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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독일 & 네덜란드

네덜란드 바헤닝언: 히치하이커, 수호천사, 푸이 (여행 115일째)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암스텔베인(Amstelveen) - 바헤닝언(Wageningen)


배경음악: Parov Stelar - Chambermaid Swing (Official Audio)


[등장인물]

나타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만난 친구. 암스테르담에서 이틀밤 재워줌.

사라: 나타샤의 룸메이트.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회사에서 근무.

푸이: 한국에서 같이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 바헤닝언(Wageningen)에서 하룻밤 재워줌.


나타샤네 집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아침. 나타샤와 사라가 출근하는 길에 같이 집을 나와 작별하고,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떠난다.


잠시 방향 감각을 상실해서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헤매다가 점보(윰보) 슈퍼마켓에서 바나나와 맛없는 빵을 사고 박스 쪼가리(히치하이킹에 쓸 것)를 하나 찾아 나와서 공원을 따라 걷는다.


축축한 거리. 어김없이 구멍이 송송 뚫이 밑창으로 들어오는 빗물과 젖어버리는 발바닥.


공원 수풀에서 소변을 보고 히치하이킹 장소로 향한다.


목숨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몸이 피로한 것도 아닌 일인데 히치하이킹은 왜 아직도 이렇게 떨리는 걸까. 이제는 영어도 통하겠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도 가깝겠다, 더 이상 변명할 거리도 없는데. 그래서 오늘은 히치하이킹으로 간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헤닝언(Wageningen).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는 인구 약 3만명의 작은 도시인데 생명공학으로 유명한 바헤닝언 대학교가 있다. 오늘 하룻밤은 이곳에 살고 있는 귀여운 아가씨 푸이의 집에서 묵어 가기로 했다. 푸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서 2년동안 같이 공부했던 아이인데, 가끔 투덜거리는 모습이나 별것 아닌 일에 걱정하는 모습도 이상하게 귀여워서 미워할 수가 없는 아이다.


원래는 푸이가 암스테르담에 볼 일이 있다고, 같이 바헤닝헌으로 기차를 타고 가자고 했으나(같이 기차를 타면 나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일정이 바뀌어서 나 혼자 푸이의 집이 있는 바헤닝언으로 가게 되었다. 혼자 가면 더 비싸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이 더 절실했다. 나타샤와 푸이는 (둘 다 네덜란드 사람) 


"네덜란드에서 히치하이킹이라고? 안 될거야! 기차 타고 가."


라고 말했지만 그런 약간의 부정성은 이제 쉽게(?) 혹은 14유로라는 거금(기차표 값)의 압박에 가볍게 무시된다. 


히치하이킹 장소는 히치위키(Hitchwiki)의 지도(링크)에서 찾았다.


점 찍어 둔 곳에 도착한 순간, 당혹감이 엄습한다.


낭패다. 조용하고 외딴 곳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차도 많고 보행자도 많은 곳에서 할 수 있을까. 하지 말까. 하지만 이제 와서 도망쳐?


도로에 깔린 젖은 나뭇잎과 물웅덩이를 지나 자리를 잡고 서서 '위트레흐트(Utrecht)'라고 적힌 박스 쪼가리와 엄지 손가락을 든다.


확실히 이 짓에는 심리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스스로 굴욕스러워하고 당황하게 되면 얼굴이 이상하게 굳고, 정말로 이상한 놈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 손가락질 하는 걸로 느껴지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운전자들을 관찰하고, 눈을 마주치고 (당당히), 수신호를 좋은 의미(혹은 익살스러운 친근함의 표시)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장난이나 게임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입가에 웃음이 생긴다. 운전자를, 이 부드러운 에너지로 압도해야 한다. 그러면 명상하며 몇 시간 앉아 있듯이, 몇 시간이고 서서 몇 천 대의 차가 지나쳐도 서 있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30-40분 정도 기다리면 아른헴(Arnhem)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곧 노란색 번호판을 단 회색 시트로엥 자가용이 길가에 선다. 예스!


암스테르담의 하늘은 꾸리꾸리하다.


히치하이킹 장소.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길이고 통행량도 많고 조건이 좋았다.


운전자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였다. 문을 살짝 열고 "위트레흐트 방향으로 가세요?"라고 물어보니 어서 타라는 손짓을 한다.


아저씨의 이름은 요시. 아마 조쉬(Josh)를 여기 발음으로 하면 요시일 것이다. 아저씨는 원래 중국에서 살면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배송지연으로 고객 컴플레인이 들어와 제품을 직접들고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로 날라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제품을 차에 싣고 목적지로 가는 중이다. 가는 길에 나를 위트레흐트에 내려줄 생각이었는데, 내가 사실 더 멀리 아른헴 근처의 바헤닝언(Wageningen)까지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그 근처까지 간다고 태워주겠다고 한다. 짱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구름낀 하늘 아래로 널찍하게 쭈욱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린다. 아저씨와 대화를 많이 했다. 생각해보니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언어가 이만큼이나 통했던 운전자는 처음인 것 같다. 중국, 불가리아, 헝가리에서는 영어가 잘 먹히지 않아 어색한 침묵이나 반쪽짜리 대화를 나눠야 했다. 하지만 요시 아저씨는 영어를 아주 잘 하신다.


"나도 예전에 히치하이킹을 많이 했어." 요시 아저씨가 말했다. "몇 년 전에는... 2009년이었던가? 그때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지독한 우울에 빠져서 어느 곳으로라도 떠나 버리고 싶었어. 너처럼 길에 서서 차를 세웠지. 목적지 같은 것은 적어두지 않았어. 처음으로 선 운전자에게 어디에 가냐고 물었지. 파리에 간다고 하더군. 나도 파리에 간다고 하고 태워달라고 했어. 그렇게 파리에 가서 1주일 동안 시간을 보냈지."


"오, 파리요! 멋져요! 그럼 그렇게 파리에 가서 뭐 하셨어요?"


"그 때 파리에서는..."


이야기를 자아내던 아저씨가 잠시 멈추더니 질문을 했다. "너 종교가 있니?"


"네." 내가 대답했다.


"무슨 종교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감히 신의 존재를 부인할 수가 없어." 요시 아저씨가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히치하이킹으로 파리에 갔을 때 일이야. 거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누가 내 목덜미를 콱 붙잡아서 뒤로 넘어뜨렸어. 아주 조그만 일본 여자였는데, 그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났는지... 그 순간 앞으로 커다란 트럭이 지나갔어. 이 일본 여자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나의 목숨을 살린거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정말이지 신께서 나를 지켜보고 보호한다는 확신이 들어."


얘기를 들어보니 요시 아저씨가 이런 식으로 목숨을 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철길에 발이 끼어 죽을 뻔한 것을 어린 소녀가 보고 소리를 질러 가까스로 살아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고비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마법같은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기 때문에 아저씨는 자기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둘인데 그 둘은 항상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농담을 했다. 


생사에 관련된 일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도 아저씨는 놀라운 체험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외딴 시골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보여 속으로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뜬끔없이 어떤 여자가 나타나 망원경을 사지 않겠냐고 창문을 두드리는 것처럼(그곳은 전혀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렇게 사소한 우연도 아저씨는 신성한 체험으로 받아들였고, 덕분에 아저씨는 항상 신이 지켜보는 놀랍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저씨가 물건을 배달하러 온 회사에 들어가 물건을 전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차안에서 아저씨를 기다렸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항상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받는 아저씨가 오늘은 나의 수호천사가 되었음) 편하게 목적지에 가고 있고, 용기를 주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어떻게라도 감사함을 표시하고 싶었다. 요시 아저씨가 가톨릭이라고 했으니, 그에 딱 맞는 선물이 하나 있다. 헝가리 에스테르곰에서 가보르 아저씨에게 선물 받았던 프란체스코회의 상징 타우 목걸이. 이걸 아저씨에게 드리자. 그리고 나는 이 목걸이의 세 개의 매듭이 의미하는 순결(chastity), 청빈(poverty), 순종(obedience) 이 세 가지를 선물로 간직하자.


아저씨가 곧 밝은 표정으로 돌아 오셨다. 목걸이를 받았을 때의 상황과 의미를 설명하며 선물로 받아달라고 타우 목걸이를 건네 주었다. 아저씨는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며 목걸이를 백미러에 걸어 두셨다. 나를 바헤닝언(Wageningen)에 내려주기 위해 약간 길을 돌아온 아저씨는 나를 목적지에 내려다주고 아른헴 방향으로 떠났다. 기나긴 인생을 살면서 고작 두어시간을 함께 보낸,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없을 사람인데도, 이 사람과 나눈 대화, 이 사람에게서 받은 느낌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위트레흐트까지 가는 차를 한번 얻어타고 바헤닝언으로 가는 차를 한번 더 얻어탈 생각이었는데 한번에 왔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세개의 매듭이 있는 타우 목걸이를 요시 아저씨에게 선물로 드렸다.


자, 이제 바헤닝언에 도착했다. 푸이네 집을 찾아가 보자. 


내리다 말다 하는 비로 길은 축축했고 낙엽은 길바닥에 질척질척하게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 이상 낙엽을 주울 필요도 없게 되었군.


지나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조용한 도시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푸이네 집에서 가만히 초인종을 눌러 보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몇시에 도착할지 몰랐기 때문에 푸이에게 도착시간을 알리지 않았고 푸이는 집에 없는 모양이다. 핸드폰을 꺼내 비행기 모드를 풀고 푸이의 폰 번호를 눌렀다. 에넥스텔레콤의 기본요금이 없는 요금제를 쓰고 있는데 자동 로밍이 되어서 아주 편리하다. 한국으로 전화를 거는 정신나간 짓은 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현지 번호로 전화를 걸 때는 정말 유용하다. 현지로 걸면 통화 요금이 1분에 몇백원 정도로 무식하게 비싼건 아니기 때문에 전화를 꼭 필요할 때만 쓴다면 현지 심카드를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 


푸이에게 도착을 알리고 십분 정도 지나자 자전거를 탄 푸이가 나타난다. 정말 반갑게 맞아주는 푸이. 사랑스러운 푸이.


"식당에서 아빠 일 도와드리고 있었어. 어떻게 왔어? 정말 히치하이킹 했어? 말도 안돼!" 구직활동을 하면서 짬짬이 부모님 가게일도 도와드리는 착한 푸이. 얼마전에는 구글에서 면접을 봤다고 한다.


슈퍼에 무지 싼 빵(roggebrood)이 있어서 샀는데 정말 무시무시한 맛이었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음식을 버릴 뻔 했다. 케챱도 가격이 꽤 싸서 빵을 먹을 때마다 뿌려 먹었다.


푸이가 사는 동네.


푸이네 집 거실. 저녁에는 이곳에 앉아 푸이 아버지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다. 푸이네 온 가족이 내가 히치하이킹으로 왔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하루 평균 8유로(만원) 밖에 안썼다는 얘기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무척 잘 해주셨다.


짐을 푸이 방에 풀어 놓고 푸이와 함께 푸이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푸이네 아버지는 수십년 전에 중국에서 네덜란드로 이민을 오셨고, 푸이네 어머니는 말레이시아에서 오셨다. 두 분은 이곳 바헤닝언에 정착해 지금까지 중국 식당을 운영하며 딸 셋을 키워 내셨다. 신세지러 온 친구네 집이 식당이니 먹을것까지 해결되어 버린다. 이렇게 좋을 수가! 내가 채식을 하는 걸 아는 푸이가 두부와 야채 요리를 차려준다. 아... 정말 사랑스러운 푸이.


푸이네 가게에서 밥을 먹고, 같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서 가장 큰 교회(Grote Kerk)가 위치한 시티센터를 한 바퀴 돌아봤다. 도서관과 서점을 구경하고 다시 식당에 돌아왔다. 약간 어색했지만 푸이의 가족들(엄마, 아빠, 언니)과도 대화를 조금 나누고, 간단한 일을 도와줬다. 푸이와 함께 장도 보고 식당으로 돌아와 저녁을 얻어 먹었다.


바헤닝언의 시티센터 주변


Grote Kerk Wageningen. 축제 기간에 이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푸이가 챙겨준 저녁밥.


늦은 저녁까지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 하면서 길을 적신다. 우산을 들고 나와 푸이의 언니가 키우는 민감한 하얀 개를 같이 산책 시켜주었다.


밤이 깊어가지만 아직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오늘은 살사 댄스 모임이 있는 밤이라고 한다. 물이 질질 새는 내 신발을 보더니 푸이가 신발장에서 아빠의 신발을 꺼내 빌려주었다. 얼마만인지... 이렇게 양말과 신발을 신고 따뜻한 발로 걷는 것이.


푸이 아빠의 신발을 신고, 비를 맞으며, 바헤닝언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밤. 이 순간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이 순간, 따뜻하고 건조한 발로, 얼굴에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줄기를 느끼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른 어떤것도 필요없는 완벽한 순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문화센터같은 곳인데, 젊은 남녀 학생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있다. 푸이가 나를 몇몇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더니, 다른 여자아이들과 열정적인 수다 삼매경에 빠져 버렸다. 나는 어색하게 앉아서 물을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가끔 붙임성 좋은 친구들이 와서 말을 걸면서 이런 저런 것을 물어봤다. 곧 음악이 흘러나오고 남녀가 짝을 지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다들 실력이 쓸만하다. 춤을 추고, 파트너를 바꾸고, 쉬다가, 남자가 여자에게 춤을 청하고 여자가 승낙하면 둘은 다시 나가서 춤을 춘다.


"저기 저 남자 있잖아" 잠시 쉬러 온 푸이가 찌뿌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 사람이랑 지금 무지 어색해. 지난주에 저 사람이 고백했는데, 나는 전혀 남자로 생각 안해...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와 푸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문화센터를 나와서 펍에 가기로 했다. 푸이의 다른 여자 친구들 몇명도 따라 오기로 했다. 한국의 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조그맣고 조용한 도시에 이런 밤까지 운영하는 술집이 있다니 의외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많은 학생 도시여서 그런거겠지.


푸이와 맥주를 하나씩 시켜 마셨다. 오늘 오후에 푸이에게 커피와 케이크를 얻어 먹었는데, 밤에는 맥주까지 얻어 먹는구나. 언젠가 푸이를 업고 다니면서 먹고 싶은것 마시고 싶은것 다 사줄 날이 왔으면 좋겠다. 푸이의 친구들도 왔다. 그리고 친구들의 질문에 따라 내 여행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살사 댄스 클럽


Wageningen's Hoogstraat after spring rain (Source: Wiki Commons)


푸이와 푸이의 친구들과 맥주를 마셨던 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