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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키예프: 둥지상자 (여행 58일째)

2016년 9월 14일 수요일 우크라이나 키예프(Kiev, Київ)

 

[등장인물]

콘스탄틴: 카우치서핑 호스트.

베로니카: 콘스탄틴의 아내. 둥지상자의 실세.

맥스: 둥지상자 공동체 멤버중 한 명. 마른 팔다리가 문신으로 뒤덮여 있고 진한 검정색 수염을 하고 있다.

요가선생님: 레옹의 동그란 선글라스를 낀 조용한 분위기의 요가 선생님.

안드레: 악기 선생님. 베트남 악기 단모이를 가르치러 둥지상자에 옴.

미라: 둥지상자에서 차를 만들거나 다도(茶道)를 가르치고 팁을 받는다.

 

1. 아침, 버스 창 밖은 이미 밝아졌고, 꽤나 북적이는 도시에 들어온 것을 보니 키예프에 들어온 것 같다. 도시의 북동쪽에서부터 내려온 버스가 드네프르 강(Dnieper River)을 건너자 언덕 위에 검과 방패를 높이 들고 있는 커다란 동상이 보인다. 버스 터미널(Автовокзал)에 도착하자 우중충했던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날과는 다르게 우크라이나에서의 첫 날은 밝고 파랗다. 일단 우크라이나 화폐 그리브나(Hr, Hryvnia, 통화표시: UAH)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환전소 시세도 알아보고, 오데사(Odessa)로 가는 버스 가격도 확인해 본다(300~400 UAH).

 

키예프의 버스 터미널(Автовокзал)

 

키예프에서는 카우치서핑 호스트 콘스탄틴과 미리 연락을 해 두었는데, 콘스탄틴의 집에서 머무는 건 아니고 콘스탄틴과 친구들이 운영하고 있는 강변 카페의 티피(tepee, 아메리카 원주민 방식의 천막)에서 지내기로 했다. 카페는 여의도 같이 드네프르 강 한 가운데에 있는 섬의 모래사장에 있는데, 채식 음식과 건강 음료 등을 파는 식당이면서, 요가, 악기, 태극권 등을 가르치고 공연 및 영화 상영 등의 문화 교류를 하는 모임 공간이기도 하다. 이름은 스크보리에츠닉(Скворечник - кафе на деревьях)인데 둥지상자(nesting box)라는 뜻이다. 이름이 둥지상자인 이유는, 카페 근처의 커다란 나무들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뻐꾸기집처럼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사진보기

 

버스 터미널에서 둥지상자 카페까지는 7-8km 거리로 전철역 여섯개를 지나가야 한다. 일단 현금이 없으니 전철을 탈 수도 없고, 돈을 쓰고 싶지도 않고, 일찍 가봤자 콘스탄틴을 기다려야 할 테니, 천천히 지도를 보며 북쪽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간다.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드디어 차가운 러시아를 벗어나서 인지,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길을 걷는 사람들 표정이 밝아 보인다. 거리와 건물도 아름답다. 거리에는 젊은 여인들이 많았는데, 다들 날씬하고 예뻤다.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의 키도 덩치도 더 컸던 것 같은데, 여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더 아름답다기 보다는 더 예쁘다. 표정도 다들 밝고 아침 햇살까지 찬란하게 비추고 있어서 그런지 하룻밤만에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다. 

 

7-8km의 거리를 걷는데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 벽에 붙은 수많은 광고지에서 치열함이 느껴진다.

 

길거리 풍경. 파란 하늘과 밝은 햇살이 키예프의 첫 느낌이었다.

 

맹금류에게 당했는지 비둘기의 날개만 한 쪽 뜯겨져 길에 널부러져 있다.

 

철길을 따라 인적이 뜸한 길을 걷는다.

 

도심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닌다. 공원에 앉아 러시아에서 사온 배맛 탄산음료를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2. 길을 따라 올라오며 환전소마다 환율을 확인해 본다. 버스 터미널 근처의 환전소에서 보니 1000루블(RUB)을 팔때는 370그리브나(UAH) 살때는 400그리브나다. 1000루블로 370그리브나밖에 받지 못하니, 러시아에서 루블을 달러로 바꿔올걸 하며 후회가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니 수많은 환전소가 보이는데, 1000루블을 390그리브나에 사는 곳이 보인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하지만 이런 곳이 하나 있다는 건 비슷한 환율의 환전소가 더 있을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더 가다 보니 398그리브나를 쳐주는 곳도 보인다. 이거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왜냐면 버스 터미널 근처의 환전소에서 1000루블을 400그리브나에 살 수 있으니까) 옳다구나 하고 환전을 했는데, 아니 이럴수가, 길거리에 400이나 402그리브나까지 쳐주는 곳이 보인다. 이 말은 버스터미널 근처의 환전소에 가서 400,000그리브나를 내고 1,000,000루블을 받은 다음, 이 1,000,000루블을 팔아서 402,000그리브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길거리의 수많은 사설 환전소들에서는 심지어 수수료도 떼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0그리브나(약 8만원)를 벌기 위해 400,000그리브나(약 1600만원)를 투자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큰 돈을 조그만 사설 환전소들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각 환전소마다 달러/루블/유로를 사고 파는 환율이 다른 것은 각 환전소의 보유고 때문인 것 같다. 달러가 많은 곳도 있을 것이고 루블이 많은 곳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1달러를 26.00그리브나에 사서 26.01 그리브나에 파는 곳은 뭐지? 100달러 거래가 있어야 겨우 1그리브나(40원)를 버는 건데 도대체 뭐가 남는다고... 

 

1달러당 26그리브나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그래피티로 뒤덮힌 벽면

 

환전소를 자주 볼 수 있다.

 

남은 루블을 환전해 그리브나를 얻었다. 1그리브나(약40원)도 지폐다. 유럽에서 1유로, 2유로, 5유로를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집시 할머니나 아이들이 1그리브나를 구걸한다. 1유로는 거의 30그리브나, 5유로는 150그리브나이다. 

 

이렇게 환전소가 많은 이유는 그리브나의 화폐가치가 불안정해서인듯 하다. 그리 많지도 않은 해외 관광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지 우크라이나인들이 자국 화폐를 좀 더 안정적인 달러나 유로 등으로 환전해 보관하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같은 이유로 사설 환전소들이 많았고, 수수료도 없는 곳이 많아서 여행자 입장에서는 편했지만 어찌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화폐가치는 2014년과 2015년 사이 곤두박질 친 후 바닥에서 머물고 있다. (관련기사) 2014년 말 기사를 보면 이미 그리브나의 가치가 급락해 1달러가 15-16그리브나에 거래되고 있었는데, 내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2016년 중반에는 그때보다 그리브나의 가치가 훨씬 떨어져 1달러가 26그리브나에 거래되고 있었다. 해외에서 온 여행자 입장에서는 2014년초에 비해 모든 물품의 가격이 2.5배 가량 저렴해진 셈이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가도 음식점의 가격표를 봐도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저렴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일순간 구렁으로 떨어진 후 아직까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화폐가치의 하락과 경제 위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크라이나 내전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여느 유럽 도시에 견주어 보아도 아름다운 키예프. 하지만 경제 문제 때문에 물가는 훨씬 저렴하다.

 

 

키예프 중심부의 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Maidan Nezalezhnosti, Майдан Незалежності).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듯 반원을 만들며 들어서 있다. 

 

 

번화가 풍경

 

번화가를 지나 지하도를 통해 공원(Khreshchatyy Park, Хрещатий парк) 쪽으로 향한다.

 

언덕을 오르자 동상과 구조물(Rainbow Arch, Арка Дружби народів), 전망대가 있다.

 

밤나무에서 밤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있길래 열심히 줍는다. 나중에 물어보니 식용으로 쓸 수 없는 밤이란다.

 

예쁘게 색칠된 자동차와 무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드네프르 강과 하중도(河中島). 저 섬에서 앞으로 며칠을 보낼 예정이다.

 

섬으로 통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

 

쓰레기통에 쓸만한게 없나 한 번 들여다 본다.

 

정말 아름다운 날씨다.

 

다리가 꽤 높은데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위에서 본 짙은 파랑색의 강물

 

낚시하는 남자

 

낚시하는 아저씨들

 

3. 다리를 건너 둥지상자에 도착했다. 콘스탄틴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나무로 예쁘게 지어 놓은 오두막에 여자가 있길래 콘스탄틴을 찾아왔다고 하자, 아직 안 왔다고 한다. 모래사장으로 가서 일기를 쓰며 기다린다. 좀 쌀쌀한 느낌도 있지만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스하다. 파란 강물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놀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수영할 날씨는 아닌데 대단하다. 

 

핸드폰 비행기 모드를 풀자 통신사와 외교부에서 문자가 온다. 카자흐스탄이랑 러시아에서는 조용하더니... 지금 있는 곳, 우크라이나는 여행자제 지역이라는데,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에 사람들 표정도 러시아에 비해 훨씬 좋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 지나온 신장위구르 지역도 여행자제 지역이었다. 음... 햇볕을 받고 있으니 좋군. 여기서 아무것도 안하고 똥이나 싸고 앉아서 책이나 읽다가 가도 좋을 것이다.

 

평화로운 강변 모래사장. 밤에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공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료도 마신다. 이곳에서 술, 담배, 마약은 금지되어 있다.

 

4. 콘스탄틴을 기다리다가 똥을 누러 화장실로 갔다.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보니 칸막이는 있지만 문짝이 없어서(인터넷에 중국 화장실을 검색하면 나오는 것처럼) 볼일을 볼 때 그대로 노출된다. 소변을 볼때는 상관이 없지만 대변을 볼때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오면 낭패다. 하수도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변기(변기라기보다 콘크리트 사이에 난 구멍)에 볼일을 보면 밑에 차곡 차곡 대소변이 쌓이는 구조다. 구멍을 내려다 보면 배설물과 휴지와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고 파리도 날라다닌다. 이런 구조에서 볼일을 보는건 처음이지만 (중국에서도 안 이랬다!) 어쨌든 똥을 누러 왔으니 똥을 눠야지... 여느 동물들처럼 인간은 실내 생활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생물이 아니다. 거대한 상하수도 시스템과 전력공급에 기반한 화장실, 환기, 청소가 없으면 순식간에 오염과 악취로 뒤덮힌다. 대학생 때 청소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때문에 파업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사흘도 못 가서 화장실 휴지통은 똥휴지로 넘치고, 막히고, 건물들은 쓰레기로 뒤덮히곤 했다. 위생, 청결, 살균, 해충박멸 들먹이며 온갖 깔끔을 다 떠는 우리가 사실은 가장 지저분한 생명체들이다. 반면 야생동물들이 사는 숲이나 들은 항상 깨끗하다. 그들은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것도 만들지 않고, 그들의 똥은 악취없이 자연의 거름이 된다.

 

여자화장실 입구는 커튼으로 막혀있고, '지켜보고 있다'는 듯한 눈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Ж'는 여성을 뜻하는 젠쉬나(Женщина)의 첫번째 글자다. 건물 반대편에는 남자화장실이 있다.

 

5.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주머니에 커다란 두루마리 휴지를 쑤셔넣고 짐이 있는 모래사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몇몇 남자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보통 같으면 나도 반갑게 인사할텐데 막 큰일을 보고 나온 상태에서, 사람들이 다가오니 왠지 민망하고 도망가고 싶다. 어정쩡하게 남자들 쪽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중 한명이 콘스탄틴이었다. 카우치서핑 프로필에서 본 것보다 더 친근한 얼굴이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무둥지에서 자고 일어나 내려온 남녀들, 티피(tepee) 천막에서 나온 사람 등 어느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추운 날씨에 여기서 지내는거야? 부부가 운영하는 소규모의 카페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콘스탄틴과 열 명이 넘는 남녀가 공동체를 이루어 다같이 시작한 사업이라고 한다. 이 대식구 속으로 끼어드는 것이 매우 어색하다. 

 

콘스탄틴의 제안으로 공동체 회의에 참여한다. 러시아어로 하는 회의여서 이해가 안되니 지루하고 졸음이 오지만, 회의 진행의 분위기에서 이 사람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개중에는 연인도 있는 듯 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스킨십이 매우 자연스럽다. 단발의 금발머리를 한 (반지의 제왕의 요정족 같은) 여자가 있었는데, 또 다른 짧은 머리의 여자와 손을 잡고 자주 포옹하길래 둘이 연인인줄 알았더니, (영화 300 레오니다스 왕처럼) 숱많은 검은 수염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맥스가 옆에 앉자 이번에는 맥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갈색 곱슬머리를 하고 마른 체구이지만 강인함이 느껴지는 또 다른 여자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콘스탄틴의 부인 베로니카였다. 회의를 주도하는 모습이나 많은 발언으로부터 베로니카의 높은 서열이 느껴진다. 반면 콘스탄틴은 좀 더 조용하고 부드럽다. 공동체의 모습이 마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비치(The Beach, 2000)에 나온 섬 공동체와 비슷하다. 이곳도 강변의 모래사장(비치)이고, 수염을 기른 미남들과 머리에 꽃을 꽂은 미녀들이 요가와 악기를 하며 지내는 것, 카리스마 있는 여성 지도자까지 아주 흡사하군. 하지만 난 시작부터 여기서 약간 겉돌고 있는 기분이다. 회의가 끝나자 다같이 일어서더니 모두가 커다란 하나의 뭉치가 되어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머리를 맞대며 서로를 감싸 안는다. 나는 그 커다란 포옹의 무리에 끼기에는 너무 이방인이었고, 멍하니 보고 있는것도 어색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뻘쭘하게 바라보며 서 있는다.

 

6. 뭘해야 될지 몰라서 어정쩡하게 서성거리다가 설거지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음식과 음료를 파는 곳이니 설거지가 많은게 당연하지만 어제부터 설거지를 하지 않았는지 그릇, 접시, 컵, 쟁반, 냄비, 포크, 숫가락, 각종 조리기구 등이 싱크대에 수북히 쌓여 있다. 하수구 어느 부분이 막혀있는지 배수가 잘 되지 않아서 물을 약하게 틀어 놓고 한참 동안 설거지를 한다.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와서 도와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한다.

 

텐트에 들어와 바람을 피하며 여기서 잘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

 

주방 건물(오두막) 뒷편에는 이렇게 공간이 있고, 여기에 의자를 두고 모여 앉아 회의를 했다.

 

베로니카가 잼 단지의 뚜껑을 헝겊으로 싸서 끈으로 묵는 작업을 하는 걸 도와줬다.

 

모래사장

 

7. 설거지가 끝난 후에는 기나긴 자유시간이 온다. 고맙게도 사람들이 종종 인사를 건네준다. 그중 수염을 기르고 레옹같이 동그란 선그라스를 낀 요가 선생님이 있었는데, 베트남 악기 워크샵이 있다고 부른다. 외부에서 온 선생님인데 조그만 원통에 들어있는 쇠붙이를 꺼내 입에 대고 손으로 튕기면서 연주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악기는 단모이(Đàn môi)라고 하는데 베트남에서도 못 본 것을 우크라이나에 와서 배우고 있다니... 여자 손님 3명과 요가 선생님과 악기를 튕기며 고대 주술사들이 주문을 외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 본다. 악기 연습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놀고 앉아 있어도 되나 하는 불안감과 (설거지를 하러 가야 될 것 같아서) 강의가 끝나면 돈을 내라고 할 것 같은 걱정에 슬쩍 자리에서 나온다. 악기 선생님 이름은 안드레라고 하는데 인상이 아주 좋았다. 사람도 많이 없는데 돈 걱정에 악기를 배우다 말고 나와 버린게 미안하다. 

 

이렇게 갈곳도 할일도 잃고, 다시 멍하니 손님들 사이에서 서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 준다. 이번에 말을 걸어준 사람은 미라(Meera)라고 한다. 미라는 어디서 다도(茶道)를 배워 왔는지, 그럴싸하게 된 다기 세트를 깔아 놓고, 계속 뜨거운 물에 차를 우려내, 조그만 찻잔에 차를 따라 사람들에게 권한다. 강변의 공기가 차서 부들부들 떨며 가게가 언제 문을 닫을지, 언제 잘 수 있을지 생각한다. 내가 계속 덜덜 떨고 있자, 미라가 "내가 안 추워지는 법 알려줄게!"라고 말하며 갑자기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따라해봐!" 옆에 있던 박단이라는 키 큰 남자와 나와 셋이서 박자에 맞춰 팔을 쭈욱 뻗으며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을 반복한다. 하하, 여전히 춥지만 어느새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박단은 둥지상자에서 요리를 도와주고 돈을 받는다. "겨울에는 이 강이 꽁꽁 얼어. 그러면 사람들이 얼음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서 수영을 해. 우리 아버지도 강이 얼면 구멍을 뚫고 들어가서 수영하는 걸 좋아했어." 춥고 지겨운 밤에 박단과 미라가 좋은 동료가 되어 준다.

 

느리지만 꾸준히 시간은 기어이 흐르고, 밤 11시 30분쯤 들어간 티피 천막은 추울까봐 걱정이 조금 되지만 그래도 좋다. 요가 선생님과 맥스도 같이 텐트에 들어와서 잔다.

 

해질 무렵. 본격적으로 영업이 시작하고 손님들이 많아지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고 한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아까 건너온 다리에 조명이 들어왔다.

 

강변 노을

 

꽤나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는데 남자 한 명은 반팔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닌다. 술을 마신것도 약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추위에 둔감한지 대단하다.

 

미라가 계속 만들어 주던 차. 오늘은 손님이 많이 없어서 돈을 벌 거리도 없었는데, 추위 속에 나와서 고생하던 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