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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모로코

모로코 마라케시: 과일 장수, 자마엘프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여행 185-186일째)

2017년 1월 19일 목요일

모로코 마라케시(مراكش) 

[1] 영국 준비: 다음 목적지는 영국. 루튼 공항에서 옥스포드로 이동해 청소를 도와주면서 2주를 지낸 다음 런던으로 가서 포르투갈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공항 버스표를 예매할 때 시간을 잘못 선택해서 3만원 정도를 날렸다. 아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놓쳐서 200만원을 날렸다는 얘기, 주식으로 몇 천 만원 날렸다는 얘기는 웃으며 들었는데, 내 여행비 3만원이 날아가니 너무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것도 몇 년 후 돌아보면 다른 사람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겠지. 카우치서핑의 세계를 탐사하다가 런던의 호스트 몇 명에게 연락을 넣어 뒀다.

[2] 비오는 마라케시: 호스텔이 마음에 들지만 하루 종일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서워서 돈도 못 쓰면서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한담? 광장(자마엘프나[جامع الفنا])에 가 보았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코브라도 안 보이고 사람도 어제보다 훨씬 적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박물관이나 궁전 같은 곳을 몇 군데 봤지만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3] 과일 장수: 길에서 과일을 샀다. 바나나 다섯 개와 귤 다섯 개를 사고 10디르함을 냈다. 과일을 봉지에 담고 무게추와 함께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 준다. 외국인이라 덜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 줘(more)!"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낄낄 웃으며 더 주라고 했지만 과일 장수는 안 된단다. 포기하고 가는데 과일 장수가 나를 다시 부르더니 "더 줘(more)?"라고 묻는다. 내가 환하게 웃으면서 "더 줘(more)!"라고 하자, 과일 장수는 바나나 다발 꼬다리를 봉지에 담아준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고 과일 장수는 날 보며 씨익 웃는다. 윽, 한방 먹었군. 

[4] 디르함: 남은 디르함을 파운드로 환전하려고 (나중에 꼬동형에게 받은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역주에 따르면 디르함은 은화 단위, 디나르는 금화 단위로, 10디르함 = 1디나르 정도라고 한다. 요르단 화폐 단위인 디나르가 비싸고 아랍에미리트나 모로코의 화폐 단위인 디르함이 싼 것은 이유가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비행기 티켓을 출력할 곳도 찾아야 했다. 가는 곳마다 1장에 5디르함을 불러서(한국보다 12배 비쌈) 난감해 하다가 3디르함 짜리를 찾아서 거기서 프린트 했다. 이렇게 2디르함을 아끼려고 종일 발품을 팔면서, 버스표를 잘못 예매해 수백 디르함을 날리고, 차 한 잔 마시는데 20디르함을 쓰고, 식당에서 60디르함짜리 음식을 사먹는 것을 보면, 인생은 정말 코메디다.

[4] 오늘의 만남: 비를 피해 호스텔에 돌아왔다. 호스텔 직원들에게 귤을 선물해 환심을 조금 샀다. 나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페드로(호스텔 주인 중 한 명)가 쌀쌀했던 첫날과는 다르게 엄청 친절하게 대해준다. 페드로모하메드(첫날부터 친절했던 또 다른 호스텔 주인)와 청소하는 여자분까지 모두 마음에 들어서, 여기에서 더 오래 지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영국으로 가야할 운명이라면 가야지. 

저녁에는 꼬동형 부부를 다시 만났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곳보다 좀 더 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 호스텔 근처의 예쁘고 따뜻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형네 부부도 나도 곧 남아메리카로 건너가기 때문에 스페인어 공부에 대한 얘기를 했다. 꼬동형이 스페인어 팟캐스트를 추천해 줬다.

호스텔에 돌아오니 한국 사람들 세 명이 있었다. 한국 아이들은 방, 화장실, 로비 등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지 이런저런 욕을 했다. "진짜 여기가 호스텔 중에 괜찮은 편이라고? 그럼 안괜찮은데는 어떻다는 거야? 화장실 봤어? 진심 여기서 하룻밤을 자야돼?"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나눠야 할까봐 걱정했지만, 명상 모드에 들어가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도미토리 침대에 앉아 명상하는데, 방에 들어와 그걸 본 한국인 한 명이 옆 사람에게 말했다. "뭐야 이 사람 기도하나봐." 다행히 내가 한국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호스텔 레인보우 마라케시'라는 이름에 걸맞는 분위기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옥상

정말 마음에 드는 호스텔이었다.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모로코 마라케시(مراكش)

[5] 자마엘프나[جامع الفنا]: 어제의 한국인 3명은 아침 일찍 나갔다. 마주치기 두려웠는데 안심이다. 호스텔의 아침 식사와 햇살을 즐기다가 마지막으로 나가서 마라케시를 둘러본다. 오늘은 햇살이 있어서 광장에 뱀이 무지 많다. 달걀을 손수건으로 덮고 뭔가 마법같은 걸 하려는 아저씨도 있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 구경하는데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광장은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카드점 치는 사람들, 헤나하는 아주머니들,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 좌판도 없이 물건을 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 여행용 티슈 파는 사람들, 손목시계 파는 사람들, 낙타 조각을 파는 사람들, 마차와 말들, 고양이들, 꼬마애들로 가득하다.

[6] 귤상자사람: 전날 나를 놀려먹던 과일 장수에게서 바나나와 귤을 좀 더 사고, 구멍가게에서 1디르함 짜리 빵을 사려고 기다리다가 우연히 꼬동형 부부를 만났다. 길에서 귤을 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하나 줬다. 휴지를 팔러 온 꼬마 여자애에게도 귤을 하나 줬다. 그래 귤이야 얼마든지 줄게.

[7] 이븐 바투타 여행기: 꼬동형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 두 권을 물려줬다. 책도 흥미롭지만 책의 역자에 대해 듣고서는 정말 놀랐다. 역자 정수일은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교수 행세를 했지만 실제로는 북한 간첩이었다. 두꺼운 책 두 권이 들어가니 가방이 빵빵해진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공항을 향해 걷는다. 공항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식료품을 잔뜩 보급한다. 짧은 시간 동안 정들었던 모로코를 떠난다. 떠나기가 싫다.

길바닥의 닭대가리

자마엘프나[جامع الفنا]

물건을 사달라고 간청하는 길거리 상인

자마엘프나[جامع الفنا]

마라케시 골목길

1디르함짜리 빵

모로코 왕족

모로코 왕족 사진

골목길 고양이

나무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