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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헝가리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 어부의 요새, 겔레르트 언덕 (여행 99일째)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부다페스트

 

오전에는 데이빗과 영웅 광장(회쇠크 광장)과 공원을 보러 갔다. 한참을 걷다가, 트램을 타야 해서 또 다시 무임승차를 했다. (데이빗은 정기권을 사용함.) 혼자였으면 걸어 갔을테고, 무임승차를 할 일도 없었겠지만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없다. 데이빗 말로는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이 많고, 특정 구간의 특정 시간대에는 표를 검사하는 일이 거의 없다지만, 무임승차를 한다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하고 불안한 일이다. 트램에서 내려 공원을 향해 걷는 길(Andrássy út)에는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을 포함해 많은 국가의 대사관이 보였다. 데이빗 말로는 땅값이 비싼 부자 동네란다.

 

광장에 도착하니 관광객이 바글바글하고 한국인도 많이 보인다. 입구에는 헝가리의 왕들과 통치자들의 동상이 있었다. 관광을 공부하고 있는 아마추어 가이드 데이빗이 왼쪽부터 시작해 각각의 지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광장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 재미있게도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해 싸운 영웅들의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회쇠크 광장. 관광객이 많았다.

 

 

좌우로 늘어선 기둥들 사이에는 영웅들의 동상이 있었고, 그 밑으로는 그 영웅에 관한 일화가 그림으로 새겨져 있었다.

 

 

데이빗이 각 영웅의 일화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줌 쌀 곳을 찾아 광장에서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로 쌓은 근사한 성채가 보였다. 성채(버이더후녀드 성, Vajdahunyad vára) 안으로 들어가니 박물관, 교회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와 사람들을 따라 걸으며 구경했다. 데이빗도 처음 와 보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교회(Jaki chapel)의 벽면을 장식하는 조그만 사람 모양 동상들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인 디자인과 세부적인 모양들 하나하나가 특이하고 아름다워서, 사진에 구석구석 모든 부분을 담아두고 싶었지만, 카메라의 성능도, 햇빛도 부족했다. 멋진 작품들을 보는 것은 좋았지만, 내내 구름낀 하늘이 조금 아쉬웠다.

 

호수 너머로 보이는 버이더후녀드 성. Vajdahunyad Castle. Photo by Dennis Jarvis. (source: flickr)

 

강렬한 인상을 줬던 익명 연대기 작가의 동상. (출처: pixabay)

 

소풍나온 아이들. 성채 안에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은 예배당(Jaki chapel). 빛도 카메라도 그 아름다움을 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밝은 날의 자키 예배당(Jaki chapel). (출처: Wiki Commons)

 

데이빗이 공원의 안익태 선생 흉상이 세워진 곳을 보여주었다.

 

광장과 공원 구경이 끝난 후, 점심값도 부담되고 돌아가는 교통비도 부담되어서 데이빗을 먼저 돌려 보내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정말 어렵다. "비싼 점심을 먹기 싫고 교통비도 내기 싫어서 따로 먹고 혼자 걸어가고 싶어"라고 직접적으로 말을 해 버리면, 분명 데이빗이 자기가 돈을 내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달 교통권을 갖고 있는 데이빗은 나 때문에 덩달아 많이 걷고 있다. 다행히 전철역까지 걸은 후 헤어져서, 데이빗은 전철을 타고 떠나고, 나는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직행해 바나나와 싸구려 빵을 잔뜩 샀다. 이렇게 50원짜리 빵이 가득한데 5000원 주고 밥 사먹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산 빵을 비둘기, 참새들과 나눠 먹은 후 길을 따라 걷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한국인 남자가 보인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옆에서 걸으며 말을 걸었다. 인사를 하고, 언제 왔는지, 어디를 여행하는지 등을 물어 보았는데,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고 도망치듯 걸음을 빨리 해 멀어지더니 씨티은행으로 들어가 버린다. 음... 내가 돈이라도 구걸할 것처럼 보였나보다. 헝가리에는 11일 정도 있었고, 다른 나라는 안 가고 헝가리만 여행한다는데, 그렇게 인사도 없이 차갑게 멀어져 버리니 섭섭하군.

 

성인용품점. 어두운 한국의 가게들과는 달리 밝고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부다 성(Budavári Palota)

 

다리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중국인 신혼 부부가 보였다.

 

강변에 있던 개혁교회(Szilágyi Dezső téri református templom)

 

아름다운 건물들이 정말 많았다.

 

그녀에게 선물할 나뭇잎.

 

걷다 보니 도나우 강과 만났다. 다리를 건너서 강변을 따라 걷다가 언덕을 올라갔다. 중간에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보이면 반가워 하기 보다는 시선을 피하고, 거부감까지 느끼는 (쌍방에서) 이유는 뭘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에서 떠나 '부다페스트'라는 곳에 와서 특별함을 즐기고 있는데 그것이 깨부숴져서 일까? 하지만 관광지가 아닌 세르비아의 '크랄레보' 같은 곳에서 한국인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어부의 요새로 올라가 마차시 성당(Matthias Church)을 밖에서나마 감상했다. 지난번과는 달리 혼자여서, 원하는 시간 만큼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셀카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보였다. 한 커플이 있었는데, 여자는 성당을 배경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고, 남자는 쇼핑하는 여자를 따라 나온 남편처럼 무기력하게 핸드폰을 만지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서, 눈꼽만큼의 감동도 공유되지 않고, 눈앞의 기적은 보지 못한채, 페이스북에 올라갈 셀카만 보고 있는 모습에서 커다란 공허함을 느꼈다. 바이올린이나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서서 듣고 싶었지만 던져줄 동전이 없어 멀리서 음악을 훔쳐 들었다. 멋지게 차려입은 동양인들(스타일을 보고 한국 사람인줄 알았는데 중국 사람들이었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 역시 자신만의 특별함을 즐기며, 저열한 관광객들을 거만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걸까?

 

언덕을 올라가며 보이는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성채.

 

 

이틀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혼자이기 때문에 천천히 건물을 감상한다.

 

한참동안 셀카를 찍는 여인과 무관심하게 기다리는 남자.

 

 

날씨가 흐려서 아쉽지만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사람들에게 밟힌 노린재가 많이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와 한참을 걷는다. 어제 갔던 루다스 온천을 지나서, 언덕 위 암굴 교회(Gellért Hill Cave)로 갔다. 입장료가 있어서 입구만 구경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다시 다리를 건너서 시장에 들어갔다. 부다페스트의 여느 건물들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에 재래 시장이 들어서 있다. 바나나를 몇개 사들고 나와, 점점 익숙해져 가는 거리를 걸어 데이빗의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 다시 걷게 될지 알 수 없는 이 거리의 이름을 기억해 두고 싶었다.

 

데이빗과 함께 갔던 루다스 온천을 지나친다.

 

마치 절벽에서 돌을 그대로 깎아낸 것 같은 하얀 석조건물.

 

 

겔레르트 언덕의 우울한 기사상.

 

시장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동네 근처. 학교가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학부모들.

 

집에서 걸어 다니며 항상 보이던 뾰족하게 솟은 교회 건물(Assisi Szent Ferenc Plébánia Templom).

 

저녁에는 다시 한번 트램을 무임승차해서 데이빗과 함께 랑고스(Lángos)를 먹으러 갔다. 랑고스는 밀가루, 소금, 설탕, 이스트 등으로 만든 반죽을 튀겨서 사워 크림, 요거트 등을 얹어 먹는 헝가리 음식인데, 여기서 군것질 거리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사워크림만 바른 랑고스는 350포린트(약 1500원), 치즈까지 들어간 것은 500포린트(약 2000원)였고,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가격이 점점 비싸진다. 데이빗은 500짜리(치즈+사워크림)를 강력추천 했지만 가격을 고려해 350짜리를 먹었다. 여기서 데이빗의 친구 라미도 만났다. 다같이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기 위해 시타델라(겔레르트 언덕) 쪽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이번에는 돈을 내고 탔다. 한 번 타는데 350포린트로 이곳 물가를 감안할 때 무지 비싸다. 아까 랑고스랑 같은 가격이다.

 

사워크림을 얹은 랑고스. 전형적인 불량식품이고, 그래서 맛은 좋았다.

 

트램에서 내려 보니 오후에 혼자 왔던 암굴 교회와 같은 곳이다. 라미데이빗을 따라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오르자, 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라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펼쳐져 있다. 구름낀 하늘 아래이고, 안경도 가져오지 않아 약간 뿌옇게 보였지만, 어쨌든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도시를 내려보는 것은 멋진 일이다. 데이빗과 라미가 벤치에 앉아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난간에 걸터 앉아 도시를 내려다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할일없는 내가 가서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부다페스트 풍경. Skyline of Budapest from Gellért Hill. (Source: Wiki Commons)

 

'세개 3대'라고 할만큼 대단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멋진 야경이다.

 

라미는 예전에 만났다면 끌렸을 법한, 자유분방하고, 해외 경험이 많고, 남자를 좋아하고, 파티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이 긴긴 여행동안 진정으로 용감하고 흥미로운 여자들을 많이 봐서인지, 라미가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온실 속 화초로 보였다. 그래서 같이 있는 동안 거리감을 느꼈고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다. 이렇게 라미를 '존경할 부분은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지은 나의 오만한 판단은 곧 망치로 세게 후려 맞는다. 산에서 내려온 후, 내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라미가 "이미 많이 걸어서 힘들테니 버스비를 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마음씨 착한 사람을 나는 속으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두 사람과 헤어져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걸어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데이빗이 먼저 돌아와 있었다. 둘이 조금 더 놀다가 올 줄 알았는데, 데이빗도 바로 돌아왔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데이빗이 "오랜만에 라미를 만났는데, 더 이상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어"라고 말했다. 그동안 데이빗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헝가리에서의 카우치서핑은 하나 찾았지만 슬로바키아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 불확실성도 즐기기를. 계획없음의 자유로움을 즐기기를. 해를 두려워 않기를. 카우치서핑을 할 때에는 헬프엑스(helpx)를 바라고, 헬프엑스를 할 때에는 카우치서핑을 바라며 언제나 불만족하기보다는 매 순간 순간에 충실하기를. 이번주까지 묵을 곳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하루 하루가 절실했던 불가리아 플레벤(Pleven)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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