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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포르투갈

포르투갈 포르투: 코임브라 대학교, 맥도날드, 크리스마스 (여행 160일째)

포르투 클레리고스 성당(Igreja dos Clérigos)


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포르투갈 리스본 - 코임브라(Coimbra) - 포르투(Porto)

[1]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형과 튀김우동을 끓여 먹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숙소 근처에서 어젯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알게된 동주를 만나 차에 태웠다. 승희와 주현이가 묵고 있는 호스텔 앞으로 가서 주현이를 태우고 승희와 작별했다. 승희는 이제 리스본에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제 형과 승희 사이에서 눈치보느라 정신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시원하면서도 그동안 깊은 얘기도 많이하고 정도 들었는데 헤어지는게 아쉬웠다. 거의 한달 동안 같이 여행했는데 끝이 안 좋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승희편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형한테 기생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추억 몇 개라도 남겨 가기를.

[2] 뒷좌석에 동주와 주현이를 태우고 형은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앉아 포르투로 향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는 약 300km로 3시간 거리다. 두 도시 사이에는 포르투갈의 전 수도인 코임브라(Coimbra)가 있었는데,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13세기에 설립)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코임브라 대학교를 보기 위해 잠시 들렀다. 대학교 근처에 차를 세우고 텅 빈 캠퍼스를 둘러봤다. 일행들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점심 먹을 곳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점심은 맥도날드로 정해졌다. 망할 맥도날드 덕분에 주차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다시 차에 탑승했다. (나도 한때 많이 먹고 좋아했지만) 맥도날드를 예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수채식파로 존재하는 것은 고독한 일이었다. 다들 햄버거를 먹기로 결정하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빨리 맥도날드 가자!" 사람들의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조수석에 자리한 내가 네비로 주변의 맥도날드를 검색했고, 곧 맥도날드를 하나 찾았다. 하지만 이럴수가! 맥도날드의 문은 닫혀 있었고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휴무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맥도날드가 문을 닫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기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다른 곳은 열리지 않았을까? 버거킹은?"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일행은 여자친구의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가 여자친구 부모님의 여행계획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아이처럼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나만 홀로 은밀한 쾌재를 불렀다. 크크크.

[3] 후덥지근하게 덥혀진 공기 속에서 친척형이 좋아하는 한물 간 한국 노래들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들으며 고속도로를 계속 달려 마침내 포르투에 입성했다. 숙소는 도심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주거구역(Rua do Melo 42, Porto)에 있었다. 길을 찾다가 좁은 골목에 갇혀 지나가던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다. 평소 운전에 자부심이 있는 형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하는 기색이었으나 결국 골목을 빠져나와 숙소에 잘 도착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찾은 장소였는데, 일반 가정집이 아닌 숙박업 전용으로 마련된 집이었다. 만나서 열쇠를 건네준 사람도 집주인이 아니라 집주인의 여러 건물들을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에어비엔비의 애초 취지는 이런 것이 아니었던것 같지만, 이런 업소들 때문에 돈은 많이 벌고 있을테니 내가 시비를 따질 필요는 없겠지. "필요한 것이나 궁금한게 있으면 나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매니저는 다른 숙소에 열쇠를 건네줘야 한다며 사라졌다. 다같이 짐을 풀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4] 식사가 끝난 후 동주는 예약해 둔 호스텔로 간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동주는 포르투갈에 올 때 짐을 거의 갖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차로 데려다 줄 필요는 없었다. 포르투 구경도 할 겸 동주와 함께 나갔다. 거리는 텅텅 비어있었고 가게들은 모두 닫혀 있었다. 남쪽으로 뻗은 보행자 거리(Rua de Cedofeita)에 접어들자 커다란 종탑(Clérigos Tower)이 보여서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5] 동주와 헤어진 후에는 주현이와 함께 음식을 살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슈퍼마켓이고 식당이고 다 닫혀 있었다. 형에게 술과 안주를 조달해 오겠다고 자신있게 큰소리치고 나왔기 때문에 대형 상가의 슈퍼마켓마저 닫힌 걸 보고는 절망적인 기분이 빠졌다. 그러다 우연히 문이 열린 가게를 찾았는데 들어가 보니 러시아 식음료를 파는 가게(Mix Markt Porto)였다. 보드카는 종류별로 가득 있었지만 형이 사오라고 한 포트와인은 찾을 수 없었다. 하릴없이 와인은 포기하고 러시아 맥주, 러시아 과자, 러시아 아이스크림을 샀다. 가게 점원이 손님들과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모두 러시아 계통인것 같았다. "스파시바!(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니, 점원이 웃으며 "스파시보"-라고 대답했다.

[6] 크리스마스에는 외국계 가게들만 문을 여나 보다. 저녁을 먹기로 한 곳은 중국 음식점이었다. 호스텔에 체크인 한 동주가 거기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크리스마스에도 영업하는 음식점(Restaurante Mar Norte)을 용케 찾아내 우리에게 위치를 알려줬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명은 변호사였는데 착하고 예의바른 대학 선배 느낌이었고, 한명은 고양이 해부하는 것을 즐길것 같은 괴짜 느낌의 의대생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가벼운 대화, 돈 얘기, 여행 얘기가 오고 갔다. 장단을 맞추기 위해 잠시 대화에 열심히 참여해 보았지만 너무 공허하고 피곤했다.


코임브라 대학교의 동상(Estátua de D. Dinis)

코임브라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강변 풍경이 너무 좋아서 차를 잠시 세웠다.

코임브라의 몬데구 강

포르투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여서 환경미화원도 쉬고 있는지 쓰레기통이 포화 상태다.

보행자 거리를 따라 시내로

포르투 카르모 성당(Igreja dos Carmelitas Descalços)의 아줄레주(Azulejo)

카르모 성당(Igreja dos Carmelitas Descalços)

클레리고스 성당(Igreja dos Clérigos)

Casa Ori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