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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포르투갈

포르투갈 타비라: 해안 마을, 아줄레주, 갈등 (여행 155일째)

Ponte Romana, Tavira


2016년 12월 20일 화요일

포르투갈 타비라(Tavira)


[1] 베라가 알려준 조그만 마을 타비라. 오후 2시쯤 도착한 줄 알았는데,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오면서 시차가 있어서 오후 1시다.

[2] 아침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승희와 친척형. 승희도 지금까지 시달리고 참은게 있어서 그런지 폭파직전인데, 쇼핑과 술로 그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두고 있다. 친척형도 참아온게 있는지,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거슬려 하고 있다. 나랑 주현이? 우리는 무임승차자들이기 때문에 별 불만없다. 흐하하. 얼마전부터 같이 여행하고 있는 주현이는, 우리 셋만 있었으면 불편하거나 짜증났을게 뻔한 상황에서 아주 좋은 구원투수가 되어주고 있다.

[3] 에어비엔비에서 찾은 숙소(Tavira Garden)는 시내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우리 일행들에게는 도보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가서 골목길에 주차했다. 맑은 햇살과 파란 하늘, 하얗고 파스텔톤인 집들은 타일로 외벽이 장식되어 있다(이런 타일 장식을 아줄레주[azulejo]라고 하는 것 같다.).  강을 건너며 보이는 물고기와 갈매기들. 너무 평화롭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어서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다.

[4] 시내의 레스토랑(Abstracto, R. António Cabreira 34)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행들은 해산물 요리를 먹고 나는 채소 요리를 먹었다. 음식 맛이야 어딜 가든 비슷하지만, 동지 무렵의 짧은 해가 건물들 사이로 비추는 골목길 오후의 분위기가 좋았다. 지나가던 키 큰 삐에로에게 사탕도 받았고, 식당에서는 무료 디저트로 포트 와인도 받았다. 하지만 승희가 계산이 이상하다며 음식 가격을 따지고, 가방에 챙겨 넣었던 버터를 환불받으려고 하면서 약간 창피한 기분도 들었다. 나도 돈을 내는 입장이었다면 민감하게 굴었겠지만(아예 이런 레스토랑에 안왔겠지), 친척형이 돈을 전부 내주니 아무래도 둔감해진다.

[5] 그 외에도 창피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술에 취해서 크게 떠드는 것이나, 길이나 식당에서 크게 대화하고, 크게 웃을 때가 가장 민망하다. 그런데 왜 내가 그걸 창피해 하는 걸까. 창피해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예전에 친척형과 (다른 일행들과) 여행을 할 때에 너무 시끄럽다고 현지 사람들에게 주의를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민감해진 것 같다. 혼자 다닐 땐 떳떳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사람 저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6] 다들 마음에 들어하는 곳이어서,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하고, 저녁으로는 김치찌개, 친척형이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 승희가 만든 알리올리 밥 등을 먹었다. 

[7] 승희는 저기압이 계속 이어져서 친척형과 둘이 있을 땐 말도 거의 없다. 하하, 내가 너무 시끄럽다고 구박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이런 침묵이 생기니 약간 미안하군. 하지만 대화가 좀 더 의미있고, 흥미로웠으면... 내가 잘났냐, 니가 잘났냐, 내가 유식하냐, 니가 많이 아냐, 난 이것도 해봤고 저기도 가봤다, 이런 유치한 대화 대신에 좀 더 성숙한 대화였으면 좋겠다. 놀라운 경험, 솔직한 경험, 고통스러운 경험, 그로 인한 변화, 교훈, 지혜, 그것의 공유와 진정한 관심이 있는 대화였으면 좋겠다.

[8] 누군가 말했듯, 사람들의 "에고 쇼"도 결국 자기를 사랑해 달라는 외침일 뿐이다. 자신의 요리를 칭찬해 달라는, 자신의 여행과 스타일을 칭찬해 달라는, 이런 요구를 깊숙히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모른체하고 코웃음친다면 나도 또 다른 방식의 "에고 쇼"를 하는 것이 될 뿐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그저 사랑을 퍼올려 주는게 유일한 해답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 사랑대신 냉소와 분노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9] 브라질의 소스 템플(Source Temple)에서 답신이 왔다! 브라질로 건너가는 것이 결정된 후, 헬프엑스(helpx)에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2월 19일부터 받아줄 수 있다고 한다. 예스! 세계일주를 시작하기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모로코에서도 헬프엑스 할 곳을 찾아 두었다. 일행과 헤어진 후의 계획들이 하나 둘씩 세워지고 있다. 지금은 지금 주어진 것(배부름, 자유시간, 편안함)에 감사하고, 나중이 되면 정신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자.


하얀색 페인트칠과 타일로 장식한 벽이 예쁜 타비라의 건물들

타일에 반사된 햇빛이 눈부시게 빛난다. 한국에서는 타일을 화장실 벽과 바닥에만 붙이는데 생각해보면 안과 밖이 바뀌었다.

강(Gilão River)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타비라

조그만 성채(Castelo de Tavira)에서 본 마을 풍경

Igreja de Santa Maria do Castelo

아줄레주(azulejo)

사탕을 나눠주다가 쉬고 있는 삐에로

Zeca da Bica, Rua Almirante Cândido dos Re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