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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프랑스 & 벨기에

벨기에 브뤼셀: 그랑플라스, 걸인들, 블라블라카 (여행 128일째)

그랑플라스에 있는 시청 건물(Stadhuis van Brussel)


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벨기에 브뤼셀(Brussel) - 딜센 스토켐(Dilsen-Stokkem)


배경음악: Belgium folk


오후 4시. 벨기에 헹크(Genk) 근처. 위빠사나 명상센터.


1. 마지막 일기다. 저녁부터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금지된다.


네덜란드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다시 벨기에로 종횡무진 하는구나. 


명상센터까지 오는 길이 매우 힘들고 복잡했을 수도 있는데 블라블라카(BlaBlaCar)에서 찾은 운전자가 로빈(Robin)이 원래 계약한 목적지인 헹크(Genk)에서 약 15km 떨어진 명상센터까지 태워다 줬다. 좋은 사람이다. 차에 있던 음료수를 하나 권하더니, 휴게소에 들러서 맥주를 두 캔 사온다. 한 캔은 나에게 주고 다른 한 캔은 본인이 운전하면서 마신다.


로빈브뤼셀에서 헹크로 자가용 출퇴근하는데, 가끔 블라블라카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용돈 벌이 겸 태워준다고 한다. 사실 로빈이 회사에서 버는 돈에 비해 그리 큰 돈은 아닌데 (약 7유로) 사람들도 만날 겸 재미로 한다고 한다. 명상센터 위치를 알려주며 혹시 그곳까지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알았다고 한다. 전에도 두 명을 명상센터에 태워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은 교도소에서 간수로 일을 시작하는 여성이었는데, 교도소에서 위빠사나 명상 코스를 필수로 지정해 놓았다고 한다.


로빈은 나를 명상센터 앞에 내려주고 돌아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하얗게 수염을 기른 노신사 앞에 앉아 코스 등록 절차를 밟았다. 문항중에는 지난 1년간 약물(술 포함)을 얼마나 자주 복용했는지 여부를 적는 칸이 있었는데, 로빈이 사준 맥주를 마신 상태로 (급히 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다) "음주안함"이라고 작성하고 있자니 죄책감이 두바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서 노신사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침구류를 받아 배정받은 방으로 갔는데 작지만 깔끔해서 호텔방에 온 기분이다. (오래된 호텔을 개조했다고 한다.) 2인실이지만 화장실과 샤워실도 방에 딸려 있다. 한국(전북 진안)에 있는 위빠사나 명상센터는 1인실이었지만 고시원 느낌이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야외의 다른 건물에 있어서 덜덜 떨며 샤워했는데, 여기선 그럴 일은 없겠다. 


2014년 11월 (2년 전) 한국에서 10일 명상 코스를 마칠 때는 다시 이 코스에 등록할 것이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다시 코스를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10일간 지내면서 돈 한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명상센터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지만, 가끔씩 이 명상 코스가 그립기도 했다. (막상 시작하면 끝나는 날만 바라보게 되지만.)


2. 다시 오늘 아침. 어젯밤 마르세이유에서 탄 버스가 아침 10시쯤 브뤼셀에 도착했다. 새벽에는 파리와 샤를드골 공항에도 들렀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빨간색 잠바를 입은 버스기사 아저씨는 네덜란드에서 밀라노로 내려갈 때 탄 버스를 운전한 사람과 동일인물이다. 이 아저씨도 나와 같이 종횡무진 하는구나.


브뤼셀 북역(Gare de Bruxelles-Nord)의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를 잡아서, 10일 후 만날 친척형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핸드폰은 죽어가는데 로빈이 랑데부(만날 곳) 위치를 안 알려줘서 안달이 난다. 


그리고 다시 걷는 브뤼셀.


2년전(2014년) 여름에 브뤼셀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같이 여행하던 한국인 일행들과 그랑플라스(Grand-Place)에 있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오줌싸개 소년 동상을 찾아 다녔지.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일행들이 우산을 샀는데, 나는 그 우산을 받아서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사용했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브뤼셀을 걷는다. 그때와 지금은 형편이 좀 다르군. 먼저 슈퍼마켓에 가서 가장 싼 먹을 것을 찾는다. 가장 싼 먹거리라면 당연히 빵인데, 여기는 빵도 꽤나 비싸구나. 커다란 빵 한덩이가 거의 2유로나 한다. 과일은 엄두도 못내고 빵을 하나 사서 가게를 나오는데, 슈퍼 앞에는 갓난아이를 안은 집시 여인이 앉아서 구걸하고 있다. 줄 동전은 없고 빵을 조금 나눠주는데 그게 뭐라고 "Merci(고마워요)"라며 고개를 연신 숙인다. 아... 망할 통장과 지갑에 돈을 잔뜩 쟁여놓고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거냐!


추억의 그랑플라스를 찾아 브뤼셀의 골목길을 걷는데 어린 딸아이를 안고 길에 앉아있는 아빠가 보인다. 중동에서 온 난민으로 보인다. 나와 행인들은 그 남자를 무시하고 걸어간다. 그리고 그랑플라스에 도착해서는 그깟 건물들이 뭐라고 양손으로 핸드폰을 치켜들고 사진을 찍어댄다. 하!


짧은 시내 구경을 끝내고, 헹크(Genk)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타기 위해, 로빈의 회사가 있는 남쪽(Boulevard International 55)으로 향한다.


브뤼셀-미디(Bruxelles-Midi)역을 지날 때 중동계 남녀 둘이 다가온다. 남자 말로는 자기들은 남매인데 먹을게 필요하다고 돈을 좀 줄 수 없냐고 한다. 그래서 먹고 있던 빵을 내밀었더니 괜찮다며 10유로 정도만 달라고 한다. 울컥 화가 나서 "이건 2유로짜리 빵인데 이게 오늘 내가 먹을 음식이야. 그런데 10유로를 달라고?"라고 말했다. 내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자 남자는 미안하다며 가던 길을 갔다. 휴... 10유로라는 액수에 심통이 나서 날카롭게 쏘아붙여 버렸지만 후회가 된다. 그래도 내가 2유로짜리 정도는 나눠줄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프랑스에서 소피아에게 잔뜩 얻어먹고, 지난 4개월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고, 받고, 받고, 받고, 받고... 그러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게 고작 저거였을까? 아! 정말.


겨울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브뤼셀.


그랑플라스(Grand-Place)



길거리에 버려진 빵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길에 노숙자들이 많다. 아예 매트리스를 갖다 놓고 사는 듯한 사람들도 있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로빈이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헹크로가는 차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