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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헝가리

베오그라드 & 헝가리 부다페스트: 요새, 무임승차, 노숙자 (여행 96일째)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 요새 (출처: Wiki Commons)


베오그라드 요새 (출처: Wiki Commons)


베오그라드 요새 (출처: Pixabay)


성사바 성당 (출처: Wiki Commons)


아침 일찍 베오그라드의 호스텔에서 일어났다. 기차를 타기 전에 일찍 나가서 베오그라드를 구경하고 싶었다. 호스텔 로비에 나와서 바나나를 먹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새벽 기차를 타고 온 손님인가? 남자는 취해 있었다. 술이 아니고 약에 취해 있었다.

 

남자가 기분좋은 미소를 헤벌쭉 지으며, "나 여기서 자도 돼?"라고 묻는다.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는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고, 내 맘대로 쫓아낼수도, 받아줄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여기는 호스텔이라고, 돈을 내야 될거라고 대답하자, 원래는 아무나 와서 자던 곳이라고 대답한다. 기분이 정말 좋아 보이지만 졸려 보인다. 자기는 약을 피웠는데 (하시시인지 대마초인지), 나도 약을 하냐고 묻는다. 나는 안한다고 했다. 대화를 조금 들어 주다가 말로 쫓아 냈다. 밖은 추울텐데 어디로 갔으려나... 시킨 사람도 없는데 호스텔의 새벽 파수꾼 역할을 했다.

 

사바(Sava) 강과 도나우(Donau = Danube)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베오그라드 요새(Belgrade Fortress)를 보러 나갔다. 보야나가 추천해준 곳이기도 하다. 요새 성채에는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고 공원처럼 산책로가 있다. 구름 낀 하늘 아래 사람들이 개를 한마리씩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 귀퉁이에는 모스크바 시와 러시아 철도 회사에서 주최한 야외 전시장이 있었다. 멋진 러시아 풍경 사진들을 커다랗게 전시해 두었는데,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베오그라드 거리 풍경.





교회 입구마다 있는 모자이크 그림이 좋다.



베오그라드 요새 공원에서 열린 러시아 사진전.



러시아에서는 구경 못하던 풍경을 세르비아에서 하고 있다.



요새 공원의 동상.


요새는 도나우강과 사바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해 있다.


돌로 쌓은 성벽



벽돌로 쌓은 건물과 누더기같은 지붕.




교회에 잠깐 들렀다. 토요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몇몇 사람들이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가운데의 통로로 쭈욱 걸어가, 앞의 단에 놓여있는 책인지 무엇인지에 입을 맞추고, 옆의 공간으로 가서 서 있었다. 합창단의 아카펠라가 교회에 울리는 소리가 좋았다. 몇시간이고 앉아서 소리를 듣고, 의식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즐기고 싶었다. 눈을 감고 서 있다가, 다른 가보고픈 곳이 있어서 교회를 나왔다.


도시의 건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남자.


그리고 나서는 남은 세르비아 디나르의 처리 시간이다. 한국돈으로 4~5천원 정도가 남았는데, 너무 거금이라서 뭘 할지 모르겠다. 크랄레보로 돌아가 중국인 마켓에서 방수가 되는 신발을 사거나, 아지트에 커피를 사다주면 좋을텐데. 헝가리에서 만날 데이빗(한국에서 같이 공부한 헝가리 남자)과 비키(두바이에서 같은 건물에 살던 헝가리 여자)에게 선물할 커피와 차, 호스텔에 채워 놓을 커피믹스(오렌지 맛) 3개, 오늘 먹을 빵과 과일을 사니 돈이 정리된다. 


호스텔 아주머니의 수첩.


모스크바가 그려진 예쁜 재떨이.


오늘도 고 비건! 표시가 보인다.


오전 11시 35분.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한다. 지정 좌석이 없는 자유로운 방식이다. 바깥 풍경이 멋지지만 불투명하고 얼룩진 창을 통해 보고 있자니 졸음이 온다. 어쩌면 빵과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졸린 걸수도 있겠다. 기차 여행이 꽤나 길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오히려 할일이 많아 정신이 번잡할 지경이다. 종이책도 읽고 싶고, 전자책도 읽고 싶고, 가만히 앉아 명상하고 싶고, 지금까지 찍은 사진도 보고 싶고, 창밖도 보고 싶고, 그러다가 또 졸리고.


부다페스트행 기차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부다페스트 야경 (출처: pixabay)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두워진 초저녁.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동안은 친구 데이빗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데이빗은 한국의 대학원에서 같이 국제학을 공부한 친구인데, 명상, 철학, 영혼 등 공통의 관심사가 많아서 가장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마지막 학기를 공부하던 2015년, 갑자기 뇌종양으로 쓰려져 헝가리로 돌아와 수술을 했고, 재활치료를 하며 의사도 놀랄만한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그동안 생활습관도 많이 바뀌어서 좋아하던 맥주도 끊고, 채식, 요가, 마사지 등에 관심이 생긴것 같았다.


기차역에서 24번 트램을 타고 (무임승차했다), 데이빗의 집 근처 전철역에서 내려 데이빗을 만났다. 전날 베오그라드에서 만난 싱가포르 여행자가 얘기한 것처럼 노숙자들이 많이 보였다. 춥고 더러운 바닥. 내가 저 옆에서 잘 수 있을까. 아침에 빵집 앞의 쓰레기통에서 빵을 찾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내 머릿속 반응은 배고픈 남자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나도 공짜로 빵을 줏어먹고 싶다'는 생각이였다. 하하하.


부다페스트의 집은 원래 데이빗과 데이빗의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는데, 얼마 전 동생이 중국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떠났기 때문에, 내가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데이빗이 잔뜩 모아둔 책들을 구경하고, 차를 마시고, 빨래를 하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데이빗이 한국문화원에서 일하면서 편집했다는 잡지도 훑어봤다. 요즈음 데이빗은 조지프 캠벨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전설에 관한 책들이 책장에 잔뜩 있었다. 데이빗이 같이 다큐멘터리를 보자고 해서 조지프 캠벨이 강의하는 비디오를 보는데, 내용도 모르겠고, 영어도 잘 안들려서 꾸벅꾸벅 졸음이 왔다.


카우치서핑히치하이킹 그룹에서 독일에서부터 그리스까지 난민 캠프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한다는 남자의 글이 올라왔다. 세르비아에서 보야나와 지내며 난민에 관심이 생겨서, 그리고 겨울동안 지낼 곳이 필요하기도 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내 일정과, 그 청년의 일정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널찍하고 노숙자가 많던 전철역 지하도.


한국에서 데이빗에서 선물했던 톨스토이의 책을 헝가리에서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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