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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모로코

모로코 헬프엑스: 모래바람, 대추야자나무, 칼든 남자 (여행 183일째)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모로코 타구니트(Tagounite, تاكونيت) 부근


[1] 모래바람: 바람이 세게 부는 걸 보니 오늘 밤은 좀 추울 수 있겠구나. 혹시 모르니 담요를 하나 더 챙겨두는게 좋겠다. 아흐메드와자잣(Warzazat, وارزازات)에 가족을 만나러 가서, 모하메드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는 잔잔하더니, 삽질을 하던 중 바람이 거세져서 대충 마무리 짓고 집안 부엌으로 피신했다. 

독수리와 같은 위엄으로 닭장 문 위에 올라서 있는 암탉

식당 창문

작은 창문으로 빛이 듬뿍 들어온다

혼자서 땅을 판다. 대추야자는 정말 특이한 구조의 식물이다.

삽을 내려놓고 하늘을 본다

마지막 빨래. 건물 안마당인데도 바람이 너무 세서 빨랫줄에 빨래를 묶어야 했다.

[2] 종교: 무하메드와 부엌에서 셰이크(Sheikh)와 예언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책을 남긴 4명의 예언자(아브라함, 모세, 예수, 모하메드)에 대해서 듣고, 쿠란하디스가 모하메드 사후에 어떻게 지어졌는지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직접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이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와 비슷하다. 부처의 가르침과 공통되는 부분을 얘기하자, 모하메드는 부처도 예언자 중 하나일 것이라며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다. 무하메드에 의하면, '무슬림'이라는 단어의 뜻은 '악한 말을 하지 않고, 악한 것을 보지 않고, 악한 것을 듣지 않고, 악한 길을 걷지 않는 자'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세 원숭이(삼불원[三不猿])가 떠올라 무하메드에게 얘기해 줬다. 할랄(حلال‎)에 관해서도 물어봤다. 도살 전 기도를 드리고 "비스밀라, 알라흐 아크바르"를 말하고, 날카로운 칼로 목을 그어서 숨을 한번에 끊는다. 비스밀라는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으로 식사 전 하는 말이기도 하다.

The Three Wise Monkeys (Source: Wiki Commons)

[3] 타구니트: 무하메드가 마을에 간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갔다. 평소에 다니는 사막길이 아닌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변에서 걸었다. 가면서 식물들의 이름과 어디에 용도를 들었다. 공교육으로 인해 이런 생활 지식들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함께 안타까워 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항상 가는 카페에 갔다. 무하메드와 함께 차를 마시며 내일 마라케시에서 묵을 고만고만한 호스텔들을 비교했다. 무하메드는 볼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나는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인터넷이 느려서인지, 호스텔이 걱정인지, 메스꺼운 기분을 느끼다가 가게를 나섰다. 차라리 인터넷이 없고 사람도 없는 아흐메드 집의 정적이 그리웠다.

[4] 칼 든 남자: 엥? 어떤 남자가 날이 번쩍이는 칼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걷고 있다. 칼을 아스팔트 바닥에 긁더니, 시장에 있던 포대자루를 마구 찌른다. 소란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꼬마 아이들도 그 광경을 멍하니 보다가, 남자가 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자,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도망간다. 남자는 페인트통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른다. 미친 사람 같기도 하고 매우 화가 난 사람 같기도 하다. 칼날이 무섭게 번뜩이는데, 혹시나 다가와 다짜고짜 찌르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운 기분이 든다. 외국인이라 눈에 띄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된다. 그 남자를 뒤에 두고 걷는게 불안해 힐끔힐끔 돌아 보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인지 갈피가 안 잡힌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자 평소의 평정심 같은 건 모두 사라진다. 

칼든 남자는 어떤 사람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며 칼을 치켜 세웠고, 상대방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수그리며 우는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그 상황을 구경하는 것도 죄가 될 것 같아(마치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선생님한테 밟히고 있을 때 그 쪽을 쳐다보는 것이 금지되었듯이)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무하메드에게 물어보니, 미친 사람이었다고, 마을 치안대가 잡아갔다고 한다. 

만일 칼을 든 미친 사람이 나에게 달려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양손을 들고 진정시키려 했을까 아니면 온갖 체면 팽개치고 달아났을까. 나에게도 무기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총을 들고 있었다면? 무저항, 비폭력, 희생, 자비, 이 모든 사상을 떠나 공포에 질려 쏴 버렸을 것이다. 이론의 나와는 달리 실제의 내가 느꼈던 공포와 동요는 나의 무력함과, 생존 욕구와, 안일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면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면제된 것인 양 다른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염려와 공포를 깔보고 있었다니. 하하... 나 자신을 알자. 명상 프로그램에 두 번 참가했다고 내가 소크라테스나 부처가 된 것은 아니다. 나의 한계를 보자. 두려움을 보자. 그리고 좀 더 진지하게, 모험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대신, 차분함과 겸손함을 갖고 신의 의지를 따르자...

짐승의 뼈. 아마도 다리뼈.

당나귀 타고 가는 남자

돌아가는 길에 있는 집. 헬프엑스 호스트 프로필 중에서 이 집 대문 사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