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영국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하숙집, 알란 와츠, 마사지 (여행 188일째)

2017년 1월 22일 일요일

영국 옥스포드(Oxford)

[1] 하숙생들: 2번집에서 시작된 하루. 대만 도우미는 아침 일찍 떠났다. 2번집에는 한국인 박사가 하숙하고 있는데 곧 나갈 예정이다. 여기서 2년 정도 살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변기통에 묻은 똥자국을 닦지 않는 것, 샤워를 오래 하는 것, 너무 집에만 있는 것 등 데이브 영감님 맘에 안드는 부분이 좀 있어서 나가라고 했단다. 새로 들어올 후보자들이 몇 명 집을 보러 왔다. 가격을 시세보다 싸게 내 놓아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지만 영감님은 모두 맘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집구경이 끝나고 1번집으로 돌아갔다.

[2] 알란 와츠: 오늘은 1번집에서 그동안 못한 빨래를 하려고 했는데, 영국 학생이 이미 빨래를 돌리고 있었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영감님의 창고에서 책을 구경했다. 그 중 알란 와츠(Alan Watts)의 "불안이 주는 지혜(Wisdom of Insecurity)"라는 얇은 책을 골라 읽었다. 우주 만물의 근본적인 속성인 변화와 불안정에 대해 읽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히치하이킹이나 결과를 알 수 없는 모험에 끌리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영국 학생의 빨래가 끝나 내 옷을 모조리 빨았다. 마지막으로 세탁기를 돌렸던 것이 아이슬란드에 있을 때니 2주 정도 전이다. 

[3] 저녁 메뉴: 세탁이 끝난 후에는 요리와 설거지를 도와주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 요리에도 치킨이 나와 닭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반찬 투정을 할 수는 없어서 감사히 먹었다. 요리는 그레이비(gravy) 소스를 곁들인 닭 구이와 감자 구이(roast potatoes)였다. 

[4] 새로운 세계: 식사 후에는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눴다. 영감님이 꽤 수다스러웠다. 영감님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던 한국인 히치하이커 얘기를 들었다. 그 여행자가 영감님 집에 오기 전에 묵었던 집에서는, 집주인이 집에서 발가벗은 상태로 생활을 하며, 여행자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처음엔 '세상엔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수십, 수백만 종류의 생물들 중 옷을 입는건 인간과 일부 애완견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있던 세계가 존재한다. 여행, 채식, 명상, 카우치서핑, 히치하이킹.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

[5] 마사지: 밤에는 영감님 방의 나란히 붙어 있는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불을 끈 후에도 잠이 안오는지 할아버지(61세)가 종종 말을 걸어 온다. 그러다가 마사지 얘기가 나왔다. 아차, 내가 마사지에 관한 내용을 프로필에서 안 지웠나? 베라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별 수 없이 어둠 속에서 옆 침대로 넘어가 어깨 마사지를 좀 해줬다. 오후에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를 한 것은 이것의 복선이었구만. 아빠, 엄마, 할머니 안마를 해 드린다고 생각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자... 하지만 억지로 마사지를 해 준게 내심 불쾌했던지(러시아에서 헬프엑스를 할 때처럼), 밤에는 할아버지에게 겁탈당하는 끔찍한 꿈을 꿨다. 그래서 영감님과 거리를 두고 싶어졌지만, 앞으로 2주 동안은 함께 지내야 한다.


강변 산책길에 있는 예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