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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헝가리

헝가리 에스테르곰: 가톨릭 수도승과 도나우 강의 다리 (여행 105일째)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헝가리 에스테르곰(Esztergom)

날씨 매우 좋음


배경음악 듣기(새창):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


가보르 아저씨와 아침식사를 하며 수도승(monk)에 관한 질문을 했다.


"수도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물었다.


"수도회마다 다르지만, 먼저 독실한 신앙심을 가져야 하고, 가족, 재산, 지위를 포기하는 서약을 해야 해. 관심이 있으면, 먼저 수도원에서 잠시 생활해 보며 수도사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체험해 보는 게 좋을거야." 가보르 아저씨가 대답했다.


나는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을 원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갈 수 있나요? 그리고 만약 제가 여기서 수도원에 들어간다면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괜찮을까요?"


"수도원에서 생활해 보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어.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큰 상관이 없지. 하지만 하루에 몇 천 포린트 정도를 기부해야 할거야." 가보르 아저씨가 말했다.


아... 돈을 내야 한다면 포기다. 수도원 생활에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는 데에 돈이 들어서는 안된다.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얻을 수 있고,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은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라면 사양이다. 하지만 가톨릭에 대한 내 관심을 갸륵하게 여겼는지 가보르 아저씨가 좀 더 많은 정보를 주신다.


"수도 생활에 관심이 있으면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이라는 책을 읽어봐. 잠깐, 나에게 파일이 있으니 복사해 줄 수 있어." 가보르 아저씨에게 내 조그만 전자책을 넘겨주자 컴퓨터에서 한참 동안 파일을 찾더니 토머스 머튼의 책 두 권을 담아 주신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추천하는 책은 바로 <가톨릭교(Catholicism)>인데 미국 로스엔젤레스(LA)의 주교님이 쓰신 책이야. 아쉽게도 전자책 파일은 없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렴." 


아저씨가 보여준 책은 양장본의 붉은색 책이었고, 가톨리시즘이라는 제목 옆에는 저자의 이름 로버트 바론(Robert Barron)이 적혀 있었다. 아저씨의 강력한 추천에 궁금증이 생겨 그 자리에 서서 서문을 읽어봤다.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신이 인간의 모습이 되었기에 반대로 인간도 신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성자들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 가톨릭이 이런 종교인 줄 몰랐는데, 불교(수많은 불상들과 해탈한 보살들)나 힌두교와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우리 종교만 특별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상 자체는 놀랄만큼 공감이 된다.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가톨릭에는 내가 어렸을 때 부터 접해온 개신교와 크게 다른 부분이 있다. 개신교 신자인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가끔 하시는 말이 있다. "너는 신이 아니야." 신자의 윤리에 관해서, 양심에 대해서 내가 엄격한 기준을 갖다 댈 때마다 신과 인간을 엄격히 구분하며 하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잠깐 읽은 가톨리시즘에서는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신의 완전성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신의 완전성에 다가간 수많은 성자들을 기리고 그들을 존경하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성자들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는 것이다. 단지 "난 예수를 믿소!"라고 말하면 땡이 아닌, 구원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불교에서 명상과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습과 겹쳐졌다.


"넌 스스로를 가톨릭인이라고 생각하니?" 가보르 아저씨가 물었다. 한국에서도 교회에 가면 종종 들을 수 있는 질문, "예수님 영접 하셨어요?"와 비슷한 질문이다. 이럴 땐 최대한 맞춰주는 것이 좋다.


"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가톨릭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불교, 개신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같은 신과 같은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말했다.


가보르 아저씨가 씨익 웃더니 대답했다. "테레사 수녀님이 이런 말을 했어. '모두가 가톨릭 신자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 없다면 더 나은 힌두교도, 더 나은 무슬림, 더 나은 불교도가 되는 것도 충분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중에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을 찾아보니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었다. (If people become better Hindus, better Muslims, better Buddhists by our acts of love, then there is something else growing there.)


가보르 아저씨와의 시간도 이제 끝이다. 오늘은 슬로바키아로 넘어가 기차를 타고 다음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있는 노베 잠키에 갈 예정이다. 작별하고 집을 나와 다시 길을 나선다. 


가방이 한결 가볍다. 정말 아름답고 한적한 도시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둘러보고, 남은 헝가리 돈으로 빵을 조금 사서 먹는다. 그리고 슬로바키아로 넘어가는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Mária Valéria Bridge)로 향한다. 두 다리로 국경을 건너는 건 어쩐지 들뜨는 일이다. 다리를 건널 때는 바람이 차갑지만, 강 건너의 에스테르곰 대성당과, 산등성이와, 색색 물든 나무, 햇살과 파란 강물이 너무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보는 언덕위 하얀 예배당.


햇살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던 산책로.


그리고 국경을 넘는 도나우 강의 다리에 왔다. 헝가리에서 슬로바키아로 왔다갔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다리 위에서 본 에스테르곰.


슬로바키아로 넘어간다. 쉥겐조약국이어서 국경 검문은 없지만, 화폐가 포린트에서 유로로 바뀐다.


다리 위의 크리스마스 장식.


다리를 건너며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게 했던 에스테르곰 대성당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지금 생각하니 인도의 타지마할과 느낌이 비슷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