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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니트라: 갈보리 언덕, 소녀시대, 베테랑 히치하이커 (여행 107일째)

2016년 11월 2일 수요일

슬로바키아 니트라(Ni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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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에서 이어서...)


배경음악(새창): Mariage d'Amour


라스타 가족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어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나의 만남과 헤어짐이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만남과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향하는 도시 니트라는 슬로바키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인구는 약 8만명으로, 한국에서 80번째로 큰 도시인 강원도 속초시 정도의 규모다. 인구가 약 500만명인 슬로바키아는 한국에 비해 인구가 10분의 1 정도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인구가 약 42만명으로 서울(약 1000만명)의 20분의 1 수준이고, 인구 8만명의 니트라 또한 한국에서 다섯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대전(약 150만명)의 20분의 1 수준이니, 그만큼 슬로바키아는 인구가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니트라에서는 페테르(Peter)라는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아 두었다. 페테르의 프로필 사진에는 조그마한 1인승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는 남자 사진이 있었고, 페테르를 호스트 하거나 페테르가 호스트 한 사람들로부터 60여개의 후기글이 있었다. 대부분 긍정적인 글이 남겨져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후기를 남기다 보면 부정적인 글도 들어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후기글을 읽을 때는, 60개 중에 59개의 긍정적인 글 보다는 1개의 부정적인 글을 먼저 읽어보게 된다. (이건 카우치서핑 뿐만 아니라 물건을 살 때에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페테르는 한국을 포함해 수십개의 국가를 여행한 베테랑 여행자였고, 프로필 글 중에는 날씨가 좋으면 비행기를 태워줄 수도 있다고 적혀 있어서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페테르는 자신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과학기술의 대적(the great enemy of technologies)이라 카우치서핑 메시지를 자주 확인하지 못한다며, 니트라의 안드레하 바가라 극장(Divadlo Andreja Bagara)에서 저녁 6시에 만나자고 했다.


기차는 오후 3시쯤 니트라에 도착했고, 나는 페테르를 만나기 전까지 시간을 떼워야 했다. 기차역에서 시내 중심부의 약속장소까지는 약 2km 거리. 일찍 가봐야 할 것도 없기 때문에, 지도에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언덕의 이름은 갈보리(Kalvária)였다. 인적이 뜸한 주거지역과 오래된 병원 단지 건물들을 지나 언덕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등산로 입구를 찾지 못해 조금 헤메다가 언덕으로 통하는 조그만 길로 접어 들었다. 식생이 한국의 숲과는 너무 다르다. 누렇고 푸른 풀들 사이로 검고 흰 바위들을 밟으며 가파른 경사의 언덕을 올라갔다. 뿌옇게 구름낀 하늘 아래에서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한 언덕길을 걷고 있자니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진입한 방향과 수직으로 만나는 완만한 경사로에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이 묘사된 성소가 세워져 있었고, 꼭대기에는 커다란 예배당과 십자가 상이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니트라는 날씨 때문인지 쓸쓸하고 황량해 보였다.







갈보리 언덕 아래의 교회(Kostol Matky Božej)


언덕에서 내려와 니트라 강을 따라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가는 길에는 예쁜 낙엽이 있으면 줍기 위해 땅을 유심히 살폈다. 중국 항저우에서 만났던 료루를 얼마 뒤 베를린에서 다시 만날 예정인데, 식물을 좋아하는 료루가 도시별로 낙엽을 하나씩 주워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가을이라 낙엽은 사방에 깔려 있었다. 돈도 들지 않고, 색깔도 모양도 다양하고, 무게도 나가지 않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선물이다. 하지만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지 않고 모양이 잘 나온 나뭇잎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니트라 시내의 보행자 거리는 한적했다. 그리고 가로등이 모두 꺼져 있어 침침했다.


라스타 가족과 헤어지면서 라스타의 어머니가 "니트라에 가면 유대교 회당 옆에 정말 맛있는 찻집이 있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으로 가 보았다. 시나고그는 문이 닫혀 있었고, 맞은편 찻집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도시가 어둡다 보니 가게 안에서 나오는 주홍빛 불빛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차를 마시러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밖에서 구경만 했다.


아직 페테르를 만나기로 한 6시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도시는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고, 가게들도 문을 닫고 있었다. 편히 앉아 쉴 곳이 없으면 걷는 수밖에 없다. 도시 북쪽의 니트라 성 쪽으로 향한다. 오래된 건물 벽에 성문처럼 뚫린 길을 지나 돌로 쌓은 교회 건물 옆 골목길을 통해 언덕을 올라가니 니트라 성 입구가 보인다. 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서 혹시나 들어갈 수 있나 가 보았지만,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다시 어두운 도시로 내려왔다. 극장은 원형 광장 옆에 있었는데, 조명도 없었고 앉아 있을 곳도 없었다. 인적이 뜸하다 보니 으슥한 느낌도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수상해 보였고,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것도 수상해 보였다. 이런 수상한 곳에서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인내력이 필요한 일이다. 약속 시간이 5분만 지나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혹시 안오면 어떻게 하지? 나한테 연락을 했는데 내가 못 받은건 아닐까? 


다행히 곧 페테르가 나타났다.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저녁은 먹었나? 안 먹었으면 밥 먹으러 가자고! 중국음식 어때?" 페테르가 말했다.


밥값을 아끼기 위해 이미 슈퍼에서 싸구려 빵을 많이 사둬서 식당에 가기는 싫었지만, 이럴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키지는 않지만 알았다고 하고 페테르를 따라갔다. 페테르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살집도 있는데다가 직설적이고 호탕해서 로버트 바라테온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함께 있던 동년배의 여자는 마른 체구였고, 조용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표정을 갖고 있었다.


"뭐 먹을래? 중국 음식점은 가격은 싼데 먹을만 하다고." 페테르가 거침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고기도 없고 가격도 싼 야채 볶음밥이 있어서 그걸 시켰다. 페테르와 여자분은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다.


밥을 기다리면서, 밥을 먹으면서,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페테르가 워낙 경험이 많은 여행자이다 보니 내 여행 자체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나는 아직도 여행할 날이 많이 남았고, 페테르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통찰이나 지혜를 얻고 싶었기 때문에 질문을 많이 했다. 여자분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지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노베 잠키에서 3일이나 있었다고? 하! 그 아무것도 없는 촌구석에서 3일을 버티는게 가능한가?" 페테르가 말했다.


"네, 별로 심심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자전거 타고, 저글링 하고..." 내가 대답했다.


"여기는 내가 계산할게." 식사 후 페테르가 말했다. 내가 좋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하자 페테르는 단호하게 손을 흔들며 계산을 했다.


중국집에서 나와 페테르의 차에 탔다. 이제 집으로 가는건가? 아침부터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녔고, 날도 어두워진지 오래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페테르는 자동차를 아파트 단지에 세웠고, 여자분이 차에서 내렸다. 알고보니 여자분은 부인이 아니라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였고, 페테르와는 따로 살고 있었다. 여자분과 작별하고 나서는 페테르의 전 부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니트라 시 외곽에 있어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내 딸 나타샤가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이번에 한국 여행자가 온다고 했더니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구." 페테르가 말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 집에서는 페테르의 딸 나타샤와 나타샤의 엄마, 외할머니, 여동생이 같이 살고 있는데, 페테르가 종종 방문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행복한 표정의 나타샤가 고개를 숙이며 한국어로 인사했다.


나타샤의 엄마(페테르의 전 부인)가 따뜻한 차와 과자를 대접해 주셨다. 나타샤는 흥분된 표정으로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고, 페테르와 나타샤의 엄마도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7살 정도 되어보이는 나타샤의 어린 여동생은 나를 무관심하게 힐끗 보고 나서는 핸드폰을 가지고 놀았다.


"저는 태연 언니 왕팬이에요! 태연 언니 너무 예뻐요..." 나타샤가 말했다.


나타샤는 소녀시대, 그 중에서도 태연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제가 태연 언니 그린 그림이 있어요. 보여줄게요!"


한국 사람을 만나서 너무 행복한 나타샤. 나타샤를 따라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페테르와 나타샤의 엄마는 1층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2층 방은 너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나타샤가 '시드니'라고 이름 붙인 닭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나타샤는 닭을 좋아해서 닭을 키우고 싶어하는데, 지금 사는 집에서는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벽에는 일본 애니매이션 캐릭터 그림과 일본어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소녀시대 멤버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놓은 것도 보였다. 방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책상에는 소녀시대의 앨범이 세워져 있었는데, 어찌나 성스럽게 놓여 있던지 마치 작은 제단처럼 보였다. 


한때는 일본 문화에 푹 빠져 있었는지, 일본어 실력이 상당했다. 이제는 주요 관심사가 소녀시대로 바뀌어서 그런지 앞으로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왜 소녀시대랑 태연을 좋아하게 된거야?" 내가 물어봤다.


"저 예전에 학교도 가기 싫고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태연 언니를 보고 힘을 얻었어요. 태연 언니는 예쁘기만 한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노력해요... '나는 할 수 있다' 알아요?" 나타샤가 말했다.


"아니, 잘 모르겠어." 내가 대답했다.


"잠깐만요. 보여줄게요." 나타샤가 핸드폰으로 유투브에 접속하더니 동영상을 하나 찾아 보여줬다. 동영상에서는 태연이 한강 다리 위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왔다. 


"우울할 때마다 이 동영상을 보면 힘이나요. 나는 할 수 있다!" 나타샤가 행복한 표정으로 웃으며 태연을 따라했다.


소녀의 방.



나타샤가 직접 그린 태연 그림이 벽에 붙어 있었다.


감성이 넘치는 소녀의 방이다.


나타샤의 닭인형 시드니.


이건 페테르가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체와 색깔이다.


아랫층에서 페테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즐거운 대화가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다. 오늘 밤 묵을 페테르의 어머니(나타샤의 할머니) 집으로 가야 한다. 작별을 하는데 나타샤가 갑자기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내일 학교를 안가고 나와 같이 등산을 하겠다는 것이다. 페테르와 나타샤의 엄마는 별말 없이 허락해 주는 분위기다. 나타샤가 다시 방으로 올라가 가방을 싸들고 내려온다. 다같이 차를 타고 니트라의 언덕배기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늦은밤. 백발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나타샤는 자기 방으로 가고, 나는 페테르가 안내해준 빈 방에 짐을 풀었다. 방 안은 온갖 골동품, 사진, 기념품, 화폐, 그림, 책 등으로 가득했다. 


"맥주나 한 잔 마시러 나갈텐가?" 페테르가 물어보기에 그러자고 했다.


조그만 동네의 맥주집 치고는 사람들이 꽤나 북적였다. 페테르가 몇몇 손님과 주인에게 인사를 하더니 맥주를 두 개 시켰다.


페테르는 뭐랄까,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다. 주로 여행 얘기와 글라이더 얘기를 많이 했다. 페테르의 카우치서핑 프로필 사진에 있는 비행기는 무동력 글라이더였는데, 동력이 있는 비행기가 견인해서 공중에 띄워 주면 선을 분리하고, 동력이 없이 바람을 타고 줄 끊긴 연처럼 자유롭게 비행을 하는 것이다. 페테르는 수백 킬로미터를 동력 없이 비행한 적도 있다고 한다.


히치하이킹에 관한 얘기도 많이 했다.


"난 여행할 때 버스나 기차타는 건 싫어해. 왜냐구? 더럽게 따분하거든!" 페테르가 말했다.


"히치하이킹이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아니면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서지 않는다거나... 가장 오래 기다려 본 건 얼만큼이에요?" 내가 물어봤다.


"하! 기다리면 반드시 차는 서. 슬로바키아에서는 7시간을 기다려 본 적이 있어. 그리고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역을 여행할 때는 꼬박 이틀 동안 같은 곳에서 히치하이킹을 했어. 잘 들어. 여기는 가장 가까운 마을이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차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지나가는 외진 곳이야. 그리고 내 가방에는 물과 음식도 얼마 남지 않았어. 한시간 만에 나타난 차가 쉭! 하고 지나가 버릴때 심정이 어떤지 알아? 하! 그래도 결국 나를 태워줄 차는 나타나."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다시 모험 정신과 도전 욕심이 끓어 오른다.


맥주값은 내가 계산했다. 둘이 합해서 총 다섯 잔을 마셨는데, 맥주값은 5.5유로밖에 안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페테르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봤다. 사진은 여행별로 다른 폴더에 잘 정리되어 있었고, 폴더마다 30-40개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퀄리티는 대단했다. 사진 하나 하나에서 강렬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찍은 목적도 없고 피사체도 없는 애매한 사진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사진도 내가 찍은 사진이야." 페테르가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얀 모자를 쓰고 하얀 옷을 입은 무슬림 노인이 걷고 있는 옆모습이었는데, 오래된 잡지에서 오려낸 듯한 멋진 사진이었다. 페테르가 찍은 사진들은 모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려도 될만큼 인상적이었다. 나처럼 사진을 찍고 나서 나중에 봤을 때, 도대체 왜 찍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사진이라면 차라리 찍지 않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에 짤막한 글을 남기면서도, 왜 남기는지 알지도 못할 기록을 그저 기계적으로 적어 내려갈 바에는 적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날 일기장에는 그런 짤막한 감상만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