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몰도바 & 루마니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불가리아 다보빅 (여행 68일째)

2016년 9월 24일 토요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콘스탄차 - 망갈리아 - 불가리아 다보빅

아침 일찍 아무리의 집을 나와서 빵집과 슈퍼에서 빵을 사서,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의 공원에 앉아 빵에 케첩을 뿌려 먹는다. 2레우(560원)짜리 케첩으로 본전을 확실히 뽑고 있다. 배를 충분히 채우고 어제 확인해 둔 버스 승차장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시르 트랜스(Sir Trans, 버스 회사 이름)라고 적혀있는 버스를 봐뒀기 때문에 이곳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매표소에 확인해 보니 여기가 아니고 두 블럭 더 가야 한단다. 엇,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약간 당황해서 근처를 돌아다녀봐도 비슷한 회사는 안 보이고, 주차장에 세워진 시르 트랜스 버스 앞에서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30분 후 출발할 분위기는 아니다. 장기주차해둔 버스인것 같다. 곧 버스는 출발할텐데, 버스 터미널은 어디인지 모르겠고, 사람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점점 더 불안감이 커진다. 버스표에 나와 있는 주소를 다시 잘 확인해 보니, 다른 위치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다행히 침착하게 주소에 나온 길 이름을 찾아가니 터미널이 나온다. 무거운 짐을 버스에 내려 놓고, 남은 돈을 쓰기 위해 슈퍼와 빵집을 찾아다닌다. 역시 자잘한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과자와 빵 밖에 없다. 덕분에 이날 밤에는 불가리아에 도착해 빵에 케첩을 뿌직뿌직 뿌려 가며 엄청 먹게 된다.

약간 더운 버스 안. 창밖 풍경이 보고 싶어도 꾸벅꾸벅 쏟아지는 졸음. 창밖은 거의 밭이지만 강이나 바다를 지날 땐 멋진 풍경이 보이기도 한다. 콘스탄차(Constanţa)에 도착하자 모든 승객이 내리고, 기사 아저씨가 다 왔다고 내리라고 한다. 어, 이게 아닌데. 나는 망갈리아(Mangalia)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기사 아저씨와 실랑이를 하고 있던 아줌마에게 '망갈리아'라고 적힌 표를 보여주자, 아줌마가 신나서 환호를 하며 춤을 춘다. 그리고 아저씨는 투덜거리며 버스를 다시 출발 시킨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했더니, 이 버스가 바로 망갈리아까지 가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가진 표는 망갈리아에 가는 다른 교통수단(미니버스)과 연계된 표인데, 나 때문에 아저씨가 미니버스가 있는 곳까지 운전을 해야했고 그것때문에 아줌마는 신난거였다. 거기까지 태워주니 마느니로 둘이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버스표에 망갈리아 가는 금액까지 포함되어 있어 미니버스에서 돈을 더내는 것은 아니었고, 아줌마도 옆에 있어 든든하게 가방을 끌어안고 출발한다. 지금 망갈리아로 가는 이유는, 불가리아에서 일주일 동안 헬프엑스 호스트가 되어줄 기테와 플레밍이 살고 있는 다보빅까지는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망갈리아의 리들(Lidl)이라는 슈퍼마켓 앞으로 오면 플레밍이 국경을 넘어와 나를 태워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뒤에 영어를 잘하는 젊은 친구가 앉았는데 악수하고, 대화를 조금 나눈다. 루마니아의 대우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을 안다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 친구 내릴 때 보니 리들 슈퍼 앞이다. 나도 여기야! 여기서 친구를 기다린다고 하자, 뭐라도 마시자며 슈퍼로 안으로 데려가 도넛과 콜라를 사 준다.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서 직업도 없는 청년에게 얻어 먹다니, 그것도 주머니 앞으로 쓰지도 못할 루마니아 돈을 넣어 두고, 내가 사줘야 할 판인데.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도넛을 먹고 콜라를 마시며, 플레밍을 기다리며, 이 친구가 얘기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 얘기를 듣는다. 롤로 영어를 배웠다는데 (유투브로 롤 방송을 많이 본다고), 와 말을 무지 빠르게 잘해서 오히려 나보다 영어 실력이 나은 것 같다. 한국이 롤을 잘한다며, 페이커(Faker) 등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대고, 게임, 챔프 등에 대해 쉴새없이 얘기한다. 나는 롤을 안한지 좀 되어서, 그리고 용어와 이름들이 낯설어서 이해를 잘 못하겠다. 그러다가 덴마크 번호판이 붙은 플레밍의 승합차가 리들로 들어오고, 고마운 루마니아 친구와 헤어진다. 

플레밍과 같이 마트에 들렀다가, 이것저것 쇼핑하는 것을 도와주고, 먹고 싶은 빵이 있냐고 해서 몇 개 고른다. 사실 조금전까지도 먹고 있었고, 배가 고픈게 아니지만 이렇게 먹을 기회가 있으면 놓칠 수 없다. 플레밍은 내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실 헬퍼가 필요한 것은 아닌데 기테가 외로워해서 가끔씩 헬퍼를 받는거라며 얘기를 시작한다. 플레밍과 기테는 덴마크 출신이다. 플레밍은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으나, 회사를 다니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치료를 받았고, 그 좋다는 덴마크의 복지제도에도 불구하고, 기본 연금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 기테와 덤스터다이빙(dumpster diving, 쓰레기통에서 먹거리를 찾는것)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캐러밴(caravan, 자동차에 연결해 끌고 다니는 이동식 주택)에 모든 짐을 싣고 불가리아로 이주했다. 덤스터다이빙을 했던 것이나 철학을 좋아하는 것이 맞아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라고 대답하며,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키르케고르도 덴마크 사람이라고 한다. 귀로는 플레밍의 얘기를 들으며, 눈으로는 멋진 풍경을 보면서 국경을 넘는다. 플레밍은 생각보다 말이 많고 국경에는 생각보다 차가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다보빅(Dabovik)의 집. 짖어대는 두마리의 암캐 카알라와 펄. 러시아에서 헬프엑스를 처음 했을때처럼 동물들이 친근하게 맞아준다. 그리고 플레밍이 타주는 맛있는 라떼를 들고 마당에 앉아 한가한 커피타임을 갖는다. 개들을 데리고 동네를 한바퀴 돌며 지나가다가 동네 사람들과 만나면 한담을 나눈다. 기테는 아직 불가리아어를 거의 못하지만 플레밍은 언어에 소질이 있어서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동네에 내어 놓은 집구경(시골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아 내놓은 집들이 많다. 그리고 집들이 무지싸다 500만원-2000만원이면 마당딸린 커다란 집을 살 수 있다), 저녁 식사, 대화, 별구경, 그리고 일주일 동안 나의 집이 될 캐러밴의 따뜻한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드래곤 라자>를 읽는다. 하하 너무 좋다.

부쿠레슈티에서 시작된 하루. 왠지 낡은 미래 느낌이 드는 창밖 풍경.


빵집에서 먹음직스러운 빵을 하나 샀다.

버스터미널 위치를 잘못 알고 있다가 낭패를 당할 뻔 했으나 다행히 버스시간에 늦기 전에 터미널을 찾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있는 버스

창밖 풍경이 좋다.

들판의 가축들

아름다운 시골길과 하늘

기테와 플레밍 집에는 와이파이까지 있다!

일주일동안 지낼 캐러밴

기테와 플레밍의 집. 플레밍은 장작을 잔뜩 준비해 두었다.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짭잘한 스틱과자와 해적깃발을 준비해 둔 기테

평화로운 동네를 산책한다.

개들을 데리고 산책한다

기테와 플레밍의 집 내부. 왼쪽에는 어떤 집시에게서 샀다는 그림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