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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스페인

스페인 시에라 네바다: 갈림길, 스키장, 산길 (여행 149일째)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스페인 안달루시아.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1] 아침. 그라나다에서 체크아웃. 승희는 네르하(Nerja)에 가고 싶어하고, 친척형은 시에라 네바다에서 보드를 타고 싶다고 해서 갈등이 생겼다가, 잠시 갈라서기로 했다. 승희를 버스정류장 근처에 내려주고 시에라 네바다를 향해 달린다. 나야 선택권이 없고 어짜피 가는 거니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

가는 길에 커다란 쇼핑몰(Nevada Shopping)에 들러 형이랑 나란히 화장실에 들어가서 똥을 눈다. 타이밍이 맞아 나올 때도 나란히 나오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위해 던킨 도너츠로 갔다. 친척형을 따라 버거킹, 맥도날드, 스타벅스, 던킨도너츠 같은 곳들을 다니고, 숙소에서는 라면을 끓여먹고, 차에서는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사람들과 한국말을 하고, 여행이 여행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자존심을 죽이는, 절제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번 보다는 잘하고 있다. 모든 것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똑같은 사람도 어떤 사람 눈에는 밉고 어떤 사람 눈에는 사랑스러울 수 있다. 현실을 보고, 현재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자.

[2] 어쩌면 형이랑 승희가 신경전하는게 나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부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무의식 중에 두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의 갈등에 내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냉소와 방관하지 말자.

[3] 스키장 도착. 형은 보드를 타기 위해 장비와 바지를 빌리고, 장갑과 모자까지 샀지만 두번 반 타고 말았다고 한다. 쓴웃음이 난다. 그 사이 나는 렌트카를 알아보고, 똥을 한 번 더 싸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말리고, 호텔(Meliá Sol y Nieve) 프론트에서 비행기표를 출력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구름이 이리저리 껴있긴 하지만 산은 여전히 멋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이쪽저쪽 지그재그로 올라가다가, 스키장 슬로프 쪽으로도 가 보고, 반대편의 저지대가 보이는 곳도 가 본다. 길이 없는 길을 가는건 언제나 두근두근. 주차장을 지나 동남쪽으로 뻗은 길(Carr. Hoya de la Mora)까지 올라갔다. 생각도 못했던 공간에서 아래를 내려보며 서있다는게 신기하네. 높은 곳에서 이런저런 방향으로 사진을 찍으며 혼자 좋아하다가(아무리 찍어봐야 시각적 감동이 담기지 않는다) 형, 승희와 통화를 하고, 여기저기로 길을 찾으며 산을 내려온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등산로(이런곳)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4] 호텔은 밥이 나와서 좋지만(밥값을 생각하면 좋은 것도 아님) 에어비엔비에 비해 좁고 답답하다. 호텔로 돌아와 형 컴퓨터로 만화책(헌터X헌터)을 봤다. 정말 재미있다. 여행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이런 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행하면서 본 이런저런 장면, 사건,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어떤 방식,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든.

그라나다에서 시에라 네바다 가는길. 약 35km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산길이어서 좁고 구불거려 속도를 못 내기 때문에 꽤 걸렸다.

시에라 네바다 스키 리조트 지도

친척형 장비 대여와 스키장 이용권 등을 도와주고 헤어졌다.

언덕길을 올라간다.

날씨가 나쁘지만 높은 곳에 오니 풍경이 좋다.

펭귄 상점

지붕에 하얗게 눈이 쌓인 집들

저 멀리 구름이 멋있다.

슬로프에서 걷지 마시오.

사람도 있다.

다시 언덕을 내려간다.

밤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