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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키예프: 둥지 떠나기 (여행 61일째)

2016년 9월 17일 토요일 우크라이나 키예프(Kiev, Київ)


[등장인물] 

콘스탄틴: 카우치서핑 호스트.

베로니카: 콘스탄틴의 아내. 둥지상자의 실세.

퀸튼(Quinton): 오리건(Oregon)에서 온 젊고 가난한 여행자.


1.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이던 둥지상자 공동체에서의 3박 4일이 종착역에 도달한다. 문도 없고 하수도도 없는 화장실에서 똥 싸는 것도, 머리위의 나무들을 보며 덜덜 떨며 샤워하고 나서 그 개운함에 빠져드는 것도 오늘 아침으로 끝이다.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마지막으로 둥지상자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런지? 강변 모래사장에 앉아 어제 조달한 식량(토마토, 빵 등)을 먹었는데, 오전 11시쯤 고맙게도 콘스탄틴이 아침 식사를 마련해 준다. 예쁜 나뭇빛깔 그릇에 귀리를 우유에 끓인 죽(porridge)을 담고 그 위에 각종 과일까지 올려 준다. 콘스탄틴과 여행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더 얘기할 시간이 있으면 좋았으련만, 둥지상자 일로 바쁘고 항상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콘스탄틴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퀸튼과 함께 섬의 호수로 산책을 다녀온다.


그리고 작별의 시간. 콘스탄틴과 그의 아내 베로니카, 그리고 기타 둥지상자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온다. 너무 좋은 곳인데, 왠지 모르게 소속감이 들지 않고 마음이 불편했던 곳이다. 왠지 불청객이었던것 같은 기분...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퀸튼은 앞으로 2주정도 더 머무르며, 겨울을 대비해 나무둥지 건물들을 덮어두는 작업을 도와주기로 했다.


2. 퀸튼도 도시로 나갔다 온다고 해서 같이 기차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빵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말이 많은 18살 소년의 끊임없는 수다를 가끔은 알아듣고 가끔은 못 알아들으며 함께 걷는다. 7그리브나(300원)짜리 고로케를 행복하게 먹으며, 기차역 근처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 구걸하는 여자아이들이 한 무리 지나간다. 빵을 준다니까 싫다고 하고, 과자를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사과를 준다고 하자, 12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싫다고 하는데, 옆에 있던 8살쯤 되어보이는 조그만 여자아이는 좋다고 받아간다. 결국 12살쯤 되어보이는 완고한 여자아이에게는 노란색 1그리브나 지폐를 준다. 이 아이는 이렇게 조그만 1그리브나(40원) 짜리를 모으고 모아서 사고 싶은 것이 있는걸까? 나처럼 세계 여행을 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가지고 가는 돈에 따라 엄마에게 칭찬을 받거나 벌을 받아서 그러는 걸까?


3. 출발 시간 10분전, 퀸튼과 헤어지고 기차를 탄다. 13시간이라는 긴 시간과 먼 거리에도 128그리브나(약 5200원) 밖에 되지 않아 당연히 앉아서 가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3등 침대칸이다. 게다가 객실 승무원이 표를 확인하더니 침대보와 담요 꾸러미를 갖다 주신다! 러시아의 기차에서 침대보와 담요 대여하는 가격은 기차표에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돈을 더 내라며 화내던 뚱뚱한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러시아에 다시 가고 싶은가? 니옛(нет, 아니오). 우크라이나에 더 있고 싶은가? 다! 다! 다(да, 네)!


티피(tepee)에 걸려있는 망가진 드림캐쳐(dreamcatcher)


아직 티피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 친구들. 모르는 얼굴도 있다. 


아침으로 토마토를 먹는다. 빵이랑 과자만 먹으면 영양이 결핍될까봐 걱정이 되서 이렇게 야채도 먹어준다.


화장실 색이 바랜 낡은 세면대. 퀸튼이 청포도를 씻으며 포도알들이 떨어져 나갔다.


배가 고프면 빵만 먹어도 맛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러시아에서 사온 배맛 탄산음료.


콘스탄틴이 차려준 최후의 조찬. 매일 아침을 이렇게 먹을 수 있다면.


둥지상자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한무더기 갖다 버린다.


둥지상자 메뉴표. 우크라이나의 물가에 비하면 꽤나 비싼 편이다. 밥 한끼 값으로 슈퍼마켓에서 며칠 식량을 살 수 있으니. 그래도 한국 물가에 비교하면 싸다. 70그리브나 = 약 2800원.


둥지상자의 음료 메뉴.


나무 위에 얹어진 나무둥지 중 하나. 손님들이 여기 올라와 음식을 먹거나 앉아 쉰다.


퀸튼과 다시 산책 나온 호숫가


어떤 사람이 호숫가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기사 갑옷과 가짜 검, 방패를 갖다 놓고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듯하다.


산책길


다시 강변 모래사장


베로니카에게 작별을 하자 가는길에 먹으라고 바나나를 준다. 아... 너무 소중한 바나나 한 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던지. 아무렇게나 바나나를 꺼내 먹는 둥지상자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예전에 <바나나 랜드(Banana Land)>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치키타(Chiquita)라는 회사의 악덕 경영에 대해 분개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치키타의 바나나를 들고, 감사히 먹고 있다.


화창한 토요일 낮. 섬으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


주말이어서 그런지, 지난번의 다리에서 물고기를 낚시하는 아저씨들은 안보이고, 사람을 낚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판대에서 담배를 개비 단위로 팔고 있는 상인


항구 쪽도 구경한다.




오래된 자동차. 오히려 요즘 자동차들보다 멋진 디자인이다.


키예프



공룡 모양 장난감들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


길 건너편에서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고 경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