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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프랑스 & 벨기에

프랑스 마르세이유: 버스, 비, 모자이크, 그래피티 (여행 126-127일째)

마르세유 대성당(Cathédrale La Major)


2016년 11월 21일 월요일

베르가모 - 밀라노 - 마르세이유(Marseille)


배경음악: ZAZ - La Pluie


일기장이 또 젖어 있군.


베르가모에서 출발해 비 내리는 밀라노에서 마르세유 행 버스를 탔다. 제노바(Genova)를 지나는 산길과 남부해변가는 꽤나 멋졌고, 아무 생각없이 버스에 앉아 경치를 보는 것은 좋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앞창문과 옆창문으로 바깥을 구경하며 왔는데, 오는 동안 프랑스 버스기사 아저씨가 자꾸 불어로 말을 걸었다. 프랑스어 공부가 다시 필요하군. 


마르세유에서는 묵을 곳을 찾기가 힘들었지만, 결국 카우치서핑에서 지에드라는 남자가 하룻밤을 승낙해 주었다. 지에드는 시 외곽에 있는 대학교(University Campus Saint-Jérôme)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버스가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땐 비가 잠깐 멎은 상태였는데, 버스 터미널에서 기숙사까지 1시간 반 걷는 동안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 결국 가방에 우비를 뒤집어 씌워야 했다. 하지만 기온은 섭씨 18도 정도로 매우 따뜻하다. 남쪽으로 오니 다시 여름이 된 것 같다.


기숙사까지 가는 길은 꽤나 으슥했다. 비가 와서 더 음침했다. 가다가 이상한 사람 몇명이 말을 걸었다. 어떤 술취한 아저씨는 2유로짜리 동전을 주면서 편의점에서 하이네켄을 사달라고 했다. 왜 본인이 안사고 나에게 부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355ml 한 캔을 사서 건네줬다. 술취해서 뭐라고 불어로 떠드는데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빗속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도착한 기숙사. 오늘의 호스트 지에드는 밝은 얼굴로 나를 맞아 주지만 나에게 큰 관심은 없는듯 하다. 기숙사 방은 잔인할 정도로 작다. 방에는 두 사람이 앉기에도 공간이 부족하다. 이 작은 방에 화장실까지 우겨 넣었는데, 화장실 위생상태도 엉망이다.


"1층에 탁구장이랑 당구장이 있어. 심심하면 가봐. 나는 과제를 해야 해서." 지에드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과제보다는 페이스북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방에서 나가 있으라는 소리다. 지에드가 말한 운동시설에 나가 보았지만 일단 출입카드가 없어 이동이 불편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다가 왠지 눈치가 보여 사람이 별로 없는 식당에서 시간을 떼웠다.


"Bonsoir(안녕)." 식당에 들어오던 학생과 눈이 마주치자 인사말을 건네 온다.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늦은 시간인데도 요리를 해먹는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열두시가 넘어서 방으로 들어왔지만 지에드는 잘 생각을 않는다. 피곤하면 먼저 자라며 바닥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 지에드가 잠이 들기를 기다리며 지난 일기를 읽고,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떼우다가 어찌어찌 잠들었다.




네덜란드에서 푸이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동일 작품의 뮤지컬 광고가 보인다.


마틴 루터 킹 학교.


시원시원한 성격의 버스기사 아저씨. 불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제노바와 니스를 경유하는 마르세이유행 플릭스버스(FLIXBUS).


마르세이유 벽에 있던 낙서. 캘리포니아 공화국(California Republic).


지에드가 보여준 마르세이유 지도.


비좁은 기숙사. 알제리에서 온 유학생인 지에드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팬이다. 물론 FC 바르셀로나를 더 좋아한다.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프랑스 마르세이유(Marseille)


아침이 되자 웃는 얼굴로 쿠키를 한 봉지 주며 나가라는 지에드. 쫓겨나듯 나왔고, 호스트와 별 교감도 없었던 싱거운 카우치서핑이었지만, 그래도 비오는 날 비를 피할수 있었던 것이 어딘가! 더럽고 냄새나는 여행자를 비좁은 방에 재워준 것, 고마운 일이다.


지에드가 준 쿠키를 냠냠 먹으며 B3A 버스를 타고 약간 시내쪽으로 이동해서, 비를 맞으며 (항구쪽) 마르세이유를 향해 걷는다. 비가 구질구질 징하게도 내리더니 어느 순간 딱 그쳤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교회 건물(Église Saint-Vincent de Paul). 질겅질겅 씹던 바게트와 바나나를 주머니에 우겨 넣고 교회 건물로 들어갔다. 사방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래스 모자이크. 앞쪽에 앉아서 안경까지 쓰고 보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색들의 유희다. 예수, 갈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승들... 아, 등과 어깨와 겨드랑이 언저리가 가방과 조끼의 무게로 뻐근해 고개를 들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오지만, 너무 아름답다. 젖은 발을 말리고,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긴다.


너무 아름답다.


그러다가 교회를 나와 맥도날드 앞 길에서 소피아를 만나 차에 올라 탔다. [소피아는 한국에서 같이 놀던 프랑스 친구인데, 마르세이유 근처의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 살고 있다.] 소피아가 짧은 머리를 하고 있고, 술과 담배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암 때문이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었다고 한다. 목덜미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보였다. 나는 그동안 소피아가 암 투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연락해 재워달라고 했던 것이다. 오... 이런 힘든 상태이면서도 소피아는 나의 마르세이유에서 1박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소피아 특유의 유쾌함과 장난기가 가시지 않았으면서도 얼굴에 약간의 피로한 기색이 보인다. 소피아 차를 타고 마르세유 대성당(Cathédrale La Major) 쪽으로 갔다가 항구변의 쇼핑몰(Terrasses du Port)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얻어 먹었다. 쇼핑몰 테라스에서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에드몽 당테스)이 갇혔던 이프 섬이 멀찌감치 보였다. 다음에 오면 같이 보트를 타고 구경 가자구... 그래 모든건 이미 씌여 있고 우리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아직 죽지 않고, 서울이나 마르세유에서 몇번 더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축하해줘야지. 데이빗처럼. 죽음을 용감하게 이겨내고 돌아온 것을.


소피아에게 커피도 얻어먹고, 소피아가 엄마 생일 선물을 사는 것을 구경하다가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그런데 차가 막히고 길이 복잡하게 꼬여 있어 버스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꼼짝 못하고 차에 갇혀있는 상황이 되었다. 차에서 내려서 차도를 달려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약간 침착함을 잃었지만 아슬아슬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승강장도 못 찾아서 거의 버스를 놓칠뻔 하다가 버스가 출발하기 5초전에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다행이다. 버스는 벨기에 브뤼셀행이다. 다시 북쪽으로 간다.


지에드가 준 쿠키.


예쁜 타일 그림.


그래피티.


버려진 빵이 너무 아쉽다. 맛있게 생겼는데 비에 다 젖어 녹아 버렸다.


비가 그치고 발견한 교회.


Église Saint-Vincent de Paul


내부에서 본 스테인드 글래스. 정말 정말 아름답다.



교회 앞에서 본 시내 풍경.


교회 앞에는 잔다르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래피티2.


그래피티3.



그래피티..예술


예술2.


예술3.


마르세유 대성당(Cathédrale La Major)





소피아에게 맛있는 점심을 얻어 먹었다.


그리고 쇼핑몰 구경.


다이아몬드. 저거 하나면 빵이 몇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