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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독일 & 네덜란드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브란덴부르크 문, 클럽 (여행 110일째)

2016년 11월 5일 토요일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국가의회 의사당(Reichstagsgebäude)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

베를린 훔볼트대학(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베를리너 돔(Berliner Dom)


(일기장이 모자라서 내용이 거의 없다. 아래 내용은 기억을 더듬어 기록.)


[등장인물]

요나스: 서울에서 같이 공부했던 조그만 독일 친구. 베를린 출신.

안토니오: 요나스의 남동생.


배경음악: Caravan Palace - Black Betty


아침에는 빵을 먹었다. 손님인데 혼자서 개인실을 차지하고 있으니 웃기는군. 어젯밤 요나스는 남동생과 같은 방에서 잤고, 요나스 어머니는 나에게 방을 내주고 거실의 소파에서 주무셨다. 이렇게 폐를 끼칠거면 선물이라도 두둑히 가져오던가 아님 재미있는 모험담이라도 늘어 놓아서 요나스 가족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하는데 나는 이도 저도 아닌듯 하여 참으로 송구스럽다.


아침에 빵을 간단히 챙겨먹고 요나스와 함께 베를린 투어를 시작했다. 일단 전철을 타러 왔는데 전철표 값이 너무 후덜덜이라 말이 안나온다. 1일권이 7유로다. 슬로바키아에서 며칠동안 쓴 돈을 다 합쳐도 7유로가 안될것 같은데, 정말 명치를 한대 맞은 것 같은 지출이다. 이게 그나마 1일권이라 싸게 산 거다. 편도로 1장만 사면 2.8유로라나? 절대 절대 절대 그 돈을 주고 전철을 탈 마음은 안 들었다. 혼자였으면 7유로 주고 1일권도 안샀을 거다. 요나스의 집은 전철역 인스부르커(Innsbrucker Platz) 근처였는데, 베를린 중심부로부터 7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혼자였으면 시간도 떼우고 길거리 구경도 할 겸 걸었을 거다. (7km 걷는데 3유로 번다고 생각하면 꽤 쏠쏠.) 하지만 요나스와 함께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요나스는 나 관광시켜주겠다고 자기 돈으로 전철표 끊고 따라 나오는데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요나스도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독일 어머니 집에 얹혀 살고 있는 터라 돈이 넉넉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국에서 같이 학생 생활을 할 때에도 돈을 아끼느라고 김밥천국 같은데서 밥을 사 먹던 친구였는데...


어쨌든 우리는 전철역으로 갔다. 서유럽의 부유한 선진국인 독일. 전철도 최첨단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전철이나 전철역은 꽤나 구질구질하다. 전날 밤에는 술취한 축구팬들이 전철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는데, 딱 그럴만한 분위기다. 



요나스와 함께 처음으로 간 곳은 커다란 고급 슈퍼마켓이었다. 그동안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지나면서 수많은 슈퍼마켓을 거쳐왔는데, 그 중 알디(Aldi)와 리들(Lidl)이 대표적인 독일 출신 슈퍼마켓이다. 특히 리들은 가격이 무지 싼 과자, 빵, 과일, 야채 등을 항상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 처음 본 이후로 주요 식량 조달처 역할을 해주었다. 


"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슈퍼마켓이야." 요나스가 말했다.


그래 나는 가난해서 리들이 좋더라, 후후.


요나스가 데리고 온 고급 슈퍼마켓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형형색색의 열대 과일, 플라스틱과 유리병에 든 각종 음료, 이국적인 식재료, 수백 수천가지의 향신료가 진열되어 있었다. 슈퍼마켓의 나라 독일에서도 먹어주는 슈퍼마켓이니 슈퍼마켓대왕 정도 되겠다. 망할 사과 하나만 해도 몇십 종류는 있는 것 같더라. 물론 가격은 비쌌다.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사람들이 장 보는 것과 파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오대양에서 온 각종 해산물들은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다. 아니 대체 볼링공만한 생선 대가리는 여기에 왜 갖다 놓은걸까?


점심때가 되었기에 푸드코트로 갔다. 사실 가격이 좀 밉도록 비싸서 (누군 서유럽에서 독일이 제일 싸다고 좋아하던데) 뭘 사 먹기가 싫었다. 그래서 요나스에게 나는 이따가 빵을 사먹는다고 하고 아무것도 안 먹었다. 요나스는 볶음면을 시켜 먹었고, 나는 요나스가 먹는걸 구경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이것도 참 미안하다. 내 밥 값 쓸 돈 아끼겠다고 요나스 혼자 뻘쭘하고 불편하게 밥을 먹게 만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이게 항상 딜레마다. 상대방의 소비 수준에 얼마만큼이나 내 소비를 맞추어 줘야 하는지... 소비 수준이 맞지 않으면 함께 있는게 불편해진다. 그래서 끼리끼리 노나보다. 그런데 나처럼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 버리면, 모든 사람의 소비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버려서 이렇게 문제가 생긴다.


요나스가 다 먹을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빵을 사러 갔다. 0.93유로를 주고 빵 3개를 샀다. 이정도면 푸드코트 음식에 비해서는 훨씬 싸지만, 바로 엊그제까지 있던 슬로바키아 빵 값과 비교한 거의 3배가 차이난다. 후덜덜...


수십종류의 사과. 가격도 천차만별.


맥주는 최소 수백 종류 이상 되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로 갔다. 날씨가 춥고 흐려서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가 찌뿌둥하고 답답해 보였는데, 이 반쯤 무너진 교회 건물은 그 애매한 공기 속에서 아주 강렬한 존재감을 주며 서 있었다. 현대식 고층 건물들보다도 높이 솟은 압도적 크기 때문이었을까. 무너진 바벨탑처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를 하듯 서 있는 교회 건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움과 추함, 오묘한 질서와 적나라한 혼돈, 네트로피와 엔트로피의 묘한 뒤섞임이 마치 매혹적인 미녀의 화상입은 얼굴이나 육식동물에게 살점을 물어 뜯긴 아름다운 짐승의 사체처럼 시선을 잡아 끌었다.


2차대전 당시 폭격을 당해 반쯤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시간을 뛰어넘어, 당시에 존재하지 않던 우리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벌집 모양의 새로 지은 교회 건물이 있다. 콘크리트를 직각으로 때려박은 듯한 신관 건물은 왠지 딱딱하고 전체주의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내부를 꽉 채운 스테인드 글라스의 파란 빛깔은 현대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출처: Wiki Commons)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신관 내부 (출처: Wiki Commons)


보수 공사중인 육각형의 타워와 무너진 교회 구관.


무너진 구관 건물 내부 천장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아래와 같은 사진이다.


위와 같은 사진. 천장 돔에는 벽화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요나스를 따라 다음으로 간 곳은 국가의회 의사당(Reichstagsgebäude). 독일 제국의 느낌이 나는 멋진 건물이다. 건물 앞의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난민들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16년 이 당시는 난민 문제로 온 유럽이 떠들석 했었다. 세르비아에 있을 당시, 수많은 난민들이 독일을 목표로 중동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걷고, 밀입국을 시도하고, 추방당하고, 다시 월경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들은 것이 떠오른다. 바로 이 순간에도 독일에 입국하려는 실오라기 같은 꿈 하나를 붙들고 이동하는 난민들이 있을 텐데, 과연 그들이 최종 목적지인 독일에 도착하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국가의회 의사당(Reichstagsgebäude)


국가의회 의사당 앞에 모인 난민들. 그나마 유럽에서는 독일이 친난민 정책을 쓰는 국가라고 들었다.




국가의회 의사당 바로 옆에는 독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었다. 네마리 말이 끄는 마차 조각이 올라가 있는 어쩐지 낯이 익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와 '이게 바로 그 역사적인 건축물 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길을 인도하는 요나스는 왼쪽 저편으로 보이는 브란덴부르크 문에 0.1초의 시선도 주지 않고 앞으로 쭈욱 걸어가 버린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 건물이 바로 그 유명한 건물이 아니었나? 역사적으로 안 좋은 인식이 있는 건물인가? 이 건물에 관심을 주면 독일 사람에게 무례한 건가?' 등의 다양한 가설이 떠올리며 요나스를 따라 걸었다. 사진 한 장 찍을 겨를 없이 건축물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솔직하게 호기심을 보였어도 되는데, 아마도 '멍청해 보이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왼쪽에 저편에 보이는 랜드마크가 별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 같다. 요나스는 베를린 사람이니까 (파리 사람이 개선문 보듯, 서울 사람이 동대문 보듯) 정말 아무 감정도 못 느꼈을 테지만, 나는 관광객이면서 현지인 흉내를 내고 있던 것이다!


Bundesarchiv Bild 183-2004-0830-500, Berlin, Brandenburger Tor (source: Wiki Commons)


Charles Meynier - Entrée de Napoléon à Berlin. 27 octobre 1806 (source: Wiki Commons)


길에서는 귀엽게 생긴 신호등 표시 암플레맨첸(Ampelmännchen)을 볼 수 있었다. 동독에서 쓰던 신호등이 아직까지 이어져 왔다는데, 일종의 상징으로 남아서 관광상품으로도 팔리는 듯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이 '작은 신호등 사람'이 들어간 머그컵, 티셔츠, 냉장고 자석 등을 팔고 있었다.




베를린 훔볼트대학(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베를리너 돔(Berliner Dom)


베를리너 돔(Berliner Dom)




베를린 산책을 마치고 요나스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요나스의 남동생을 처음으로 만났다. 이제 12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남동생의 이름은 안토니오였는데, 어째 요나스와 생긴게 좀 다르다. 생긴게 조금 다른게 아니라 많이 다르다. 금발에 하얀 피부인 요나스와는 달리 안토니오는 흑발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고 있다. 알고보니 안토니오는 요나스의 이복동생이었는데 아버지가 페루 출신이라고 한다. 어쩐지 집안에 페루에서 온 장식품과 기념품이 많더라! 안토니오는 영어를 잘 못해서인지 아시아에서 온 이복형의 친구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후...)


저녁에는 요나스와 클럽에 가기로 했다.


클럽으로 알아준다는 베를린. 베를린에 와서 정말 할 구경은 다 하는구나.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가는 클럽은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그런 곳은 아니고, 조그마한 공간에서 이름없는 예술가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는 곳이다. 별로 클럽을 안 좋아할 것 같은 요나스가 뜬금없이 클럽에 가자고 한 이유는 바로 클럽에서 공연하는 예술가가 요나스의 친누나이기 때문이다. 


요나스도 공연이 있는 클럽에 가는 길을 잘 몰랐다.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또 한참을 걸었다. 가는 길에는 베를린 장벽이 보였다. 끝없이 이어진 장벽에는 각기 다른 풍의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비가 내려서 거리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클럽. 겉에서 보면 보통 가정집처럼 생긴데다가 위치도 번화가가 아니어서 내가 생각했던 클럽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강남이나 홍대의 클럽을 예상했다.) 이미 사람들이 꽤나 모여 있었고, 요나스가 몇몇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중에는 요나스의 친아버지도 있었다. 작은 키와 동글동글한 얼굴이 요나스와 꼭 닮았다.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요나스의 누나와도 인사를 했다. 누나도 역시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데 꽤나 미인이다. 


오늘 공연은 요나스의 누나와 남자친구가 함께 하는데, 음반(CD)도 제작해서 팔고 있었다. 10유로였던가? 앨범 커버는 홀딱 벗은 여자의 젖가슴 사이에 장난감 비행기가 놓여 있는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누드 모델이 요나스의 누나라고 했다. 요나스의 아버지가 그 앨범을 팔고 있으니 참 상황이 민망하기도 하고 웃겼다. 아버지가 나에게도 앨범을 사라고 권했지만 돈도 아깝고 CD를 재생할 기계도 없기에 사지 않았다.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구석에 요나스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꽤나 열성인 팬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무대 근처의 바닥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팀에게 호응을 보냈다. 공연하는 남자(요나스 누나의 남자친구)는 수염과 머리를 잔뜩 기른 야수같은 분위기의 남자였는데, 기타를 마치 거문고처럼 연주하기도 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았다. 요나스 누나는 노래를 정말 잘했다. 난 이 음악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이 예술가들의 세계인가 보다.


공연이 끝나자 꽤나 늦은 밤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며 놀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요나스와 나는 요란한 클럽에서 축축한 밖으로 나와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조용히 버스를 기다렸다. 정말 베를린에 와서 볼 것은 다 봤구나. 그런데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축축한 발바닥 때문인지 베를린이 그리 좋지는 않다.


"여름의 베를린은 훨씬 더 좋단다." 요나스의 어머니가 말했다.


파란하늘을 볼 수 있고, 덜덜 떨지 않아도 된다면 어디든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