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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불가리아

불가리아 바르나 - 라즈그라드: 오래된 도시들 (여행 75일째)

2016년 10월 1일 토요일 불가리아 

이동경로: 다보빅 - 도브리치(Dobrich) - 바르나(Varna) - 라즈그라드(Razgrad) - 롬치(Lomtsi)



[등장인물]

기테: 덴마크 출신 50대 여성. 헬프엑스(helpx) 호스트. 

플레밍: 덴마크 출신 50대 남성. 기테의 남편.

트레이시: 영국 출신 50대 여성. 헬프엑스(helpx) 호스트. 

폴: 영국 출신 50대 남성. 트레이시의 남편.


1. 오늘은 일주일간 지내온 기테와 플레밍의 집을 떠나, 불가리아 롬치(Lomtsi) 주변에 있는 다음 헬프엑스 호스트 트레이시의 집으로 가는 날이다. 기테가 페이스북의 '불가리아 이주민 그룹'에 나에 관한 글을 올리고 호스트 할 사람을 찾아봐 준 덕에 쉽게 갈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기테가 올린 글에 어떤 사람이 댓글로 "어떻게 집에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들이냐"는 식의 글을 약간의 인종차별적 뉘앙스를 섞어서 올렸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기테와 트레이시 등 화가 난 사람들이 많았고, 일종의 동정표(?)를 얻었는지, 트레이시를 포함해서 여러 명이 이 한국인 여행자를 받아줄 수 있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 중 가장 먼저 연락이 온 트레이시와 헬프엑스(helpx)를 통해 다시 한번 연락을 주고 받았고, 이제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원래는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이었는데 (사실 히치하이킹으로 다음 집으로 가는 것은 약간의 민폐인데,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를 예측할 수도 없고, 연락도 힘들어서 집주인을 기다리게 하기 때문이다), 기테와 플레밍이 걱정이 된다고 말리면서 버스비를 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플레밍이 버스비를 하라면서 100레브(약 68000원)짜리 지폐를 주려고 하는 것을 사양하고 20레브만 받았다. 


아침 일직 캐러밴에서 일어나 짐을 싼다. 아침마다 화장실 가는 타이밍이 있는데, 평소와 조금 다른 시간에 갔더니 변기 위에 앉아 있을 때 기테가 문을 열기도 했다. (오늘 가게 될 트레이시의 집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헬프엑스를 통해 지낸 세 집 모두 화장실이 잠기는 곳이 없다.) 점심에 먹을 오이, 토마토, 바나나, 빵을 챙기고, 아침으로는 빵, 누텔라, 치즈, 포도 등을 챙겨 먹는다. 배부르게 먹고 7시 30분이 조금 넘어 기테와 작별을 한 후, 플레밍과 안개낀 도로를 달려 도브리치로 향한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안개가 짙다. 나를 버스정류장에 태워주러 나왔다가 괜히 플레밍에게 사고가 나는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된다. 플레밍에게 버스표를 사는 것도 도움을 받고, 8시 15분 차를 타고 (5레브, 약 3000원, 인터넷에서 확인한 것과 시간이 약간 달랐다), 바르나(Varna)로 향한다.


기테와 플레밍 집에서의 마지막 아침. 기테가 나중에 심으려고 채집해 둔 토마토 씨앗이 보인다.


도브리치의 버스 터미널.


2. 가는 길의 풍경이 아름답지만 졸음이 쏟아진다. 바르나에 도착해, 공동묘지그랜드 몰 옆에 위치한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다. 확실히 좀 더 큰 도시여서 그런지, 이스탄불, 모스크바 등 외국 여기저기로 가는 버스들이 있다. 9레브에 라즈그라드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옷을 잔뜩 껴입고 배낭을 멘 채로 시내를 향해 걷는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다시 오기 힘들 도시이니 조금이라도 구경해 보고 싶다. 도시를 걸으며 남은 돈 6레브를 쓸만한 곳이 있을까 찾아보며 빵이나 초콜렛 등의 가격을 살펴보지만, 이미 배가 더부룩할 정도로 부른데다가 기테에게 받아온 점심거리까지 들고 있으니, 뭘 살 필요는 없다. 그저 심란하게 가격만 구경할 뿐이다.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커다란 성당(Dormition of the Theotokos Cathedral)이 보인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본다. 입장료가 있었는지, 문이 닫혀 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버스정류장 앞에도, 성당 옆에도 꽃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시간이 조금 남고, 길 건너편이 좋아 보이길래 건너간다. 도시 중심지(city center)라는게 느껴지고, 넓은 광장의 분수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과 노천 카페들이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로마시대 유적이 있다는데 버스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돌아가야 한다. 서둘러 되돌아 오면서 거리의 사람들과 가게들을 구경한다. 안 그런 도시가 없었지만, 이곳 바르나도 정말 멋진 도시다.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어떤 사람이 불가리아어로 무언가를 말하며 기부금을 모집한다. 기부금을 모집하는 사람들, 특히 여객버스에서 모집하는 사람들은 보통 의심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데, 이 사람에게는 얼떨결에 1레브를 주었다. 주고 나서 이 1레브가 우크라이나에서는 17그리브나라는 것을 알고 질겁한다. 게다가 버스비의 거의 1/5에 해당하는 돈이니 꽤나 큰 돈이지... 17그리브나면 맥주 한 병과 감자 떡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이고, 구걸하는 꼬마 아이들에게 17번 1그리브나 '지폐'를 줄 수 있는 돈이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동전 하나로 적선해 버렸다. 그렇다고 나도 거저 받은 돈이면서 아까워서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까워 하지 말고 집착을 버리자.


바르나의 버스 터미널.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라하, 키예프, 민스크 등 외국 여러 도시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


바르나의 개.


바르나의 대성당(Dormition of the Theotokos Cathedral).


성당 주변의 꽃가게들.


멋진 성당이지만 들어가지는 못했다.


시티센터 쪽으로 길을 건너 왔다.


깨끗하고 한적한 보행자 거리가 있다.


로마 목욕탕 유적(Roman Thermae)과 각종 극장이 있나보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행상인.


어린이 보호 표지.


기테와 플레밍이 준 돈으로 버스표를 두 개 끊고 기부까지 했는데도 돈이 남았다.


그리고 내륙의 라즈그라드를 향해서 달린다.


멋진 풍경.



3. 봉투의 점심거리를 먹고 싶으면서도 배가 불러서 손을 못대고 있다가, 버스가 12시쯤 라즈그라드(Razgrad)에 도착한 후 도시를 돌아다니며 음식을 끝장낸다. 이런 조그만 도시에도 (인구 약 33,000명) 잘 만들어진 보행자 거리와 동상과 기념물들이 있고 커다랗고 오래된 신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특히 시티 센터에 있는 모스크(Ibrahim pasha Mosque)는 중세의 성과 같은 특이한 양식과 파란 돔이 얹혀진 아름다운 건물이다. 공사중인지 입장은 불가능하고, 사람들도 건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건물은 1616년에 지어졌고, 그 당시는 이곳이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영토일 때이니, 건물도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진 것 같다. 


짧은 도시 산책을 끝내고 라즈그라드로 마중을 나온 트레이시를 만난다. 그리고 트레이시와 폴이 살고 있는 롬치(Lomtsi)의 조그만 집으로...


하루의 일을 기록하는 속도가, 하루에 일어나는 일들의 속도와 양을 따라가기 버겁다. 많은 일들이 일어단다기 보다는 새로운 일들, 새로운 배움들이 하루하루 가득하기 때문에 (매일 똑같은 일상이었던 예전의 삶과는 달리), 심지어 천장이나 문이나 벽의 모양까지도,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만 해도 반나절 만에 다섯 개의 다른 도시와 마을을 돌아 다녔다!


라즈그라드의 버스 터미널.


라즈그라드 구경을 시작하자.


광장 주변의 건물.


보수중인 건물과 조그맣고 오래된 건물.


동상과 꽃다발.


라즈그라드 중심부와 모스크.


한적한 라즈그라드의 보행자 거리.


1616년 완공된 이브라힘 파샤 모스크(Ibrahim pasha Mosque).


트레이시의 차에 타고 롬치로 향한다.


트레이시와 폴의 집에 도착. 각종 사물이 난잡하게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집안 풍경.


그리고 비교할 데 없이 아름다운,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햇살이 들어와 각종 사물을 비춘다.


건축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책을 하나 꺼내준다. 읽을 시간은 없었지만 그림도 많고 쉬워 보이는 책이다.


양파나 당근을 먹고 꼬다리를 이렇게 물에다가 담가 놓으면 다시 싹이 나서 밭에다 옮겨 심을 수 있다.


트레이시와 폴의 집. 몇년 전 불이 나서 거의 새로 짓다시피 만들어낸 건물이다.


닭, 기러기, 거위 등을 키우고 있다. 예전에는 염소 등 큰 동물도 키웠다는데 이제는 관리가 쉬운 새들만 키운다.


주방과 주방에서 얼쩡거리는 고양이.


달콤 씁쓸한 당밀(糖蜜, black treacle).


한밤중에 잔반으로 잔치중인 고양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