없는 흐름이야." 보야나가 말했다. 적십자로부터도 찬밥 취급을 받고 있다는 난민들. 그 난리통 속에서도 여성들은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뛰놀고 있다고 한다. 언젠간 두 눈으로 볼 기회가 있겠지.

 

이라크, 터키, 불가리아를 두 발로 걸어온 어떤 난민은 브로커를 통해 세르비아로 건너 오려다가 적발되어 다시 터키로 보내졌다. 하지만 다시 친지로부터 돈을 받아 결국엔 세르비아로 넘어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등의 국가들은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 철조망을 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야생동물들의 통로가 막혀서 동물들도 같이 죽어 나가고 있단다. 역시 모든 것이 (모든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난민과 닮아가는 것 같다. (불가리아 도이렌치에서 난민으로 의심을 받아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던 것처럼.) 숙식을 걱정하고, 버스 대신 걷는 것을 생각하고, 캠핑하고... 적법한 여행증서인 여권이 있다는 것은 다르지만, 모국의 상황을 피해 떠돌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친지와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무작정 다니는 것도. 하지만 결국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도 있고, 필요한 경우 쓸 돈도 통장에 잔뜩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차이점이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서양인들이 동양철학(요가, 명상, 불교, 도교 등)에 빠지는 동안 한 티벳 소년은 서양철학에 심취했다는 재미있는 기사를 보야나가 공유해 주었다. 우리는 항상 먼 곳에서 파랑새를 찾지만 파랑새는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


보야나와 베하나가 피우던 럭키 스트라이크.

  

(오후 10:00)

오전에는 비가 왔고, 고양이들이 왔다갔다 했고, 집시들도 왔다갔다 하고, 세르비아인들도 오고 갔다. 지금 맞은편에는 집시여인이 앉아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아이가 두명인 24살 여인의 이름은 베하나. 오전에 베하나가 집으로 왔고, 보야나와 나와 셋이 따뜻한 안쪽 방에 나란히 앉았다. 둘은 세르비아어로 이야기를 했다. (집시 베하나는 영어를 못했음.) 중간중간 재미있는 얘기가 있으면 보야나가 영어로 통역해 주었다.

 

사과를 하나 권하자 베하나가 자신은 사과가 싫다고 하며 사과 농장에서 일을 하던 얘기를 해주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일할 준비를 한 다음 새벽 4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오전 5시부터 점심시간 없이 13시간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일하면서 음식은 먹을 수 없지만 라끼아(독주)는 마셔도 된다고 하며, 통역해 주는 보야나와 함께 깔깔깔 웃는다. 자신의 비극을 이렇게 희화화할 수 있다는 게 멋지다.

 

베하나의 아이는 6살과 2살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천사처럼 예쁘다. 이혼 했고, 다시 결혼할 이유가 없다고 하며, 남편이 숲에 데려가서 나무를 훔치라고 재촉하며 자신은 담배를 피우던 얘기를 해준다. 이런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웃겨서 다같이 또 깔깔 웃었다. 어디서 뭘 들었는지, 독일에 가서 독일 남자를 만나면 남편이 커피를 타주고 밥을 차려주고 돈을 벌어주는 동안 자신은 디스코 클럽에 다닐 수 있을거라고 한다. 말을 이렇게 해도 집안을 싹 청소하고, 주방에 널부러져 있던 식기들과 싱크대를 정리하는 솜씨를 보면 보통이 아니다. 집시들이 놀기만 하고, 훔치고, 구걸한다는 편견은 이렇게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불가리아에서 집시노인 슈크리도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피라냐가 자신은 요리하는 동안 마리아(집시 여자친구)는 담배만 핀다고 욕을 했지만, 잠깐 피라냐와 나갔다 오니 마리아가 싹 다 치워 놨었지.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 보야나가 불평했던 것처럼 여기 남자들은 집안일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그걸 당연히 생각하는 것 같다(명절 때 한국의 아빠들처럼).

 

보야나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세르비아 농구팀에 들어가기 위해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가 이곳에서 4개월 동안 얹혀 살게 된 남자애(87-88년생)가 있었는데, 이 아프리카 소년은 엄마가 4명, 형제자매가 27명이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에 있는 동안에는 남자라서 집안일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빵을 썰어본 적조차 없어서 보야나를 분노하게 만들곤 했단다. 또 한번은 집에서 보야나가 사 둔 생리대를 봤는데, '난 저거 보기 싫으니 치우라'고 했고, 보야나한테 바로 '퍽유!' 소리를 들어야 했단다(이 얘기를 하면서도 엄청 웃었다).

 

99년도에 있던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 얘기도 들었다. 사이렌 소리, 흔들리는 건물과 굉음, 대피소, 이 모든 것이 보야나의 기억에는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베오그라드(세르비아의 수도)의 어떤 아저씨는 가족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집이 폭격을 당했다. 그 남자가 무너진 집 앞에서 '이 행운에 너무 감사하다, 너무 행복하다'고 인터뷰하던 것을 보야나가 따라하는데, 하하, 그 상황이 슬프면서도 너무 웃겼다.

 

한번은 (코소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남자가 아내에게 '이런 집도 필요 없고, 가구도 필요 없고, 삶의 조각(piece of life), 작은 삶, 생명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소리치던 것을 마을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집과 가구가 필요 없다는 말에 아내는 도대체 뭐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보야나는 그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십수년이 지나서도 기억하고, 그 삶의 순간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물론 그 남자도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겠지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수능 전 마지막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소리지르며 달려가던 때, 전역할 때, 망할 학부대학 알바가 끝났을 때 느꼈던 기분이 떠오른다. 삶, 삶, 삶, 아... 삶이여.


폭격당한 베오그라드의 건물 (출처: Flickr)


나토(NATO)가 폭격한 노비 사드(Novi Sad)의 다리와 강을 건너는 시민들. (출처: Wiki Commons)


코소보 전쟁 (출처: Wiki Commons)


코소보 전쟁 (출처: Wiki Commons)


코소보 전쟁 (출처: Wiki Commons)


오후 3시쯤에는 차를 타고 크랄레보에서 조금 떨어진 보야나 부모님 집을 방문했다. 커다란 밭과 정원이 딸린 숲속의 집이다. 이렇게 남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밥을 얻어 먹어서 좋지만 불청객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보야나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세르비아 가정식은 각종 파프리카와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였다. 어머니는 조용히 음식을 차려주셨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나는 이렇게 집으로 초대도 받았지만, 보야나의 집시 친구들은 부모님 집에 한번도 초대받지 못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전부터 같이 떠들고 놀던 베하라도, 부모님 집을 방문할 때는 자연스럽게 빠졌다.


보야나 부모님 집에서의 식사.


다시 크랄레보의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린마리아나라는 쌍둥이 집시 남매를 만났다. 남자애인 마린은 당돌하게 눈을 마주치지만 여자애인 마리아나는 쑥쓰럼을 탄다. 털실로 팔찌를 만들고 있었는데, 마린이 그걸 보더니 자기에게 선물로 달라는 손짓을 한다. 선물로 주니 팔에 차고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포즈를 취하더니 이번엔 자기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열심히 찍길래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얘네들은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없어서 사진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대신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에게 자신의 이름 '마리안 데미리'와 함께 사진을 보내라고 한다. (엄마에게 보내지는 않았다.) 베하라가 여기와서 노트북만 계속 하는 것도 자기가 집시들과 사는 집에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없어 인터넷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주로 페이스북으로 영상채팅을 하는데(글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남자들에게 메시지가 오곤 하나보다. 그러면 보야나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고, "I can't speak English(영어 못해)"라고 답장을 보낸다.


그 후에는 '니콜라'라는 세르비아인과 어떤 여자가 차례로 오고, 나와 베하라는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각자 놀았다. 베하라는 계속 페이스북을 가지고 놀고, 나는 인도 음악을 들으며 <드래곤 라자>를 읽었다. 그러다가 보야나가 난민 캠프에서 찍어 온 사진을 보여준다고 해서 다시 방으로 모였다.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사람들. 환하게 웃으며 브이(V)를 하는 여자들, 귀엽고 예쁜 아이들, 빨래하는 덩치 큰 아줌마, 난민 캠프에서 결혼한 커플,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아이, 사람, 사람, 사람들, 사람들... 


"이 남자는 바그다드에서 폭탄 테러로 아내를 잃고, 아이 둘을 안고 여기까지 걸어왔어." 보야나가 한 남자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과 테러를 피해,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자유를 위해, 어떤 사람들은 빈곤을 벗어나고자, 먼 길을 왔고, 먼 길을 가고 있다. 보야나는 사진도 참 잘 찍는다. 먼나라 지구 반대편 이야기가 아닌 손에 잡힐 것 같은 이야기가 된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까불던 집시 소년 마린.


쌍둥이 여동생 마리아나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수줍게 보여주었다.


장미꽃의 가시와 잎사귀를 섬세하게 그렸다.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하다.


베하나가 깨끗히 정리한 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