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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몰도바 & 루마니아

몰도바 키시나우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여행 66일째)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키시나우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Bucharest)

[등장인물]
알리나: 키시나우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30대 여성.
아무리(Amaury): 부쿠레슈티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40대 남성.

1. 아침에 일어나보니 역시나 알리나는 집에 안 돌아왔고, 옆에서 자고 있는 독일 여행자 로라를 안 깨우게 조심하며, 짐을 싸고, 똥을 싸고, 씻고, 차를 마시고, 과일과 빵, 사과, 오이, 토마토를 잔뜩 먹고, 가방을 메고 나와 중앙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남은 몰도바 돈으로 뭘 할까?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태국에 6개월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랬던 것처럼, 남은 돈을 정리하는 건 어떻게 보면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자, 너는 오늘 오후 5시에 죽는다. 너의 지갑에는 돈이 몇 만원(혹은 몇 십만 원)이 남았다. 이제 시간은 3시간 남았다. 과연 돈을 어떻게 어디에 쓰고 갈 것이냐?" 이 질문을 약간 부드럽게 순화시킨게 국경을 지나갈 때의 최후의 소비 시간이다. 남은 돈은 13레이(약 820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미 배낭에 빵은 잔뜩 있고, 빵이 썪었던 경험이 있어서 빵을 더 사고 싶지는 않다. 초콜릿 같은 건 비싸고 이빨에도 안 좋으니 사지 않는다. 싸구려 물건들이 또 뭐가 있을까? 휴지는 이미 샀고 샤프심을 사려고 보니 너무 비싸고, 볼펜도 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성냥. 열 갑에 5레이(320원)다. 좋아, 성냥갑의 그림도 예쁘고(우크라이나에서 퀸튼이 갖고 있던 것이다) 가격도 싸니 먼 훗날의 캠핑을 위해 이걸 산다. 열 갑이어서 좀 많다 싶었는데, 이날 저녁에 만난 사람들에게 벌써 선물로 4갑을 나눠주게 된다. 

2. 이번에도 미니버스(승합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맑은 창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 끝없는 들판과 옥수수 밭인지 밀밭인지 노랗게 변한 들판을 지나치며, 구경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금방 국경에 도달한다. 여기서도 별다른 검사 없이 여권만 걷어가서 쉽게 도장을 찍어 준다. 그리고 면세점도 있다.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미니버스에 달린 와이파이가 되는 것 같다. 휴게소에 몇 번이나 들으면서 루마니아를 가로질러 달린다. '아! 이곳을 히치하이킹으로 지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도 있다. 아니면 피스필그림(Peace Pilgrim)처럼, <폴라리스 랩소디>의 파킨슨 신부와 데스필드처럼, 혹은 환경운동가 존 프란시스(John Francis)처럼 그저 걸을 수도 있었을텐데... 중간에 들른 주유소에서 식료품에 붙어있는 가격을 보니 너무 비싸다.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까지의 저렴한 물가도 이제 끝이 나고 있다.

지난 며칠간 잘 쉬었던 알리나의 아파트 건물. 알리나는 내가 있는 동안 이곳에서 하룻밤도 안지냈다. 근처에 다른 집(엄마가 사는 집)이 있다고 했다.


도시 중앙부의 교회와 공원


거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


날씨가 맑으니 한결 아름다워 보이는 키시나우


버스 터미널. 부쿠레슈티는 물론, 모스크바, 이스탄불, 망갈리아(Mangalia)에 가는 버스까지 있다.


길에서 나눠주던 쪽지인데 무슨 뜻일까.


미니 버스가 달린다.


주유소에 잠시 쉬었다 간다.


가을에 접어드는 시골 풍경


오늘의 양식인 빵과 맥주병에 담긴 물.


부쿠레슈티행 미니버스


버스안은 이렇다.


창밖 풍경. 하늘이 아름답다.


자전거로 이 길을 달렸어도 좋았을텐데.


가다가 들린 휴게소에서는 이렇게 날짐승들을 키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휴게소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난 짠돌이라서 챙겨온 빵과 물만 먹었다.


다시 시골 풍경


다시 휴게소


다시 시골 풍경



3. 차를 타고 8시간 동안 달리면서 중간중간 비가 오기도 했는데, 다행히 부쿠레슈티에 도착하니 맑은 날씨다. 땅이 젖지도 않았다. 차가 많이 막혀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의 오보르(Obor)라는 전철역 근처에서 내려, 아무리가 일하는 회사로 걸어간다. 해가 막 떨어진 어두워지는 도시의 모습과 시내를 지나다니는 트램(tram)의 불빛과 소리가 좋다. 아무리의 회사에 도착해 건물에 딸린 조그만 매점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저녁 8시에 일이 끝나고, 아무리와, 아무리의 친구인 그레고리, 그레고리의 여자 친구 사라와 와인을 마시러 중심가로 나간다. 

아무리는 카우치서핑 프로필이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고, 한국 이름도 있다. 한국을 좋아하는 루마니아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프랑스 사람이었다. 아무리가 다니는 회사도 프랑스계 회사이고, 같이 와인을 마시러 간 친구들도 프랑스 사람이었다. 거기서 밤 12시까지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대화를 들으며 (다행히 중간중간 영어로 번역을 해주었지만), 약간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진다. 그레고리와 사라는 돌아가고, 이제야 집으로 가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클럽으로 간다. 물론 나는 아침에 몰도바에서 나온 상태 그대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저 쉬고 싶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다른 클럽에서는 아무리의 다른 친구 라파엘을 만난다. 뚱뚱하고, 나이들어 보이고, 약간 다리까지 저는 아무리에 비해,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깔끔하고, 훤칠하고, 호탕하고, 돈을 잘 쓰는 라파엘이 아무리와 나에게 맥주를 한 병씩 사줬다. 그리고 이란에서 왔다는 남자가 말을 걸길래 대답을 해주고, 또 다른 사람들과도 얘기하며, 맥주를 조금 홀짝거리며, 침묵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무래도 클럽에 커다란 배낭을 멘 동양인이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어떤 술 취한 젊은 남자가 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데, 아무리가 저리 가라고 하니, "너같이 나이 많은 영감이 여기 왜 왔냐"며 시비를 건다. 둘이 싸우는걸 말리고, 웃으며 사진도 찍어 주고, 담배 연기와 시끄러운 음악과 술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덜덜 떨며 그저 휴식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집에 오니 거의 새벽 4시가 되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도착했다. 미니버스가 시내로 들어오니 차가 많이 막혀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내려서 걷기 시작한다.


길거리의 포스터들


저물어가는 해와 그 빛을 받아 왠지 아름답게 반짝이는 건물의 유리창들


이미 어둑한데도, 이상하게 건물들 안쪽에서는 불이 켜져 있지 않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이런 책을 본다.


어두워져가는 도시


사우스파크 그림이 버스 정류장에 있다.


어둡게 빛나는 도시


지하도를 건너 아무리의 회사로 향한다.


해질녘 어둡게 빛나는 부쿠레슈티의 건물들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우울하면서 아름답다.


어렸을데 게임기로 하던 <시티 커넥션>이라는 게임이 떠오르는 부쿠레슈티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