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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중국

중국 시닝: 젊은 여행자들과 길거리 장사 (여행 19-20일째)

2016년 8월 6일 칭하이성 시닝


배경음악: 庾澄慶 - 情非得已


[등장인물] 

치준: 카우치서핑 호스트. 체구가 작은 예술가.

두오두오: 치준이 키우는 새끼 고양이.

퍄오퍄오: 청두 출신 카우치서퍼. 까까머리 여자애. 노래를 잘하고 나무로 장신구를 만들어 판다.

제시카: 광둥 출신 카우치서퍼. 인도에서 요가를 공부하고 있다.

뤼루: 시닝에 사는 치준 친구. 티베트 소녀 느낌이 난다.

에이린: 싱가포르에서 온 여행자. 치준네서 묵고 있는 손님.


1. 아홉시가 넘어서 여유롭게 일어난 다음, 씻지도 않고, 똥도 안싸고(이렇게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에서도 화장실은 재래식이다), 거실에 나와서 버벅거리는 인터넷으로 카자흐스탄 기차표(알마티-아스타나 구간)를 알아본다. 기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번역기도 돌리고, 링크도 누르고, 카자흐스탄 호스트에게 물어봐 가면서 몇 시간 만에 겨우 결제 화면까지 갔는데... 결제가 안된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다른 여행사 사이트에서 알아봐 줬는데 가격이 5-6배 비싸다.


2. 퍄오퍄오가 히치하이킹을 하라고 부추긴다. 그래, 나도 애초에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으로 길을 떠난건데 왜 안하고 망설이고 있지? 퍄오퍄오는 하도 히치하이킹을 많이 해서, 사람들의 똑같은 질문에 대답하고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게 질려서 일주일 동안 걷거나 기차를 탔단다.


3. 오후에는 까만 엄지 손톱의, 티베트 소녀처럼 생긴 치준 친구 뤼루가 빨래하고, 청소기 돌리는 걸 도와주고, 야채면을 대접 받았다. 이층침대를 새로 서너개 설치하는 걸 도와주고, 화단의 자갈돌을 치우고, 아주 보람있게 하루를 보낸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도와줄 일이 있고, 아기 고양이도 있고, 여기 있는게 너무 편하고 좋다. 그렇게 시원하게 오후를 보내다가, 퍄오퍄오와 에이린과 버스를 타고 시내 광장으로 나가서 시닝 사람들이 춤추는 걸 구경했다. 퍄오퍄오의 부추김에 뱅글뱅글 도는 춤 무리에 끼어들어 두 바퀴 정도 춤을 따라해 보지만 무지 어렵다! 퍄오퍄오와 에이린은 열심히 춤을 따라 추고 나는 무리에서 나와 춤을 감상한다. 남자, 여자, 늙은 사람, 젊은 사람, 모두가 자유롭게 광장에 모여 춤을 추는 문화가 너무 멋지다. 시닝이 점점 더 좋아진다. 어느 도시에 가도 아름다운 여인들, 귀여운 아이들, 주름진 노인들이 있고, 시장통과 돈을 달라고 쫓아오는 꼬마들이 있다.


4. 치준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근에 0.8위안짜리 수박과 한 근에 4위안짜리 포도를 사와서 수박을 얼굴에 바르며 먹는다. 다같이 TV앞에 앉아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인도에서 2년 동안 요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제시카를 만났다. 제시카는 광둥 출신인데, 인도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인도 여인같은 느낌이 난다. 제시카가 막 다녀온 칭하이의 차카염호(茶卡盐湖), 칭하이호(靑海湖)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


2016년 8월 7일 치준집 거실


5. 퍄오퍄오가 일기장과 노트를 보더니, 한글을 제멋대로 장난스럽게 해석한다. "오늘은 이상한 중국인들을 만났다. 너무 무섭다" 혹은 "여행 규칙 1. 처음보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다 같이 낄낄대고 웃는다. 하하하. 나만 빼고 모두들 중국어를 하기에 중국어 대화의 한 가운데에서 귀머거리처럼, 혹은 어른들이 대화하는 곳에 끼어 있는 꼬마아이처럼 무관심하게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즐긴다. 


6. 아침에는 화방에 물감을 사러 치준, 제시카 등과 함께 나갔다. 치준이 물감 색깔과 가격을 알아보는 사이, 화방 한 쪽에 놓여 있는 붓을 잡고 글씨를 써보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된다. 같이 있던 여자애가 붓을 잡더니 글씨를 쓰는데 너무 잘쓴다. 시안에서도 그렇고... 중국인들은 서예를 기본적으로 잘 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할일 없는 한량들처럼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게 너무 좋다.


7. 오후에는 퍄오퍄오가 만든 나무 목걸이와 팔찌를 팔러 제시카와 에이린과 넷이서 시장에 나갔다. 청두에 있을 때 나무를 직접 고르고 기계를 이용해서 만든 장신구들인데 쿤밍(昆明)에서 팔 때는 한시간에 700위안(거의 12만원!)어치도 팔았다고 한다. 시장통에 자리를 깔았지만 경찰이 자리를 못 깔게 한다. 그 근처에서 자리깔고 장사하던 아주머니도 경찰이 오면 골목길로 숨었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했다. 우리도 골목길로 옮겨서 자리를 깔았다(시장통에서 한 발자국만 골목길로 들어가니 경찰이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잡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걸이와 팔찌를 구경하러 오고, 나무로 만든 건 냄새를 꼭 맡아본 다음 어떤 나무인지를 물어본다! 우와... 여기에도 전문가들의 세계가 있는건가?! 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사람들이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쿤밍이나 티벳에서는 관광객들이 많아 비싼 가격에도 잘 팔렸다는데, 여기는 가난한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것 같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약간 패잔병 기분도 들고, 조바심도 났지만 별 도리없이 알밤이나 까먹으며 앉아 있었지. 한편 맞은편의 호두장수 아저씨와 과일파는 아줌마는 물건을 잘 팔았다.


8. 장사는 망했지만 기분 좋게 돌아와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읽는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괴담과 경험담들이 많다. 퍄오퍄오가 카우치서핑 경험을 얘기해 준다. 태국의 꼬따오(Ko Tao)에 사는 29살의 프랑스인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있는데, 호스팅을 많이 해서 꽤나 유명했다고 한다. 퍄오퍄오도 실제로 만나봤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자유롭고, 따뜻하고, 성자(聖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집에서 팔을 뒤로 묶고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고 자살한 것으로 매듭 지어졌으나(관련기사), 퍄오퍄오의 생각에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중국 남자애와 여행하다가 한 흑인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는데, 중국 남자애가 잠들어 있는 사이, 흑인 호스트가 외롭다며 끈질기게 같이 자자고 했던 일이 있었단다. 사실 중국 남자애는 깨어 있었는데, 무서워서 자는 척 하고 있던 거였고, 퍄오퍄오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한 후, 중국 남자애에게 전화를 계속해서 무사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도, 대부분 카우치서핑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지금도 열심히 카우치서핑을 하고 있다.


아침의 두오두오


시닝의 춤추는 풍경



알록달록한 빨래


화방에 걸린 초상화들


시닝 시내에 나온 티베트 불교 승려들



단속을 피해 들어온 골목길. 우리 맞은편에서 장사하던 사람들.


사진 더보기: 2018/08/18 - [사진첩] - 2016년 8월 6-7일 중국 시닝(西宁)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