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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중국

중국 시닝: 아기 고양이와 사찰 (여행 18일째)

2016년 8월 5일 시닝(西宁) 치준네 집 32층 거실


배경음악: 夢回蘭若


[등장인물]

치준: 카우치서핑 호스트. 체구가 작은 예술가.

두오두오: 치준이 키우는 새끼 고양이.

퍄오퍄오: 삭발하고 다니는 중국 여자애. 노래를 잘하고 나무로 장신구를 만들어 판다.


1. 천국과 지옥 사이를 하룻밤 사이에 왔다갔다 하는구나! 지금 여기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따스한 햇살에, 파란하늘과 구름, 귀여운 아기 고양이, 머리를 빡빡 민 재미있는 여자아이, 따뜻한 물과 차가 있다. 영혼이 맑아지고, 걱정이 없어지고, 나른해진다. 반면 어젯밤에는... 죄책감과 피곤함 속에서 잠을 청하다가, 밤새 이상하고 우울하고 무서운 꿈과 현실을 오고갔다. 기차가 중간중간 심하게 덜컹거렸는데, 꿈속의 사람들이 기차를 따라 달려와 선로에 뛰어들고 기차가 사람들을 치자 피가 튀기며 기차가 흔들렸다. 죽고 싶어하는 마음과 살고 싶어하는 소망들의 혼돈 속에서,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기차는 밤새 달렸다. 눈도 제대로 못뜨고 약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을 못차리며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아오자 구름 빛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멀리 떠오르는 동쪽 하늘의 햇살을 기차 뒷편으로부터 받으며, 창밖을 지나치는 신비한 산들과 현란한 빛깔의 하늘 바라봤다.


2. 버스를 타고 시닝의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치준네 아파트를 찾아간다. 치준은 집에 없지만 친구들이 집에 있다고 해서 동·호수를 찾아 문을 두드리지만 응답이 없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 포기한 채로 집주인을 더 기다려보다가 다시 문을 두드려보니 백인 남자가 문을 열어준다. 집안에는 프랑스 남자, 독일 커플, 머리를 삭발한 중국 여자애가 있었는데, 4명 다 자느라고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들었단다. 수염을 잔뜩기르고 왜소한 체구의 프랑스 남자는 커다란 배낭에 텐트와 매트를 싸매고 나가려던 참이어서, 독일 커플과 나까지 다같이 나왔다. 키르기스스탄까지 히치하이킹을 한다는 프랑스 남자를 기차역에서 먼저 보내고, 독일 커플과는 맛있는 라떼가 있다는 카페에 함께 간다. 독일 여자가 발랄하고 친절하게 말을 잘 걸어줘서, 집주인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시닝에 대해서도 얘기하다가, 둘은 기차역으로 가고 나는 치준네 아파트로 걸어 돌아온다. 문앞에 열쇠가 있었고 들어오니 아기 고양이 두오두오와 또다른 카우치서핑 손님인 퍄오퍄오가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느긋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3. 오후에는 독일커플이 알려준 산과 사찰(土楼观, Tulou Temple)로 향한다.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맘편히 앉아 창밖의 멋진 하늘을 즐기며 달린다. 날씨가 선선하고 바람도 불고 좋다.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히잡을 쓰고 다니는 소수민족 여성들, 턱수염을 기르고 빵모자를 쓴 남성들을 구경하며 상가와 시장 거리를 지나 기차역에 도착한다. 기차역에서 기찻길을 따라 서쪽으로 꽤나 걸어야 했지만, 산에 올라 내려다 본 도시와 하늘, 구름, 햇살, 저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은 한숨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버스가 끊겨 걸어 오느라고 꽤 늦게 돌아왔는데 집주인 치준은 아직 안 왔다. 차를 좀 마시고 있자니 치준이 돌아왔다. 조용하고 차분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장난꾸러기 기질이 있는 친구다. 기분 좋게 꾸며진 아파트에는 적어도 열 개는 넘어 보이는 침대를 갖다 놓았는데 정작 집주인 본인은 거실 소파에서 잔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카우치서핑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중국인 카우치서핑 손님들도 많았다), 어떤 사업이나 개인적 목적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편안하다. 김씨 같은 느낌이다. 퍄오퍄오는 계획이나 걱정없이 자유를 즐기고, 돈이 떨어져 가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나무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어 팔고, 우쿨렐레를 연주하며(2개월 전에 시작했다는데 잘한다) 여행하는 아이다. 집을 나오니 사방이 대단한 사람들이고 배울 것도 많다. 캄캄한 밤, 셋이서 나가서 시내를 걸으며 식당을 찾다가, 가격이 싼 무슬림 식당에서 잡탕같은 것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수박을 파는 트럭에 사람들이 몇 명 몰려서 진지하게 수박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도 수박을 살 생각으로 가보니, 수박장수가 경건한 모습으로 수박에 칼집을 내 한 조각을 꺼내고 있다. 하지만 수박 조각을 본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떤 말을 내뱉고,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맹탕인가 보다.



두오두오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시닝(西宁)


산 위에 있던 탑


사진 더보기: 2018/08/17 - [사진첩] - 2016년 8월 5일 중국 시닝(西宁)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