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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러시아

러시아 타타르스탄 헬프엑스: 쓰레기 소각과 마사지 (여행 48-51일째)

2016년 9월 4일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 공화국 


[등장인물] 

보바(블라디미르): 헬프엑스(Helpx) 호스트. 일본 담배 회사 영업 사원. 올가의 남편.

올가(올렌카):헬프엑스(Helpx) 호스트. 가정 주부. 블라디미르의 아내.


1. 열심히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고 있다. 모스크바에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검색하면 많은 호스트 프로필이 나오지만 생각처럼 호스트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은 대도시여서 그런듯 하다. 그래도 뭐 돈이 없으니 이렇게 계속 찾아 봐야지. 


복사 붙여넣기로 메시지를 보내서는 아무래도 정성이 덜 들어간게 느껴지니까, 호스트의 프로필과 리퍼런스를 잘 읽어보고 거기에 맞춰서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거절 메시지가 오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또 다른 거절 메시지가 오면 또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를 반복한다. 


히치하이킹도, 카우치서핑도 모두 '거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다. 정성들여 작성한 메시지에 아무런 내용 없이 거부 표시만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아예 며칠 동안 응답이 없는 경우도 있고, 퉁명스러운 답장이 오는 경우도 있다. 호스트의 자기소개를 읽을 때는 너무 흥미롭고 활기차고 멋진 사람 같지만, 실제 메시지를 받아보면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거절에 대한 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애초에 부탁하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거절당하는 것을 개인적인 상처나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두려움 없이 나의 필요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겠지. 그리고 차갑게 거절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그런 사람들은 아마 요청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럴 것이다), 거절의 메시지에 미안함과 따뜻한 응원을 담아 보내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2. 오늘은 쓰레기를 신나게 태웠다. 창고 옆에 차곡 차곡 쌓아두던 쓰레기. 당연히 누가 수거해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누가 이 커다란 러시아의 시골 구석까지 와서 쓰레기를 수거해 가겠는가. 일부는 보바가 차에 싣고 가서 어디론가 가져가 버리고, 나머지는 태우는 것이었다. 나에게 쓰레기 태우는 일을 맡겼는데, 드럼통에 온갖 쓰레기, 플라스틱, 페트병, 비닐, 폐자재, 벽지, 깡통, 유리, 나뭇잎, 풀 등을 죄다 넣고 태운다. 아직도 불씨를 살리고 불을 키우는 일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쓰레기를 담은 드럼통 앞에서 낑낑대고 있자, 보바가 불을 키워준다. 쓰레기도 잘 안타는 것을 많이 넣으면 불이 금방 죽어버려서 골라가며 드럼통에 넣어야 한다. 이것저것 다 태우기 때문에 유독성이 분명한 노란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개발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 농약도 비료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폐기물들을 태우는게 아이러니하다.


3. 저녁에는 올가에게 마사지를 해준다. 헬프엑스 자기소개에 마사지를 할줄 안다고 적어 놓은게 실수였다. 


보바가 오더니, "올가가 마사지 받는걸 좋아하는데 좀 부탁해도 될까?" 라고 한다. 


손님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거절하냔 말이야! 부모님이나 할머니 어깨 주물러 드리듯이 조금만 해줄 생각이었는데, 올가가 아예 침대에 엎드린다. 별수 없이 머리, 목, 어깨부터 팔, 손, 허리, 등, 허벅지, 다리, 발까지 전신을 마사지 해준다. 땀이 뻘뻘나고, 올가는 좋다고 흐느적거리는데 조금 하다가 그만둘 수도 없고, 최대한 열심히 해준다. 


보바에게, "내가 매일 해줄 수 있는게 아니니까, 옆에서 보고 다음부터 남편인 네가 해주는게 좋을거야."라고 말했지만, 보바는 알았다고 하고는 노트북을 들고 식당으로 가서 <월드 오브 탱크>라는 게임을 한다. 이런 망할.


2016년 9월 5일


4. 오늘도 쓰레기를 계속 태우다가, 폐기될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옮기는 작업을 올가와 오후 내내 했다. 올가가 일찍 지쳐버린 덕분에 나도 많이 쉬었다. 몸을 자꾸 쓰니 근육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밥을 하루에 두 끼 밖에 안 차리니까 끼니때마다 많이 먹게 된다. 그리고 아침에 보바와 올가가 야식으로 케이크 같은 걸 먹고 싱크대에 넣어둔 접시와 찻잔을 혼자 설거지 할때면 왠지 서운한 기분과, 좋은 대우 받는 노비(또는 식모)같은 기분도 든다. 냉장고에서 먹고 싶은게 있으면 마음대로 꺼내 먹으라고 보바가 말했지만 여기가 내 집이 아닌 이상 쉽게 그렇게는 안되지... 그렇다고 속좁게 삐질 수도 없는게, 둘이 나에게 너무 잘해 주고 좋아해 준다. 그래도 2주 이상은 있기 싫고, 1주일 정도가 딱 좋다. 


어디서든 마찬가지일 것 같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항상 미래만 바라보는 자여... 네 여행의 목적은 글을 쓰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을 적게 썻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멋진 풍경과 건물들을 보려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보고 신을 찾기 위해 광야로 나온다고 하지 않았었나? 히치하이킹을 하는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저 겸손하게 걷고, 가는 길에 얻어탈 수 있으면 얻어 타고, 걷고, 걷고, 걷자. 그리고 길에서라도 자고, 배고픔과 추위도 참자. 그 많은 수행자들과 모든 동물들처럼. 계획에 얽매이지 말자. 모든걸 통제하려 들지 말자. 신에 대한 믿음을 갖자.


2016년 9월 6일 흐렸다가 맑아짐. 구름 많음.


5. 한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있으니 일기장에 적을 내용이 많이 없다. 어제 나르던 지붕을 마저 나르고, 정리하고, 창문 교체하는 걸 구경했다. 


저녁에는 다시 한 번 올가에게 마사지를 해주게 되었는데, 어짜피 해줄 것 기쁜 마음으로 하자. 방에 들어가니 올가가 마사지를 기다리며 엎드려 누워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션까지 준비를 해 놨다. 오일 마사지를 하듯이 로션으로 해달라는 거다! 이건 너무 심한거 아니야? "나는 로션으로 마사지 해본 적 없어." 라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마사지를 20-30분 정도 해준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해드린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왜 자꾸 노예가 된 기분이 드는걸까. 


6. 우크라이나의 키예프(Kiev)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Bucharest)에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구했고, 불가리아에서는 노부부와 1주일 헬프엑스를 하기로 했다.



2016년 9월 7일 구름 많음. 벌써부터 겨울이 오고 있다.


7. 오늘은 올가가 쉬지 않겠냐고 했는데, 여기서 쉰다고 해서 할 일도 없고 해서 괜찮다고 했더니, 나무에 박힌 못 뽑는 일을 맡겨 줬다. 각종 연장을 이용해서 못을 뽑는다. 못이 뽑힐 때 기분이 좋다. 은근히 재미있는 해체 작업. 올가는 오늘도 힘든지 집 안에만 있었고, 오랜만에 점심도 조금 일찍 (2시~3시 사이) 먹었다. 그러다가 누가 문을 두드려 열었는데, 술 취한 남자와 여자가 들어 온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는 못하고, 자고 있던 올가를 깨운다. 올가가 웃는 얼굴로 몇 마디 대화를 하더니 집 밖으로 내보낸다. 무슨 사람들이냐고 물어보니, 꿀을 팔러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흥미롭다.


쉬엄쉬엄 일을 하다가 방에 들어와 지출 경비 정리를 한다. AndroMoney라는 앱을 다운받았는데 꽤 편리해서, 지금까지 종이에 적어오던 것을 모두 옮겼다. 7월에 30만원 8월에 30만원 정도씩 썼고, 우크라이나에 가는 버스값까지 계산하면 총 70만원 정도 썼다. 아직까지는 양호하다.


주방 겸 거실 겸 식당 풍경.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고 실내에선 실내용 신발을 신고 다닌다. 물론 고양이들은 신발 같은 것 없이 창문을 통해 집 안과 밖을 자유롭게 다닌다. TV로는 뉴스를 보거나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데, 여행 프로그램이 꽤나 흥미로웠다. 여행을 하는 두 명의 참가자가 제비뽑기로 가난한 여행자와 부자 여행자를 정한다. 가난한 여행자는 10달러였나, 꽤나 빠듯한 돈을 받고, 부자 여행자는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를 받아, 같은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러시아 고양이



쓰레기 태우기


아무거나 다 집어 넣고 태운다.



사람을 불러서 새로 교체한 창문.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창문이지만, 여기서는 창문의 등급이 확 달라졌다.


주방에 득실거리는 파리들. 음식과 사람 몸에 끈질기게 달라 붙는다.


평화로운 오후. 고양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다가가보니 새를 한마리 사냥했다.


자랑스럽게 내려 놓은 전리품. 가끔 올가와 보바의 침실에 사냥한 쥐나 새를 물어다 놓는다고 한다.


새를 탐내는 다른 고양이. 회색 고양이가 알파-피메일(alpha-female)이고, 나이, 경험, 사냥 능력 모두 다른 고양이들 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사냥한 새를 다른 고양이에게 넘겨준다.


새를 물고 가다가 눈빛을 한번 날려준다. 영락없는 호랑이네. 옛날 시골집에 들어와 아이를 물어가던 호랑이들 모습이 꼭 저랬을 것 같다.


이날은 집수리를 하며 뜯어낸 목재에서 못 제거하는 일을 했다.


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