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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모로코

모로코 타구니트 & 마라케시: 버스, 아틀라스 산맥, 구토, 꼬동 (여행 184일째)

2017년 1월 18일 수요일

모로코 타구니트(Tagounite, تاكونيت) - 마라케시(مراكش) 


[0] 헬프엑스 정산: 어젯밤에는 집주인 아흐메드와 정산을 마쳤다. 하룻밤에 5유로. 하루에 3시간씩 일을 도와주면서도 식비 명목으로 내야 하는 돈이다. 일은 힘들지 않았고,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내는 돈도 그리 큰 돈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 와서 한 일(땅파기)이 밥값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약간 씁쓸하다. 어딜 가도 그렇다. 현대 사회라는 커다란 공장의 부속품으로 일하지 않는 한, 내 순수한 노동의 가치는 보잘것 없다. 

[1] 버스: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겼다. 떠날 시간이다. 무하메드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으나 버스 시간이 되어가는데도 일어나지 않아 살짝 깨웠다. 무하메드는 일어나 마지막으로 음식과 차를 준비해 주었다. 버스를 놓칠까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준비해 준 음식을 다 먹고 난 후에야 작별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직 별들이 총총한 새벽의 황무지를 달렸다. 버스는 이미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헥헥거리며 버스기사에게 표를 보여주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많은 도시와 마을을 거쳐 왔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새벽 쪽잠을 자고 있었다. 

[2] 한국인 모녀: 새벽부터 버스에 타 있던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 엄마와 딸(재희)이 있었다.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곳을 대여섯살짜리 딸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엄마도 많이 지쳤는지 와자잣(ورزازات)에 거의 다 와서는 아이에게 자리에 똑바로 앉으라며 화를 냈다. 버스에 문제가 있어서 잠시 길에 멈춰 있었는데, 엄마는 용변이 급해 딸을 두고 혼자 버스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출발하려 하자 아이는 통로에서 엄마를 부르며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같은 한국인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일시중지 상태였는데, 말도 안 통하는 모로코 승객들이 아이를 다독이며 안심시켜 주었다.

[3] 아틀라스 산맥: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통해 거대한 산맥을 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걸어 왔으면 한 달은 더 걸렸을 거리다. 뒷좌석에 앉은 모로코 모자는 산맥을 넘는 동안 쉬지 않고 50번 이상을 토했다. 사람들은 서로 걱정해 주면서 구토용 비닐봉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사방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승객들 중에는 어린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이 많았다. 평소에 차를 탈 일이 별로 없는 순박한 사람들에게 버스로 아틀라스 산맥을 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옆에서 토를 하면 걱정해주기 보다는 나에게 피해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반면 서로서로 챙겨주는 선한 사람들. 어렸을 적 수학여행 버스에서 토할 때 나를 걱정해 주던 반 친구들. 이름도 얼굴도 사라지고 그 친절함만 기억에 남아 있다.


산맥을 넘기 전 작은 마을에서 잠시 멈췄다.

넘어야 할 산맥

정육점에는 소대가리가 걸려 있다.

오줌을 싸러 온 뒷길에는 아기 애꾸눈 고양이가 있었다.

마라케시에 도착. 쓰레기통을 뒤지는 남자가 보인다. 사막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시만의 풍경이다.


[4] 호스텔 레인보우 마라케시: 마침내 다시 마라케시로 넘어 왔다. 커다란 삼각형을 그렸다. 남서쪽 아가디르로, 그리고 동남쪽 타구니트로, 다시 자고라와 와자잣을 거쳐,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더 다시 마라케시로.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른 호스텔을 예약했다. 광장 자마엘프나(جامع الفنا) 부근의 골목길에 있는 곳이다. 화장실 숫자도 넉넉하고, 깨끗하고, 호스텔 주인인 젊은 두 남자도 친절해서 만족스러웠다.

[5] 꼬동: 저녁에는 꼬동(대학교 선배)형 부부를 만나서 밥도 얻어 먹고 오랜만에 얘기도 많이 했다. 부부는 1년째 여행을 하고 있고(중간에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다녀왔지만), 11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한국에 못 갔다고 한다. 스페인 올리브 농장에서의 생활, 타자기를 들고 다니는 미국 시인과의 만남, 3년째 여행 중인 한국인과의 만남 이야기를 들었다. 밥을 먹는 동안 식탁 옆에는 털이 예쁘게 많이 난 고양이가 어슬렁거렸다. 처음으로 쿠스쿠스를 먹어봤다. 너무 많이 먹었다.


자마엘프나(جامع الفن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