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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중국

중국 신장 쿠얼러 - 우루무치: 기차와 포도 (여행 28일째)


2016년 8월 15일 쿠얼러(库尔勒) - 우루무치(乌鲁木齐)


[등장인물] 

줄리: 타이완에서 온 여행자. 같이 히치하이킹 중. 중국 친구들은 샤오마오(小猫, 작은고양이)라고 부른다.


1. 공원 놀이기구에 설치한 방수포 아래 잠자리가 아늑하고 달콤하여 떠나기 싫지만, 날이 밝아와 짐을 꾸린다. 나는 오늘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로 떠나지만, 줄리는 쿠얼러에서 더 머무를 예정이어서 줄리가 묵을 호스텔로 향한다. 이제 이별이구나! 가는 길에 호수가 있는 공원에 들렀는데, 아침 일찍부터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도 한 구석에 짐을 내려 놓고서, 줄리가 소림사에서 배워온 운동을 한다. 어떤 아저씨 한 분은 공원에서 주무셨는지 부스스한 차림새로 이불을 몸에 두르고 앉아 있다. 아...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이 이런 것인가! 나와 줄리는 여행 중 잠깐 노숙을 한 것이고 돌아갈 곳이 있지만, 저 아저씨는 매일 밤을 저 바위 위에서 보낼테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2. 줄리가 머물 숙소에 들어가 체크인 하고, 덕분에 기차를 타기 전 화장실도 쓴다. 샤워까지 할 여유는 없지만 양치질 하고 똥을 싼다. 똥 싸고 나서는 직접 바가지로 물통의 물을 떠서 변기통에 부어야 한다. 일을 처리하고 호스텔 벽면에 그려진 낙서들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화장실을 다 쓴 줄리도 나와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간다. 이렇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삶의 풍경이다. 호스텔 아주머니가 주신 따뜻한 차를 조금 맛보다가,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역 옆에서 포도를 한 송이 사고, 매표소로 들어갔는데, 줄이 생각보다 길다. 기차 출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열차 출발 10분전에 표를 받고 보안 검사를 두세 번이나 통과해 열차 승강장으로 달려간다. 줄리와 아침도 같이 못 먹고 급하게 헤어진다. 포도 봉다리만 달랑 손에 쥔채.


3. 기차는 소수민족 무슬림들로 가득하다. 일반적인 중국사람-한족(汉族)-은 보기 힘들다. 다들 머리에 무언가를 쓰거나 두르고 있고 피부색이나 얼굴이 확연히 다르다. 이제 줄리와 헤어지니,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대신 듣고 답해줄 사람이 없다. 덕분에 중국어를 몇 마디 떠듬떠듬 해 본다. 선풍기가 돌고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지만 기차 안 공기는 뜨거워, 의자에 닿은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땀이 스며 나온다. 터널을 지날 때는 열린 창문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들어온다.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려고 해 봐도 땀이 차서 힘들다. 주변 사람들에게 포도를 권하며 선반 위에 올려 두었지만 아무도 먹지 않는다. 옆에서는 단체로 온 가족들이 '때린 사람 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다. 아저씨 한 명이 엎드리면 아저씨를 둘러싼 아주머니와 아이들 중 한 명이 등짝을 세게 때리고, 아저씨는 누가 때렸는지 맞춰야 한다. 못 맞추면 다시 엎드려야 하고 맞추면 때린 사람이 엎드린다. 이 게임을 깔깔깔 웃으며 몇 시간 동안 하는데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온다. 눈물나게 행복한 풍경이고,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생각보다 길고 힘든 7시간이다. 한국에서는 항상 지하철의 너무 센 에어컨 바람 때문에 불만이 많았는데, 이 순간에는 에어컨의 서늘한 공기가 그립다. 


4. 기차는 투루판(吐鲁番)에서 30분 동안 정차했고, 몇 시간 후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잘 씻지 않고 먹은 포도 때문인지 배가 꾸륵 꾸륵 아프지만,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걸어 간다. 사전에 인터넷에서 찾아 본 대로, 커다란 시외 버스 터미널이 있고, 그곳을 조금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국제 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아무 문제 없이 표를 사고 터미널을 나와, 사람들로 빽빽한 시내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 간다. 숙소에 도착해 빨래하고, 똥 싸고, 씻으니 오후 8시가 지났는데도 아직 밝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 잠깐 나가 본다. 공원에 들어가는데도 소지품을 X선으로 검사하고, 공원 곳곳에 경찰과 중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공원은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흥겨운 음악과 그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몇 발자국 움직이면 다른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또 다른 춤이 펼쳐지고 있다. 이 분위기와 춤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지만 부질없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답게 흔들리지만 붙잡을 수가 없다.


쿠얼러 풍경. 중국어와 아랍어를 함께 쓴다.


쿠얼러의 아침.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거리의 개.


지루하고 무더운 기차에서 한참을 재밌게 놀아주던 꼬마 숙녀


춤 구경하는 노인


춤추는 사람들과 스마일 모양으로 전등을 밝혀둔 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