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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노베 잠키: 공동묘지와 뉴캐슬의 할로윈 (여행 105일째)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슬로바키아 스투로보 (Štúrovo, Slovakia)

날씨 매우 좋음


배경음악 듣기(새창): 잭-오-랜턴


강을 건너왔다. 환전소가 여럿 보인다. 슬로바키아 쪽 도시 이름은 스투로보라고 한다. 지금은 텅 비어 있지만 성수기에는 관광객이 꽤 있는지, 시티 센터가 잘 꾸며져 있고 곳곳에 안내판도 보인다. 시티 센터를 지나 공동묘지에 가 본다. 오, 공동묘지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 할로윈 때문인지 사람들이 이미 많이 와서 꽃, 양초, 초를 담는 유리병을 무덤가에 갖다 두었다. 햇살 아래에서 꽃들과 유리병이 반짝반짝 빛난다.


도심에서 스투로보 기차역까지 행진을 시작한다. 기차역은 도시에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꽤나 걸어야 했다. 기차역에서 다음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있는 도시인 노베 잠키(Nove Zamky)로 가는 기차표를 끊는다. 노베 잠키는 스투로보에서 50km 정도 떨어져 있다. 걸어가자면 하루에 8시간씩 이틀에 걸쳐 가야 할 거리지만, 기차표 값은 딸랑 2.1 유로다. (나중에 네덜란드에서 2.1 유로는 전철표 값도 안되더라.) 


기차는 깔끔하고 사람들이 없어 조용하다.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와 와이파이까지 있다! 와이파이에 접속하니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난민 지원 단체 '지구 난민(Earth Refugee)'의 담당자에게 메일이 와 있다. 얼마 전 온라인으로 봉사활동을 신청했는데, 내가 지원한 분야인 영어교육, 사무지원, 농사, 건축, 요리 분야의 구체적인 경험을 알고 싶다고 한다. 특별히 잘하는 부분이 없어서 대부분의 항목에 체크해서 보냈다가 난감하게 되었다. 


예쁘게 꾸며진 스투로보 마을. 할로윈 호박 잭오랜턴(Jack-o'-lantern) 모형이 도로를 장식하고 있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시티 센터.


슬로바키아의 부동산 정보. 커다란 집 한채가 15000-30000유로(한화 약 2000-3500만원)다. 한국 집값의 10분의 1 꼴이다.


공동묘지에 들어왔다. 공동묘지에는 보통 예배당 건물이 하나씩 있다.


젊은 여자의 무덤인듯 하다. 갓 가져다 놓은 듯한 노란 꽃과 램프로 뒤덮혀 있다.


이 무덤은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무덤으로 보인다.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은 아직 살아있는것 같다.



공동묘지를 나와서 기차역까지 꽤나 걸어야 했다. 가을 들판이 아름답다.


기차역에 도착했다. 한적하다.


기차 내부 풍경. 표값은 싼데 시설은 훌륭하다.


슬로바키아 노베 잠키(Nove Zamky)


짧은 기차 여행이 끝나고 노베 잠키에 도착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노베 잠키는 뉴 캐슬[new castle], 즉 '새 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차역 앞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슬로바키아의 첫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 라스타(Rasta)가 기차역으로 마중 나왔다. 라스타는 키가 크고 빼빼 마른 체구에 선한 눈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면서 라스타의 집으로 함께 걸어간다.


노베 잠키 역의 노숙자로 보이는 남자.


"여기서 누구에게 집시라고 하는건 심한 욕이야. 그래서 네가 보낸 카우치서핑 요청 메시지에 '안녕 젊은 집시(hello, young gypsy)'라는 말을 보고 깜짝 놀랐어." 라스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내가 카우치서핑 프로필에 집시라는 말을 적어 놓았더라구."


라스타의 카우치서핑 프로필 중 인생철학(philosophy) 항목에는 노래 가사에서 따온 "난 집시처럼 길에서 살아. 한 장소에 머무는 건 정말 개떡같거든. (I'm living on the road just like a gypsy, cuz staying in one place fucking shits me.)"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적어 놓은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스타의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어머니 성함은 카타리나, 아버지 성함은 미로라고 한다.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검정색 액체가 든 페트병을 꺼내 유리컵에 음료를 따라주신다.


"이건 코폴라(kofola). 슬로바키아 전통 콜라야. 마셔." 아버지가 조금 서툰 영어로 말했다.


코폴라. 이름도 콜라와 얼추 비슷하고 색깔도 달콤함과 시원함도 비슷하지만 색다른 향이 난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인기가 많다고 한다. 러시아의 크바스가 생각났다. 


점심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지금 닭고기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혹시 고기 먹니?"라고 물어보신다. 어라? 보통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채식하는 손님들이 가끔 왔었나? 나는 괜히 일을 복잡하게 하지 말자는 생각에, "네, 먹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알고보니 라스타는 비건(완전채식인)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기를 먹지만 비건인 아들을 위해 항상 따로 요리 재료를 준비해 두셨다. 이런이런... 이미 요리는 나왔고, 고기를 먹는 것보다 싫은건 음식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라스타가 두부 요리를 먹는 동안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닭가슴살 요리를 먹었다. 아! 이 겁쟁이. 그냥 솔직히 고기는 먹기 싫다고 말해도 좋았을걸. 


노베 잠키의 시티 센터로 산책을 나왔다. 중앙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우측에는 협동조합 건물이 보인다.


딱히 볼만한 것은 없는 도시였지만 마음편하게 라스타를 따라 다니며 걷는것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사방에 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있었다.


라스타와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와 라스타 방 소파에 앉아서 쉰다. 여기는 손님방이 따로 없어서 라스타 방을 함께 써야 하지만 라스타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줘서 불편하지 않다. 어머니가 방에 들어와 얼마전 핀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했던 여행 사진을 보여주신다. 슬로바키아에 비해 핀란드는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쌀텐데! 어머니는 핀란드 여행이 너무 좋으셨는지 사진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거기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셨다.


라스타의 여행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라스타는 친구들과 히치하이킹을 많이 했는데,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노래를 하는 동안 라스타는 저글링을 하면서 운전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단다. 여행하며 배우기 시작했다는 저글링 솜씨는 상당했다.


"너도 한번 해봐." 라스타가 풍선에 쌀을 넣어서 만든 저글링 공을 건네며 말했다.


저글링을 볼 때마다 막연히 '엄청난 연습을 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내가 직접 배워볼 생각은 못 했는데, 라스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먼저 한 손으로 공 두개를 던졌다가 받는 연습을 해봐. 공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원을 그리면서 하면 쉬워." 라스타가 시범을 보여주며 말했다.


특별히 할일도 없겠다. 묵직한 쌀주머니 두개를 들고 하나씩 하나씩 공중으로 던져 본다. 그리고 첫번째 던진 공은 이쪽 멀리 두번째 던진 공은 저쪽 멀리 요란하게 떨어진다. 역시 난 소질이 없는 것이다. 연습해 볼 필요도 없겠다! ...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할일도 없어 계속 그 바보짓을 반복했다.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손을 으익으익 거리기를 수십차례... 신들린 것처럼 공을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받아냈다. 하! 이 짜릿한 기분 때문에 저글링을 하는 것인가! 라스타가 씨익 웃으며 "오, 이제 감을 잡았네"라고 말했다. 하지만 머쓱하게 웃으며 던진 다음 공들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가고 나는 다시 어버버버 하며 공들을 놓친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 아버지, 라스타와 함께 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오늘은 할로윈. 미국에서는 (그리고 요즘 한국에서는) 코스튬 하고 노는 날이지만, 여기서는 좀 더 진지하게 할로윈을 보내는 것 같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 공동묘지 주변에는 많은 방문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차에서 내려 유리등과 꽃을 가지고 공동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오전에 스투로보의 공동묘지에서 봤던 것처럼 무덤 하나하나 마다 여러개의 양초, 촛불 덮개, 꽃들이 놓여 있었다. 어둠 속에 떠 있는 빨간 유리병 속 촛불들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 같기도 했고, 밤바다의 어선같기도 했다. 왠지 몸이 붕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라스타의 가족이 친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유령처럼 공동묘지를 떠 다녔다. 진정한 할로윈이다.



공동묘지 방문이 끝난 후에는 라스타와 농구를 하러 갔다. 라스타의 친구 한명이 차를 끌고 데리러 왔다. 농구는 오랜만인데... 창피당하지 않으려나? 농구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운동하러 온 다른 사람들과 팀을 짜서 반코트로 경기를 시작했다. 골은 잘 안들어가지만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인다. 한시간 정도 뛰고 나니 체력이 바닥났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어울려 놀았다는 뿌듯함에 씩 웃으며 함께 경기한 사람들과 작별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경기장을 나오려는데... 엇? 핸드폰이 없다.


누가 옷에 있던 것을 가져간건가?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뒤지자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쳐다본다.


"여기에서 핸드폰 같은 것 못 봤어요?"


농구 코트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모두 고개를 젓는다. 자, 침착해. 핸드폰이 없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까지 찍은 사진은! 이제 은행이랑 지도는 어떡하지? 지출 관리는? 농구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소매치기로 보인다. 자, 평정심, 평정심...


"차에 두고 온 것 아닐까?" 라스타의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차에도 핸드폰은 없었다. 다시 농구장으로 들어가 코트 주변을 서성거리지만 아까 없던 핸드폰이 갑자기 생겨날 리가 없다. 가슴이 답답하다. 왜 농구장에는 와가지고. 라스타에 대한 원망감도 들었다. 왜 농구장에 오자고 해서...


"혹시 집에 두고 온 것 아니야?" 라스타가 말했지만 나는 분명히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망했다. 하지만 절망스런 분위기를 만들기 싫어서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한다.


그런데...


라스타가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에게 확인해 보니 내 핸드폰이 집에 있다고 한다. 사람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악한지... 아마도 운동하러 간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오고서는 가지고 왔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밤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생쇼를 하고,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원망했다는게 참 민망하다. 마음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생각보다 한참 낮은 나의 수준에 처참한 기분이 든다. 공짜로 얻은 핸드폰 하나를 잃어버리고 이렇게 마음이 뒤집히면서, 가족의 죽음, 난치병, 재산 상실 같은 사고를 겪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할까?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처럼 모든 일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은데, 나의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차이가 난다! 피곤하군. 이런 멍청하고 이기적인 인간을 사랑으로 대접해주는 라스타와 가족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