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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세르비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초특가 호스텔과 사기꾼 (여행 95일째)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크랄레보 - 베오그라드


배경음악: Caravan Palace - Black Betty


(불가리아의 기테가 자전거 페달식 발전기에 관한 글을 보내줬다. 이런게 보급되고 태양열 발전과 조합한다면 여행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공간도 꿈이 아닐텐데.)


아침. 크랄레보의 아지트에 커피와 과자 등을 좀 사다두고 떠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어제 스투데니차에 다녀올 때 회비를 너무 적게 내서(500 디나르) 모자란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보야나가 오히려 200 디나르가 남았다고 돌려주겠다고 한다. 같이 옷가게, 시장, 정육점 등에 들렀다가 (고기, 살라미 같은 것은 정말 비싸다. 혼자 있을때나마 채식을 하는게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보야나 남자친구가 일하는 곳도 구경했다. 흠쩍 젖은 거리를 걸어 돌아오니, 베하라와 또 다른 임신한 집시 여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베하라에게 커피를 얻어 마셨다. 보야나는 베하라가 밤새 라디에이터를 켜놓은 것 때문에 화가 났다. 나는 추운 거실에서 자는 동안, 베하라는 밤새 난방을 틀어 방이 더울 지경인데도 아낄 생각을 안한다고... 

 

보야나와 옷가게 구경을 왔다. 빵값을 생각하면 옷이 얼마나 쓸데없이 비싼지 알 수 있다.

 

보야나는 남자친구와 먹을 고기를 샀다.

 

정육점 고기값도 빵이나 야채값에 비하면 무시무시하게 비싸다.

 

보야나의 남자친구가 영업하는 철물점이다.

 

시장의 귀여운 아기.

 

시장의 커피콩.

 

작별의 시간이다. 보야나와 대화를 나누며 시외 버스 터미널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 공원에 있던 동상을 보더니 역사와 의미에 대해 설명해 준다. 보야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걸으면서, 꿈속에 있는 듯한, 영화의 한 장면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Waking Life>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이 영원히 깨지 않는 꿈 속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보야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그걸 재미있게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내 친구들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젊게 살려고 노력해. 하지만 난 그 모든게 피곤할 때가 있어. 내가 늙어가는 걸 느껴.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거야. 난 그걸 받아들이고 싶어."


보야나가 사준 치즈빵과 (보르그? 정말 맛있다) 요거트를 먹고 버스에 탄다. 빗방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창밖을 보며, 졸면서 버스를 따라 베오그라드로 향한다. 중간에 3-4번쯤 이 도시 저 도시에 들러서 손님들을 태웠다. 

 

크랄레보의 공원에 있던 동상. 어떤 혁명, 민중의 저항을 나타냈다는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보야나가 가는길에 먹으라고 사준 치즈빵과 요거트. 지금 당장 크랄레보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중간에 다른 도시의 버스 터미널에 몇번 들렀다.

 

오후 4-5시쯤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축축한 도시. 담요를 뒤집어 쓰고 빗속을 돌아다니는 집시들.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이 복잡하게 사방팔방 위아래로 뻗은 길들. 약간 헤맨 후에야 호스텔 근처의 맥도날드를 찾았고, 좀 더 헤매고 나서야 숙소를 찾았다. 호스텔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와이파이를 찾아 인터넷을 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오늘 아침 거의 80% 할인으로 올라온 호스텔. 얼떨결에 예약을 하고, 오면서도 뭐가 잘못된 건 아닌가 했는데, 얼마 후 집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오셨고, 3.15유로를 내고 방을 배정 받았다. 이 가격에 개인실이다. 손님도 나와 로니라고 하는 싱가폴 여행자 단 둘 뿐이다. 로니는 1년째 여행중이라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여행자들이 많다니. 참 신기하군. 

 

길거리의 벽면은 야쿠자 아저씨 팔뚝을 뒤덮은 문신처럼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었다.

 

 

 

고 비건!

 

맥도날드를 기점으로 호스텔 가는 길을 찾았다.

 

다시 방문하지 않는 한, 내 기억속 베오그라드는 언제까지고 축축할 것 같다.

 

호스텔에 도착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행히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적혀 있어서 편하게 와이파이를 썼다.

 

 

환전과 기차표 구입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기차역의 표 끊는 아주머니가 영어로 말하신다. 아... 러시아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기차표를 끊으니 딱 신나게 군것질할 정도의 돈만 남았다. 엄청 크다는 성 사바 대성당(The Serbian Orthodox Church of Saint Sava)을 구경하기 위해 가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온다. 안경쓰고, 마르고 작은 체격에, 배낭을 앞뒤로 맨 청년이 영어로 말을 건다. 

 

"이런 상황이 엿같이(fucking) 싫지만, 버스표를 샀는데, 시간을 놓치고 환불을 못받았어. 아오 썅.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구걸한다는 상황이 정말 개같네. 엿같아. 버스 시간이 40분 남았는데, 버스표 살 11유로를 얻을 수 있을까?" 욕설을 무지 섞어가며 어눌한 영어로 말하는 상황을 대충 들어보니, 루마니아에서 직업을 찾아 왔는데, 일을 못하게 되었고, 돌아갈 돈도 없다고 한다. 


휴... 그래. 나도 여행하는 입장이고, 저런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3유로짜리 호스텔에 묵고 1유로로 하루 한끼를 떼우면서도 11유로를 내주기로 한다. 하지만 유로도 없고, 디나르도 없으니 일단 같이 환전을 하러 간다. 가는 길에 걱정이 되어 버스시간이 몇시냐고 물어보았는데, 대답을 안하더니, 우리가 5분정도 같이 있었으니 35분 남았다고 한다. 그럼 7시 30분 버스냐고 물어보니 다시 대답이 없다. 늦은 것 같아서 일단 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자니까, 국제선이라 에이전시를 통해서 표를 사야 된다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 일단 근처에 보이는 환전소에서 달러를 디나르로 (20달러 = 2232디나르) 환전했다. (이 순간까지 이 친구를 굳게 믿음.) 환전소에서 2000디나르 짜리 지폐를 받아서 돈을 다 줄수는 없고, 같이 가서 버스표 값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 돈을 바꿨냐고 물어본다. "응, 돈 바꿨어. 버스표 사러 같이 가자," 라고 말하니 "안그래도 지금 모르는 사람한테 돈 달라고 하는 상황이 엿같은데 의심까지 하는거냐"며 너무 당황스럽다고 한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가판대에 가더니 2000디나르짜리 지폐를 잔돈으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본다. 가판대에서는 잔돈을 바꿔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내가 같이 가서 돈을 내주는게 문제냐고, 왜 니가 기분이 나쁜거냐고, 지금 빨리 버스 타는게 중요한거 아니냐고 말하니, 처음 말을 걸어올 때처럼, 엿같네(fucking) 풔킹 어쩌고 저쩌고를 중얼거리며 가버린다.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명백한 사기꾼이지만, 그때의 기분은... 왜냐면 11유로는 엄청 큰 돈이고, 나도 큰 결심을 하고 도와주기로 한건데 저런 반응이 나왔으니... 게다가 다시 (이제 쓸모없는) 디나르를 달러로 바꾸려니 환전 수수료가 아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디나르를 유로로 (1860디나르 = 15유로) 환전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전소에서 거스름돈으로 100디나르를 덜 준다. 그것도 못 알아차리고 있다가 (좀전에 사기꾼을 만난 것 때문에 정신없어서) 한참 계산을 해본 후에야 돈이 안맞고, 손에 있는 돈이 달랑 40디나르여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환전소 여자에게 약간의 추궁을 한 후 100디나르를 더 받았다. 별말없이 100디나르를 주는 걸 보면 일부로 덜 줬던것 같다. 참 씁쓸하다... 그래도 두번 다 당하지 않고, 망할놈의 소중한 자금을 지켜내서 자랑스럽군. 물이 새들어 오는 신발 속 젖은 발로 시내를, 좀 더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다닌다.

 

반짝반짝 맛있게 빛나는 빵들. 이 빵집은 좀 비싸서 구경만 했다.

 

무슨 싸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지, 어두운 광장에 수십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갈 땐 몰랐는데, 빵을 사고 나서 보니 저녁시간에는 반값에 빵을 판다는 내용이었다. 빵을 싸게 사서 돈을 번 기분이 들었다.

 

빵은 기름지고 맛있었다.

 

축축한 밤거리.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애정을 도시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비오는 날 쓰레기봉지를 뒤지는 건 비참하다.

 

24시간 편의점 샵&고. 가게 이름이 "쇼핑하고 나가" 라니.. 가격도 꽤 비쌌다.

 

호스텔에 돌아오니 싱가폴 여행자 로니가 커피를 권한다. 따뜻하고 달다. 로니가 바나나도 하나 권한다. 바나나는 나도 한다발 사다 놔서 사양했다. 이곳 사람들이 커피 마시는 걸 보면... 슈퍼마켓에서는 커피믹스를 낱개 단위로 팔고 (오렌지맛, 바닐라맛 등이 있었음), 호스텔 주방에는 누군가가 갖다 둔 커피 믹스가 달랑 2-3개 있다. 커피믹스 하나, 커피 한잔의 소중함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사무실, 학교, 집 찬장에 수십개씩 쌓여 있어도 몸에 안좋다고 (싸구려 맛이라고) 안 먹는건데 여기서는 기회만 있으면 마시는 걸 보면... 마치 훈련소에서 먹던 초코파이와 비슷하다.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가 어디선가 신라면을 한 봉지 꺼내더니, 끓이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지난번에 왔던 한국 손님이 주고 갔단다. 물조절을 하고, 스프를 먼저 넣고, 계란과 함께 라면을 끓여 주었다. 덕분에 라면도 조금 얻어 먹었다. 그리고 조그만 혼자만의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갈색 책 표지가 맘에 든다.

 

3유로짜리 나만의 공간.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에게 라면을 끓여드리고 좀 얻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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