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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프랑스 & 벨기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노트르담 대성당, 공항 (여행 140일째)

노트르담 대성당


2016년 12월 5일 월요일

프랑스 파리


1. 출근하는 아리와 아리의 남자친구를 따라 유네스코 본부 건물까지 갔다. 점심 때 여기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유네스코 인턴은 무급이다. 방콕에서는 물가라도 쌌지만 파리에서 다시 인턴이라니... 태국에서 6개월, 그리고 다시 파리에서 6개월을 무급으로 생활하는 아리가 대단하다.


2. 점심시간까지는 혼자서 파리 구경을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다. 에펠탑은 멀리서도 보이니 굳이 갈 필요가 없고, 사크레쾨르(Sacré-Cœur) 성당과 몽마르뜨 언덕까지 걷기에는 시간이 좀 모자랄 듯 해서 시테 섬의 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을 목적지로 잡았다. 길을 잘 찾아가면 3-4km 정도 거리이지만 지도를 보면서 걷기 싫어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 센 강을 찾은 후 동쪽으로 강을 따라 걸어갔다. 


가는 길에 대여섯명의 집시 청소년 친구들에게 둘러 싸였다.


조잡하게 복사된 서명 용지와 펜을 들이밀며 서명을 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무리와 만나기 전에 만났던 다른 집시 여자가 보여줬던 종이와 똑같은 종이다. 어느 기관에서 정식으로 인쇄된 서명 양식이 아니고, 복사를 여러 번 거쳐 지저분하게 인쇄된 용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공손히 거절하고 지나왔는데, 똑같은 종이를 든, 명백하게 모금가가 아닌 아이들이 나를 포위하니 경계심이 생긴다.


그 중에 한 여자가 과하게 웃으며 종이를 내 눈앞에 들이 대고 몸을 밀착시키더니 내 겉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는다. 겉옷 주머니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경고 신호가 앵앵 울린다. 달라 붙는 여자를 밀쳐 냈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로 욕을 하며 침을 뱉는다. 이 쪼그만 것들이...


근처에는 이 집시 청소년들의 대장인 듯한 백인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헤드폰과 선글라스를 끼고, 음악에 맞춰 무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약을 했나?


집시 아이들이 단체로 욕을 퍼붓고 침을 뱉을 때는 왠지 마음이 차분해져서 웃으면서 갈 길을 갔다. 그리고 내 감정을 통제해 그렇게 차분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기뻤다. 그런데 걸으면서 자꾸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도 복잡해지고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또 만날까봐 강 반대편으로 넘어갔는데 얘네들도 넘어옴) 이 일당들을 또 만났다! 아까 침뱉던 여자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이번엔 내가 웃음을 지우고 정색하며 지나쳤다.


노트르담 성당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그걸 보는 내 눈과 마음이 변했다.


3. 점심시간에 아리를 만나 유네스코 건물로 들어갔다.


지속가능개발 관련하여 세미나가 있다고 아리가 나를 초대해 주었다. 이십여 명이 모여서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망할 세미나 내용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회의실에 보이는 수많은 플라스틱 코카콜라 병.


그리고 콜라를 마시던 흑인 한 명이 말했다.


"환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엔 콜라같은 것도 필요하잖아요. 문제는 어떻게 환경도 지키면서 마음껏 이런 상품들을 소비할 수 있느냐 하는 거죠."


뭔 개소리냐! 


세계의 교육, 문화, 과학을 담당하는 국제기구 직원들이 고작 설탕물이 든 페트병 없이는 1시간 짜리 회의도 못 견디는 족속들이었던 말이냐?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


국제 연합, 유엔(United Nations), 이렇게 멋진 이름을 갖다 붙이고,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멋지게 기호를 그려 넣으면 뭔가 있어보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구나 싶지만, 이렇게 그 속에 들어 있는 개개인을 보면 사탕 사달라고 칭얼대는 4살 짜리 아이와 정신적으로 별 다르지 않은 인간들이 가득하다.


회의가 끝나고 구내식당에 올라갔지만 가격이 비싸서 (아리도 보통 여기서 안먹는다고 함), 구경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빵집에서 아리와 남자친구는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고(하나에 5-6유로다), 나는 제일 싼 맨 빵을 하나 사서 먹었다. 방콕에 있을 때 아리는 채식주의자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채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4. 오늘 저녁 공항에서 사촌형을 만나기로 했다. 이제 동가식 서가숙 여기저기서 빌어먹는 생활은 당분간 안녕이다. 사촌형이 한달 정도 유럽을 여행할 계획인데 그동안 따라다니면 숙식을 다 해결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스페인에서 만나도 되었지만 사촌형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파리의 공항에서 만나 같이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시내에서 샤를 드골 공항까지는 약 28km. 걸어서 가기에는 시간도 체력도 모자르다. 10유로를 내고 공항철도를 타는 게 싫어서, 파리 외곽까지 전철을 타고 간 후 걷는 계획도 세워봤지만 역시나 시간이 모자란다. 결국 공항철도 표를 사기로 하니 시간이 남아 파리를 돌아다닐 시간이 더 생겼다.


내키는 대로 걷다가 어느 교회에 들어갔는데, 너무 아름답다. 생 클로틸드(Basilique Sainte-Clotilde)라는 곳인데, 노트르담이나 사크레쾨르 못지 않게 아름답다. 그럼에도 관광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생 클로틸드 성당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오르세 미술관이 나왔지만 문이 닫혀 있었고, 다리를 건너가니 루브르 박물관이 나왔다. 많은 흑인들이 박물관 근처 광장에서 에펠탑 열쇠고리를 팔고 있었다.


5. 공항에 도착해 와이파이를 잡고 친척형을 기다린다. 형은 여기서 환승하고, 나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간다.


5개월만에 만난 형. 나는 반가운 맘에 가서 끌어 안으려고 했는데, 형은 무덤덤한 표정이라 나도 머쓱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했다. 나는 인천에서 파리까지 오는데 140일이 걸렸지만, 형은 12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서로 느끼는 시간의 농도가 다를 수밖에.


밥을 얻어 먹고 (돈을 쓰는 단위가 달라지니 무섭다)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창밖의 파리


겨울의 짧은 해가 뜬다.



나폴레옹 무덤(Napoléon's Tomb)



길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노숙인


루브르 박물관 근처인듯. 휠체어를 탄 두 남자와 보조하는 두 남자가 신나는 목소리로 대화하며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한국인들이었다.



센강


노트르담 대성당


황홀하다.



후진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다.


다시 유네스코로 돌아가는 길


유네스코 건물에서 본 에펠탑


길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


이름 모를 성당


멋있다.


이름은 생 클로틸드였다.





담을 수 없지만 담아 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생 클로틸드 성당에 대한 설명. 이상하게 관광객이 없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방문하고 싶다면 여기로...


다시 여기 저기 돌아 다닌다.



에펠탑과 셀카봉을 파는 흑인


루브르 박물관 입구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공항철도를 탔다. 해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