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러시아

러시아 사마라행 열차: 카드게임과 입국심사 (여행 36-37일째)

2016년 8월 23일 사마라(Samara)행 열차


[등장인물]

알리: 아스타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다니옐: 열차의 맞은편 자리에 탄 카자흐 승객.

바샤: 같은 객실에 탄 러시아 소년. 폴리나의 오빠.

폴리나: 같은 객실에 탄 러시아 소녀. 바샤의 여동생.


배경음악(새창): Final Fantasy VI - Phantom Train


1. 알리 어머니가 기차역에 데려다 주시면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이 사람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사마라(Samara)까지 가요. 러시아어를 못 하니 잘 좀 챙겨주세요"라고 부탁하신 덕분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챙겨 준다. 그 중 서툰 영어로 자신을 다니옐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나와 마주 앉는 좌석이다. 핸드폰의 번역기를 이용해서 질문과 자기소개를 한다. 다니옐은 1989년생인데 이미 4살 딸과 2살 아들이 있고 카자흐스탄 열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오늘은 승객으로 열차에 타고 있지만 평소에는 열차 운행을 한다고). 다니옐이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잘 어울리는 덕분에, 나도 객실 사람들과 금새 친해졌다. 비록 대화는 안 통하지만...


2. 기차의 3등석 침대칸은 무더웠고, 책을 읽기도, 잠을 자기도, 앉아 명상하기에도 어딘가 불편했다. 다니옐은 땀을 뻘뻘 흘리더니 좌석 위로 올라가서 잔다. 그나마 다니옐이 인사시켜준 꼬마 승객들이 동무가 되어줘 외롭지 않았다. 귀여운 러시아 남매 바샤(Vasya, Vasiliy의 애칭)와 폴리나(Polina)가 러시아 카드게임을 가르쳐 주지만 몇 번을 해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카드 가져가세요. 싼 거에요." 카드 게임이 끝나고 카드 그림을 보고 있자 바샤가 말한다.


13살 쯤 되어보이는 잘생긴 바샤는 같은 열차칸에 있는 승객 중 영어를 가장 잘 한다. 1300불 짜리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서 아빠 일을 도와 드린다고 한다. 


"아빠 일을 10시간 도와 드리면 14달러 정도를 받아요. 이거 많이 받는거에요 아님 조금 받는거에요?"


폴리나에게 과자를 권하자 부블릭(Bublik,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과자나 빵)은 먹지 않더니, 달달한 와플(waffle, 웨하스 같은 과자)은 맛있게 잘 먹는다. 애들이 과자를 맛있게 먹으니 행복하다. 폴리나가 무심하게 머리를 땋는 모습이나, 친척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2016년 8월 24일 열차


3. 새벽에 국경을 건넌다. 카자흐스탄에서 출국 도장을 받는 데에도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러시아에 넘어와서는 거의 한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다. 군복을 입은 두 명과 정장 차림의 남자가 군견 한 마리와 객실에 올라탄다.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 러시아를 통해 유럽은 왜 가는지, 돈은 얼마를 가지고 가는지, 왜 세계여행을 하는지, 러시아의 친구는 알게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어보고, 여권에 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모든 국가들을 세세히 검토한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사용한 배, 기차, 버스 티켓을 모두 확인하고, 러시아 내에서 사용하는 전화번호와 VK(러시아에서 사용하는 페이스북 비슷한 소셜네트워크) 프로필, 마지막에는 페이스북 이름까지 물어본다. 계속해서 질문을 띄우던 핸드폰의 번역기에 마침내 "Happy journey(행복한 여행되시오)"라는 문자가 뜨자, 우리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4. 기차 안에는 바샤와 폴리나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아이는 체스판에서 대각선으로 이동해 말을 따먹는 게임을 무척 잘 했는데,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온 몸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개구쟁이 녀석이다. 폴리나와 바샤가 계속 말 따먹는 게임에서 지고, 개구쟁이가 거만하게 우쭐대자 바샤는 화가 났다. 나도 한 판 도전해 봤지만 철저하게 발렸다.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러시아인이건, 두건을 쓰고 꽃무니 치마를 입은 흑발의 카자흐인이건 간에 덩치들이 크시다. 이 빼빼마른 꼬마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커지겠지?


5. 기차에서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아서 여행 동안 속이 편안하기를 바랐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기차 시간표를 보면 어느 역에서 몇 분 동안 정차하는지가 나와 있고, 오래 정차하는 역에서는 사람들도 많이 내렸기 때문에, 기차역 두 군데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여기도 화장실이 '쪼그려 싸(재래식 변기)'인데, 물을 내릴 때 변기가 제대로 씻기지 않아서 두 번 다 변기를 솔로 닦아야 했다.



열차 3등칸 풍경


뜨개질 하는 러시아 아주머니와 예쁜 카자흐 아가씨. 카자흐 아가씨는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해서 옆에 앉아 셀카를 찍어 보내줬다.


열차는 러시아의 오르스크(Orsk)역에 잠시 정차한다


러시아의 열차 승강장 풍경


기차역에 파는 간식거리들


50루블은 1000원 정도 된다


기차역의 개


오렌부르그(Orenburg) 역에서도 40분간 정차한 기차


오렌부르그(Orenburg) 풍경


열차 모습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역에서 식음료를 파는 아주머니들


개구쟁이 꼬마와 게임을 하는 폴리나. 개구쟁이의 압도적인 승리.


신이 난 개구쟁이 꼬마


바샤가 폴리나의 사진을 찍으며 '폴리나는 포켓몬 걸' 이라고 한다. 사랑스러운 러시아 남매 덕분에 기차 여행이 지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