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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스페인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 축구장, 미술관, 죽음의 승리 (여행 164일째)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스페인 마드리드

[0] 악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훈련할 기회가 눈앞에 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갈 때는 누구나 웃는 얼굴을 할 수 있다. 상황이 피곤해지고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때, 그 때 웃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성자겠지. 그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이건 자신을 훈육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 하루종일 이런저런 귀찮은 부탁을 부드럽게 들어주다가 가방을 아이스박스에 넣고 들고 타라는 말에 짜증이 폭발하며 톡톡 쏘는 말투로 대답을 했다. 더 부드럽게 대답했으면 좋았을텐데.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금까지 짜증났던 모든 것들을 열거하며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고 나 자신도 악마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상대방의 선하고 약한 부분을 보며 동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부족하다. 희생. 말로는 쉽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잘 되지 않는다. 상대가 귀여운 아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희생하고, 상대가 어리석고 추하면 희생하지 않을 텐가? 완전히 잘못해 오고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죽음과 희생에 대해, 인류 보편의 주제의식에 대해 느낀 감동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를 바꾸지 못하다니. 이 무슨 소용인가. 아직도 자아가 너무 크고 고집이 너무 세다. 굽힐 줄 모른다. 자기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고 남의 흠만 보고 있다. 반성하자.

[1] 왕궁: 민박집에서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어제 입장하지 못한 마드리드 왕궁(Royal Palace of Madrid)에 가기로 했다. 민박집 아저씨가 강추한 곳 중 하나다. 아저씨는 왕궁을 비롯한 몇몇 명소들을 나열하며 이곳들을 방문하지 않으면 진정 마드리드에 가봤다고 할 수 없는거라 했다. 왕궁 오픈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서 가려고 했는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저씨가 말을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를 않으셔서 듣다 보니 11시는 되어서 왕궁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10유로였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남자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었다. 어찌나 경쾌하고 행복한 목소리로 노래하던지, 평소에 길에 있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을 반대하는 친척형이 동전을 몇 유로 꺼내더니 갖다 주라고 했다. 내가 싫다고 해서 결국 남자는 동전을 얻지 못했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왕궁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둘러보는 동안에 사진에 정신 팔리지 않고 관람을 즐길 수 있었지만 관람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니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2] 축구장: 민박집 아저씨의 말빨 덕분인지 친척형은 레알 마드리드의 팬은 커녕 해외축구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레알 마드리드 홈 구장(Santiago Bernabéu Stadium)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전철을 타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 역으로 가서 경기장을 빙빙 돌며 입장권 사는 곳을 찾았다. 입장료는 25유로로 꽤 비쌌다.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친척형 혼자 구장 투어를 하고 왔다. 투어가 끝난 후 형은 일단 가이드의 설명을 못 알아들어서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구장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해서 더 빨리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싱거운 축구장 관광이 끝나고 프라도 미술관 쪽으로 향한다.

[3] 미술관: 어제도 프라도 미술관(Prado Museum) 옆을 지나갔는데 줄서있는 사람이 무지 많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무료입장인데다가 아무래도 지금 마드리드에는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것 같다. 그래서 친척형이 제안하는 대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돈을 내고 입장하기로 했다. 입장료는 15유로였다. 미술관에는 맘에 드는 그림이 정말 많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과 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와 요하임 파티니르(Joachim Patinir)의 환상 풍경화들(Landscape with St Jerome, Landscape with Charon Crossing the StyxThe Temptations of Saint Anthony the Abbot,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과 후안 산체스 코탄(Juan Sánchez Cotán)의 정물화(Still Life with Game, Vegetables and Fruit)가 인상적이었고 그밖에도 대단한 그림들이 많았다.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맘에 드는 작품이 있을 때는 화가와 작품명을 핸드폰에 메모해 두었다. 어짜피 작품명과 화가만 알면 박물관 홈페이지나 인터넷 검색으로 고품질 원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 대신 수첩과 펜을 챙겨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런 귀중한 작품들을 하루에 두시간씩 무료로 개방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마드리드 왕궁 앞

마드리드 왕궁에 입장 중 - 이 이후로는 사진 촬영 금지

레알 마드리드 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Estadio Santiago Bernabéu)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작품의 왼쪽부분인 천국(에덴 동산) 부분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중간 부분으로 자유롭게 쾌락을 즐기는 인간들이 그려져 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신비한 세상을 즐기는 인간들.

그림의 오른쪽 부분으로 지옥이 묘사되어 있다.


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

해골로 묘사된 죽음이 인간들을 처형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에 맞서고, 어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가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바로 뒤에서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놀이에 빠져 있다. 죽음은 아무 죄책감 없이 잠자리의 날개를 찢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사람들을 희롱한다.

죽음의 군대

죽음의 일방적이고 완전한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