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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포르투갈

포르투갈 포르투: 와이너리, 무지개 다리, 황혼 (여행 161일째)

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포르투갈 포르투(Porto)

[1]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꿈을 꿨다. 술을 먹어서도 그런것 같기도 하고 잠을 오래자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술은 확실히 욕정을 불러 일으킨다. 기억나는 두 개의 꿈 중 하나에서는 료루가 나왔고, 또 다른 꿈에서는 적대적인 로봇들이 나왔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위험지역에서 적들을 경계하다가, 뱀이나 인간 형태를 한 로봇들을 만나 총격전을 벌였다. 로봇이 활동을 못하는 성역을 향해 원형 통로를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따라 올라오는 로봇들을 발로 밟아 떨어 뜨렸다. 참 웃긴 꿈이다. 매일밤 영화를 찍고 있구나.

[2] 포르투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전에는 주현이와 형과 차를 타고 크로프트 포트(Croft Port)라는 와이너리에 갔다. 주현이와 형은 포트 와인을 마신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포트 와인은 진한 포도 쥬스 농축액처럼 달달하면서 도수가 높아 취하기 좋으니 내가 보기에도 매력적인 술이다. 와이너리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와인 투어는 없었다. 예약을 하고 오후에 다시 오기로 했다. 형이 기다리는 동안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스타벅스에 데리고 갔다. 주현이와 형은 커피를 마셨고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고민을 하다가 나는 와이너리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와인 투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와이너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혼자서 포르투를 돌아다녔다.

[3] 심부름꾼 신세에서 벗어나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나는 커피와 와인을 신나게 즐기는 심부름꾼 대신 목마른 자유인이 되겠노라! 스타벅스가 있는 곳에서 강변까지 전철역 세 정거장 거리를 신나게 뛰어 내려갔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깨끗했고 하늘은 파랗고 맑았다. 강변 언덕의 수도원(Mosteiro da Serra do Pilar) 옆에는 전망대(Miradouro da Serra do Pilar)가 있었다. 난간에 팔꿈치를 얹고 새파란 강물과 철제 이층 무지개 다리(Luís I Bridge)와 빨간 지붕의 건물들을 내려다 봤다. 이 풍경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한 폭의 마법 그림같았다. 이 그림에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강변을 걷는 사람들,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결이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그림을 감상하다가 언덕을 내려와 다리를 건넜다. 이층으로 겹쳐진 다리 중, 수면 가까이에 낮게 설치된 다리에는 자동차들이 다니는 길이 있었고 공중에 높게 떠있는 다리는 사람과 트램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4] 시간에 맞춰 와이너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멀리 가지 않고 성벽을 따라 난 길(R. Arnaldo Gama)을 통해 언덕을 내려갔다. 여기서 본 골목길은 지브리 애니매이션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골목길에는 인간의 말을 할 것 같은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고, 밀가루 반죽을 밀다가 갑자기 창밖으로 침을 뱉는 덩치 큰 아주머니가 있었고, 하얀 태양빛을 받으며 건조 중인 빨래가 있었다.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조앤 롤링이 포르투에 살면서 영감을 받았다는데, 그 말이 이해될 만큼 포르투는 예쁜 풍경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5] 해질 무렵에는 등대(Felgueiras Lighthouse)가 있는 서쪽 해안으로 갔다.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차들이 꽤 많았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산책나온 사람들 무리에 섞여 떨어지는 태양을 향해 걸었다. 등대가 세워진 방파제 앞에서는 파도가 태초의 우주처럼 미친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주황색으로 변한 태양은 사람들의 시선을 끝까지 놓치지 않다가 바닷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멋진 곳이었다.

[6] 이렇게 좋은 곳에 꽁짜로 와서 좋은 풍경을 실컷 맛보면서도, 마음 속은 매우 혼란스럽다. 모두 다 에고가 너무 큰 탓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을 증오하고 경멸한다. 뻔한 대화, 지긋지긋한 자기 자랑, 나, 나, 나, 나, 나, 내가,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자기 자신에 미친 사람들과 나.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 물론 다른 면도 있다. 서로를 챙겨주고, 배려하고, 함께하려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인간의 그 선한 본성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이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술, 여자, 돈,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망상. 풍경을 보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 속의 자기 자신만 바라본다. 처참하다.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하려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식사만 하는 것도 버거워 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다.

[7] 행동 하나하나(가려운 곳을 긁는다거나, 자세를 바꾼다거나, 손을 까딱거린다거나, 흥얼거린다거나, 말을 한다거나) 신중하게 의식하자. 


와이너리에 걸려 있던 사진

Igreja da Serra do Pilar

사랑의 자물쇠

'여기는 좋은 입맞춤 장소입니다' 이런 문구가 그리 맘에 들지는 않지만 맞는 말이다.

실제로 보면 정말 아름다워요

수도원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수도원 앞 전망대 풍경이 좋았다.

구피 스티커

다리 건너는 중

낙서가 예쁘다

골목길 풍경

빨래가 있는 풍경

Igreja de Santa Marinha

Igreja de Santa Marinha

와인 투어가 끝나고 주현이와 형을 데리고 전망대에 다시 올라왔다.

등대 가는 길

황혼의 낚시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