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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몰도바 & 루마니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외로운 남자의 집 (여행 67일째)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Bucharest)


배경음악: I Wanna Be Like You (Sim Gretina Remix)


[등장인물] 
아무리(Amaury): 부쿠레슈티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40대 남성.

1. 아침에 아무리가 출근한 줄 알고(나중에 보니 회사 째고 방에서 자고 있었다), 씻고 나와서 맑은 날씨의 시내를 배회한다. 버스 타는 곳을 확인하고, 환전하고, 거대한 인민궁전을 구경하고, 교회와 사람들도 구경하고, 까르푸에서 한참을 빙빙 돌며 '어떤 싸구려 음식을 살까' 들었다가 놨다 고민하며 아주 행복한 쇼핑을 한다. 커다란 피자 빵 같은 것 두 개를 사고 케찹과 과자를 사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앉아서 빵에 케찹을 뿌려 먹는다. 

길거리의 구걸하는 사람들, 장애인들, 노인들, 하모니카 부는 사람, 계단 구석에 힘없이 앉아 눈물인지 땀인지를 닦고 있는 할머니, 쓰레기통을 뒤지는 할아버지들, 무언가를 들고 힘겹게 조금씩 어딘가로 걸어가는 할머니, 그리고 그 곁을 지나다니는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사람들, 이런 저런 모습으로 꾸미고 돈을 쓰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모습이 내 기억의 표면에서 사라지더라도 무의식의 어딘가에 남아 나와 우주의 형성의 보탬이 될까?

2. 이번 카우치서핑 호스트 아무리는 꽤나 외로운 남자라는게 느껴진다. 일단 카우치서핑을 시작해서 150번이 넘게 손님을 받아왔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증거이다. 나는 카우치서핑의 목적을 나눔, 공유, 베풂, 선물 등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정신에 연관짓는데 반해 어떤 사람들은 교류사교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데, 아무리는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고, 아무리의 프로필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으니 나도 따를 수 밖에. 그래서 전날에도 마시고 싶지도 않은 와인을 마시느라 돈을 많이 썼는데, 이날도 아무리가 바에 가자고 해서 억지로 따라 나간다.

건물 꼭대기에 있는 루프탑(rooftop) 바인데 전망은 좋지만, 그저 피곤하고 쉬고 싶고, 가격도 부담이 된다. 차라리 맥주를 몇 캔 사서 집에서 같이 마시는 거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따라와서 안 마실수도 없어서 가격이 제일 싼 탄산수를 한 병 시킨다. 이번에는 그래도 둘만 있으니 얘기를 조금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고갔겠지만, 그중에 한가지 기억이 남는 이야기가 있다. 카우치서핑 프로필에는 '내가 했던 놀라운 일 한가지'라는 항목이 있는데, 아무리는 그곳에 사랑과 내던지기(Love and Defenestration)라는 알 수 없는 글과 프라하 어느 호텔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무리. 그 당시 실연을 당하고, 프라하의 어느 호텔에서 투신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가 걸을 때 다리를 약간 절룩절룩 거리는데, 그때의 투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단다. 사실 아무리와 같이 이틀간 지내면서 나와는 잘 맞지 않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의 초라하고 비참한 과거를 솔직히 드러내보이자 측은지심이 든다. 40대가 되어서까지 외로움을 잊고자 무언가를 찾아, 누군가를 찾아 클럽을 돌아다니고, 밤마다 어딘가로 나와 우연한 만남이 있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남자. 어쩌면 과거 혹은 미래의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날 밤 새벽 세시 반까지 클럽에서 여행배낭을 메고 죽치고 앉아 있다.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지만 집주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술병, 과자봉지, 와인잔, 그릇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거실. 그래도 잠은 푹 잘잤다.


아무리네 아파트 단지 풍경


오래된 아파트 건물 창밖으로 보이는 오래된 도시


나선형 계단


이렇게 도로에서 아파트 단지 내로 통하는 길을 따라 들어와야 입구가 있다.


건물들에는 괴상하면서도 알록달록 재미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드라큘라 백작의 나라 루마니아. 흡혈귀 낙서도 있다.


환율은 1달러에 4레이정도 된다.


예쁜 루마니아 지폐.


여기가 인민궁전이라는데 무지 크다. 보시는 것처럼 별로 아름답지는 않다.


시내 중심부 근처의 작은 교회건물


성자의 그림이 아름답다. 내부 수리중인지 안에서는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낙서들도 많지만 이렇게 보기 흉한 낙서들도 도시 여기저기에 많다.


조지와 드래곤 펍(The George & Dragon Pub). 간판도 가게 이름도 예쁘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빵들.


하지만 빵집 빵은 비싸서 슈퍼마켓에서 싸고 큰 빵을 골랐다.


지폐에 잘난 위인들 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여인도 들어가 있어서 좋다.


길거리에서 책을 판다


거리의 노숙인. 정말 안타깝다.


지하도에서 올라오는데, 할머니 한분이 너무 불쌍하게 앉아서,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눈물을 닦으며 앉아있다.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던 구시가지에서는 인형극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지붕 양식이 정말 멋지다.




또 다른 작은 교회의 장식




오래되 칠이 다 벗겨진 천사 그림



날이 저물어 간다. 다시 어두워지는 부쿠레슈티.



할머니 한 분이 한걸음 한걸음 너무도 힘겹게 너무나 천천히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