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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중국

중국 칭다오: 밤의 소동과 초록바다 (여행 3일째)

2016년 7월 21일 22시 53분 다이(Dai)네 집 6층 손님방


[등장인물]

주황색 아저씨: 여행 첫 날 배에서 만난 호탕한 무역상 아저씨.

점잖은 아저씨: 주황색 아저씨와 친구. 다양한 일을 해왔고 현재는 골프 강사.

싱가포르 아가씨: 칭다오 호스텔에서 만난 싱가포르 여학생. 상하이에서 교환학생 중.

다이: 카우치서핑 호스트. 30대 초반의 조그맣고 차분한 직장인.


1. 어젯밤 호스텔에서는, 언젠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모기에 뜯겨 온몸이 간지럽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민감해지고, 피곤하고, 발가락의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것이 신경 쓰이고 해서 절망적일 정도로 잠 못 들고 있었다. 겨우 잠이 든 것 같았을 때, 어떤 남자들이 우르르 방안으로 몰려들어와 형광등을 켜고, 내 밑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자에게 뭐라뭐라고 말을 하더니 무언가로 때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어제 같이 돌아다닌 한국 아저씨들도 같은 방의 다른 침대에 누워 계셨는데, 이런 불편한 장소를 소개시켜 드린 것이 괜히 죄송하고 민망하다. 게다가 침대에 치렁치렁 걸어 놓은 젖은 빨래들이 찝찝해서, 잠을 자고 있는 건지 눈만 감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새벽 5시 반쯤 날이 밝고, 아저씨들도 자리에서 일어나셨기에, 나도 괜히 일어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다. 


2. 아저씨들에게 한국에서 선물용으로 가져온 홍삼을 조금 드리니, 한봉지는 같은 방에 있던 싱가포르 아가씨에게 주셨다. 그 아가씨가 예의바른 것이 마음에 드셨던지 자꾸 이어주려고 하신다. 참 재미있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아저씨들이 싱가폴 아가씨를 데리고 같이 나가서 놀다오라고 해서 약간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싱가포르 아가씨는 혼자서 어디론가 나간다. 나중에 아저씨가 "남자가 이런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남자답게 나가야지, 물에 술탄듯 술에 물탄듯 어정쩡하게 넘어가려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정말로 맞는 말이다. 누군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지.


3. 가방을 호스텔에 맡겨두고 기차역을 지나, 내일 버스 탈 곳을 확인해 두고, 바닷가로 갔다. 맑은 하늘에, 신기하게도 바다가 온통 초록색이다. 밝은 연두색 해초들이 해변에 눈더미가 쌓이듯 떠밀려와 중장비 차량들이 해초를 치우고 있지만 턱도 없다. 다른 바다 한 편에서는 사람들이 무수히 나와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 뜰채랑 통을 팔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같이 물고기를 잡는 엄마와 아빠들이 있다. 보기 좋았다. 벚꽃 시즌에 한강에 나온 것처럼 사람이 무척 많고, 길에서는 1위안짜리 물이나 아이스크림, 꼬치를 판다. 해안가를 따라 걷고 걸어 담장길이 예쁜 대학로(大学路, Da Xue Rd.)를 지나, 해양대학(中国海洋大学)을 지나, 유럽느낌이 나는 동네를 지난다. 깨끗하고 선명한 느낌을 주는 중산공원(中山公园)에서 산길을 따라 한참 걷다가보니 어떤 절(湛山寺, Zhanshan Temple)까지 들어갔다. 뒷문 쪽에서 공사를 하고 있길래 그냥 들어갔는데 나중에 보니 입장료 10위안을 내고 들어오는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려다가 노선을 봐도 이해가 안 되어 온 길을 되짚어 걸어간다. 돌아오는 길에 목도 마르고 아이스크림이나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참고 숙소로 돌아오니 아저씨들이 계신다. 다시 한 번 얻어먹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마파두부, 국수, 마늘쫑밥과 달짝지근한 향기가 나는 45도 짜리 술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한가한 주택가를 걸어 돌아와 두 분과 정말로 작별하고(이틀 동안 정도 많이 들고 밥도 많이 얻어먹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탔다. 


4. 다이(Dai)네 집으로 가는 길. 이번에도 지각이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난줄 알고 엉뚱한 곳에서 내릴 뻔 했지만 다행히 잘 내려서 어제 걸었던 시장 길로, 콜라를 하나 사 마시며 찾아간다. 다이가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친구네 집에 박스를 얻으러 간단다. 이미 깜깜해진 도시, 같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걷고 버스를 타고 친구 집으로 향한다. 박스를 얻고 친구와 잠깐 인사도 하고(친구는 영어를 못해서 쑥스러워 했고 다이는 친구에게 이럴 때라도 영어 연습을 해보라고 응원해 줬다),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칙칙한 느낌의 주거 지역


사람이 살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폐가처럼 황량한 주거 단지


호스텔의 테라스에 걸려있던 타이어. 화분으로 쓰는건지 날려온 씨앗이 싹을 틔워 풀이 자라난 건지 모르겠다.


오래된 아파트 건물과 에어컨 실외기. 창밖에 널린 빨래가 보기 좋다.


길거리의 네온사인


밀려온 녹조류가 해안을 뒤덮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괴이한 광경. 중장비 차량들이 열심히 작업중이지만 저걸로는 택도 없다.


해변을 뒤덮고 있는 녹색 해초들. 사진 중앙의 잔교(栈桥)와 해안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건 답이 없다.


천막의 빨간색, 해초의 초록색, 바다의 파란색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 어딜가나 청소하는 분들은 나이든 여자분들이다.


어른이고 애들이고 다같이 물통과 채를 들고 다들 열심히 무언가를 잡고 있다. 방학 숙제로 [소라 잡아오기] 같은게 있는걸까? 채집 도구를 파는 사람들도 많다.




굴을 상당히 많이 따신 아주머니



오늘의 전리품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


잔교에 놀러온 많은 사람들. 햇볕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 - 하얀 피부가 숭상받기 때문에.


한참을 걸어 도착한 중산공원.


호수는 수련으로 뒤덮여 있다.


방향을 잡는데 지침이 되어 주었던 방송타워.


산속의 찻집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 나무 간판에 적힌 글자가 멋스럽다.


청도 식물원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가 본다.


산에서 빠져나오니 짠샨사(湛山寺)의 뒷문이 보인다. 원래 입장료가 있는 곳인데 어쩌다 보니 뒷문으로 무단 입장해 버렸다.


절내 풍경







잉어가 무지 많다.



분리수거 지침


대학로의 담길에서 화보 촬영을 하는 사람들



다시 해안가로 돌아왔다.


포대자루에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할머니(사진 중앙 왼쪽). 겉옷 등부분의 알록달록한 색깔은 패션이 아니라 천을 기워낸 것이다. 바로 옆의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과 대비된다.


해조류의 침범을 받지 않은 모래사장도 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 중 두 개가 기억에 남는데, 그 중 한 개는 길에서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들이다. 웃통을 벗고 다니는 젊고 나이든 남자들이 무지 많고, 그게 꽤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머지 하나는 길에서 오줌을 싸는 것. 애들 엄마가 애들 소변을 전봇대나 쓰레기통 아무곳에서나 보게 한다. 심지어 애들이 오줌을 쉽게 싸도록 구멍이 뚫린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길거리 풍경


아저씨들에게 얻어먹은 마지막 식사와 향기가 달콤했던 술.


노점상들


아파트 단지에서 빨래를 밖에다 널어두는 것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 하지만 이 풍경은 좋았다.



밤의 거리에서 다이를 기다리는 중. 학교 앞이었는데 중국 학교들은 이름이 숫자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제15중학, 제23중학 이런 식으로. 


다이의 방에 걸려있던 글귀, 열심히 한자와 뜻을 찾아 해석해 보았다.

萬千心語 誰知其詳? 唯爾寂靜 輕聽永傳. 

만천심어 수지기상. 유이적정 경청영전.

(마음속 수만가지 말, 누가 그 상세함을 알런지? 오직 침묵만이 영원히 속삭이네.)


손님방에서 본 다이네 집 구조


손님방의 화분과 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