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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헝가리

헝가리 솔녹: 기차, 팔린카, 히치하이킹 (여행 101일째)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부다페스트

 

그렇지.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진리를 찾아다가 떠먹여 줄 수 없다. 깨달음도 현명한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그 사람들의 글을 읽는다고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 자신의 용기를 짜내어 무언가를 시도하고 부딪히고 경험하는 수밖에.

 

오늘은 데이빗의 고향 마을인 솔녹(Szolnok)에 가기로 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전철표를 끊기 위해 350포린트를 내면서 (돌아올 때를 위해 2장을 사는 대신 1장만 샀다) 형언할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약 1900포린트(7-8000원)짜리 솔녹으로 가는 표를 끊으면서 마음의 심란함은 더욱 커져간다. 오... 이번 부다페스트 생활에서 돈을 안쓰려는 노력 때문에 데이빗을 얼마나 불편하게 했을지.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데이빗, 이런 젠틀맨! 어쨌든, 돌아올 때는 히치하이킹을 해야 겠다는 생각은 이렇게 솔녹으로 가는 기차에서부터 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구경할 새도 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적어도 10시간은 달려줘야 기차를 탄 기분이 나는데, 1시간만에 내리니 뭐 지하철을 잠시 탄 것 같군.

 

큰 도시(city)에서 벗어나 다시 작은 도시(town)로 오니 너무 좋군. 높다란 건물도, 화려한 건물도 없고, 투박하고 간단한 건물들이 듬성듬성 거리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때맞춰 날씨도 활짝 피어서 그렇게 보기 힘들던 햇님이 찬란하게 빛나고 계신다. 데이빗의 고향집에 가니, 부모님들은 일을 가셔서 안 계시고(생각해보니 선물을 준비할 생각도 못했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서재겸 거실에 들어가 보니 데이빗의 아버지가 모아 놓은 수많은 책과 레코드판(LP)이 보인다. 엄청난 컬렉션. 이런 걸 볼 때마다 세상의 모든 집구석과 아파트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꺼내 놓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안된다. 데이빗과 동생의 방, 주방 겸 식당, 안방까지 집이 상당히 크다.

 

데이빗이 사는 아파트 건물의 공용 창고.

 

데이빗 아버지의 서재.

 

 

어린이 방처럼 예쁘게 꾸며놓은 데이빗 동생 방.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주방.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놓아둔 데이빗 형제의 사진. 데이빗은 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많아 친하지 않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형제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집에 가방을 두고 나와, 팔린카(Pálinka)라고 하는 헝가리 전통술(독한 과실주)을 사러 주류 상점으로 갔다. 데이빗이 선물용으로 좋다고 추천하기에, 미니어처 몇 병을 사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들에게 선물하려고 했는데, 기차표에 돈을 그렇게 쓰고 나니, 530포린트짜리 몇 개를 사는 것이 부담되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팔린카(Pálinka). (출처: pinterest)

 

(출처: abszint.com)

 

(출처: Wikipédia)

 

 

데이빗은 한국 관광부인가 어디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초청되어, 얼마뒤 비행기표와 숙식 등을 제공받으며 한국에 다녀올 예정이다. 그 행사에 입을 정장을 마련하기 위해 양장점에 들어갔다. 이것 저것 골라보더니 이내 정장을 구입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50000포린트(약 20만원)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헝가리 물가를 생각할 때 꽤 비싼것 같다고 말하니 데이빗이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맞아, 이따위 옷 한 벌이 50000포린트라니 완전히 미친거야"라고 약간 화가 난 듯이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살이 빠지면서 이전에 입던 옷은 맞지 않고, 행사에 잘 차려입고 가려면 옷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갑자기 이모가 면접 때 입을 정장을 사 입으라고 주신 돈 100만원이 생각났다. 그 주신 돈으로 지난 백일 동안 여행을 해왔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보면 아직 돈을 하나도 안쓴 것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좀 더 남에게 베풀어도 될텐데.

 

솔녹 풍경.

 

솔녹의 양복점. 문짝에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다.

 

무슨 가게 간판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부의 무법자 그림이 멋잇다.

 

 

솔녹에는 개혁교회, 천주교회, 유대인 시나고그가 있다고 한다.

 

새로 생겼다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학생들이 건너고 있다. 체육시간에는 이렇게 학교 밖으로 나와 운동을 한단다.

 

 

학생들이 둑을 따라 달리고 있다.

 

 

 

데이빗과 강변을 따라 걷다가, 새로 생겼다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올라가 보고, 시내를 한 바퀴 돈 후, 점심 식사 이야기가 나왔다. 헝가리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하는데, 가격이 두려워서 가고 싶지가 않았다. 데이빗을 따라 시내 중심부의 헝가리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코스 메뉴가 있었는데, 난 그저 수프랑 빵만 먹고 싶었다. 그런데 데이빗이 그냥 주문을 해 버렸다. 케이크는 (설탕이 많아서) 오렌지로 바꾸고, 고기는 안 먹기로 했다. (같이 있으면서 설탕과 고기를 안먹는 건 정말 좋다.) 수프가 커다란 냄비에 나오고 빵은 무제한으로 공짜인것 같다. 기왕 주문된 것 신나게 먹자. 그리고 나서 콩으로 만든 죽(poridge)이 나왔다. 이것들 레시피도 확인해 봐야겠군. 데이빗이 또 자기가 돈을 내겠다는데, 미안해서 그럴 순 없지... 1인당 940포린트가 나왔는데 데이빗이 잔돈을 거슬러 줘서 860포린트(약 3500원)만 냈다.

 

도로에서 솔녹 시의 문장을 볼 수 있었다.

 

데이빗이 문장의 의미를 알려주었는데 까먹었다. 어미새가 자신의 피를 아기새들에게 먹이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사진출처: Wiki Commons)

 

 

식사 후 데이빗 부모님집에 돌아와 쉬면서 고민을 시작한다. 어떻게 부다페스트로 돌아갈 것인가! 겁이 나기도 하지만, 기차 요금을 다시 내기도 싫고, 또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며(?) 사진도 편하게 못 찍고 후다닥 걷기만 하는 것도 싫고, 결국 마음의 저항이 가장 적은 곳은 히치하이킹이다. 실패하더라도, 혼자서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가서 전철을 타지 않고 걸어가는 옵션이 있다. 그리하여 데이빗에게 "난 히치하이킹으로 돌아갈게"라고 말했다. 데이빗은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행운을 빌어주며 이따가 부다페스트에서 보자고 한다. 종이와 두꺼운 마커를 빌려 커다란 글씨로 'BP-Budapest'라고 적었다. 

 

맞은편 건물에서는 두건을 쓴 노파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만큼 기분이 상쾌하다. 길도 쉬워서 금방 솔녹 시내를 벗어 나왔다. 히치 위키(Hitch Wiki)의 지도(링크)에서 찾아보니 누군가가 히치하이킹이 그럭저럭 잘 된다고 찍어 둔 곳이 있어서 그쪽으로 계속 걸었다. 지도 상에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걸어도 걸어도 길이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6km가 넘는 거리였다. 히치하이킹 시작점까지 한시간 넘게 걸었고, (인터넷이 없어서 점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히치 위키에 나온 점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한시간 동안 히치하이킹을 했다. 

 

노란 단풍으로 뒤덮인 길.

 

솔녹 시를 빠져나와서 히치하이킹 하기 좋은 지점을 찾아간다.

 

시골집이 보인다.

 

털빛이 예쁜 닭들도 보였다.

 

 

아름다운 시골길. 걷기에는 참 좋았다.

 

길가에 누군가의 묘지도 있었다.

 

차가 수백 대는 지나갔을 건데, 다들 쌩쌩 달리기만 하고 서주지 않는다. 특히 아주머니들은 눈도 안 마주치거나(운전석), 이상하게 쳐다보고(보조석), 선글라스 아저씨들도 엑셀을 밟으며 무자비하게 지나친다. 중국이나 불가리아의 한적함과는 달리 교통량도 많고, 차가 잠시 설만한 공간도 있는데, 이렇게나 차가 안 잡히니 20-30분만에 정신적 체력이 바닥나고, 포기 상태가 되어간다. 이미 수십 수백명에게 거절을 당한 것이다. 오후 3시쯤 여기에 도착했으니 4시까지만 하자는 마음을 먹고 떨어져 가는 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종이를 들고 손을 내밀었다. 3시 40분... 45분... 48분... 시간은 점점 더 안가고, 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조금씩 상처를 받느니, 차리리 얼른 걸어서 돌아가고 싶어진다. 다시 6km를 걸어 돌아가야 기차든 버스든 탈 수 있을테니. 그래도 중간 중간 엄지손가락을 들어주고, 손짓을 해주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들(나의 착각?) 때문에 힘이 났다. 불가리에서 한참동안 걸을 때도 다들 이렇게 지나쳤었지. 3시 58분... 59분... 자전거를 탄 아저씨 한 명이 지나치고, 차들이 몇 대 더 지나친다. 4시가 되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부르며 이제 돌아가야지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보는데 차가 한 대 서있다. 하하하... 무슨 장난을 이렇게 치십니까. 4시가 딱 지나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생각난다. 

 

부다페스트로 직접 가는 도로와, 다른 도시를 거쳐가는 도로로 나누어 지는 지점이다.

 

이렇게 차를 잠시 정차할 만한 공간도 있었다.

 

광활한 평야.

 

히치하이킹에 딱 적합한 장소인데 50분째 아무도 세워주지 않는다.

 

마의 1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차를 얻어탔다.

 

차를 세워준 남자는 벨라라고 하는 31살 남자였다. 아들이 5살이고 딸은 1개월 전에 태어났다고 했다. 친구가 보스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약간 대화를 하며 갈 수 있었다. (혹시 내가 동양인이라서 말이 안통할까봐 사람들이 차를 안 세워준 거였을까?) 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햇살이 너무 아름다웠다. 대화도 조금 했다. 벨라는 21살 때 3개월 동안 인도 여행을 했다고 한다. (21살때, 인도를, 3개월 동안! 이건 정말 대단한거다.) 헝가리에서는 올칙 국립공원(Orseg National Park)이라는 곳에 가보라며 추천, 슬로바키아 음식도 먹어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내 다음 목적지인 에스테르곰(Esztergom)에 갈 때에는 보트를 타고 가 보라는 얘기도 들었다. 좋은 생각이군.

 

올칙(Őrség) 풍경. (출처: Daily News Hungary)

 

 

벨라는 부다페스트 끝자락의 전철역 근처에서 나를 내려주고 유턴해서 외곽의 집으로 돌아갔다. 벨라가 내려준 전철역에서 데이빗의 집까지 걸어왔다. 결국 해낸 것이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편하게 돈을 써버리라고 뒤에서 계속 잡아 끌었지만, 일단 돈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면 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 버린다. 여행비를 1만원 아낀 것도 좋았지만, 남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을까 하는 자의식을, '남에게 신세지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부숴버린 것이 좋았다. 우리가 아무리 잘났다 해도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살 수는 없으니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1시간을 끝까지 버틴 것에 대한 보상으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결국 달콤한 빗방울이 떨어진다는 것을 배운 마법같은 하루였다.

 

부다페스트에 돌아왔다!

 

기차표 값을 아꼈으니 맛있는 간식이라도 사먹고 싶지만 참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걷는 것은 기약없는 기다림에 비하면 정말 쉽다.

 

 

 

차가운 길에 버려진 매트리스를 깔고 노숙하는 여자가 보인다.

 

 

 

 

앞으로의 이동을 위해 11유로짜리 베를린-암스테르담 버스표와 20유로짜리 니트라-베를린 버스표를 구입했다. (친구들 집에 언제까지 가기로 미리 정해놓아서 시간이 불확실한 히치하이킹 대신 버스를 택했다.) 이제 슬로바키아, 독일, 네덜란드로 순식간에 넘어간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푸이, 나타샤(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와 연락해서 이제 11월 14일까지 지낼 곳과 교통 수단이 마련되었다. 그 다음은 어디? 명상 센터일까?

 

한시간 동안 들고 있던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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