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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스페인

스페인 톨레도: 전망대, 케이크, 성당, 교회, 수도원 (여행 165일째)

예수회 교회[Iglesia de los Jesuitas (San Ildefonso)]에서 본 톨레도 풍경

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스페인 마드리드 & 톨레도(Toledo)

[1] 민박집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에 짐을 실었다. 작별하면서 민박집 아저씨가 가족이나 친구들 선물로 주라며 꿀국화차(manzanilla con miel) 티백을 두 상자 주셨다. 가격은 1유로 정도로 싸고 무게도 가벼운데다가 스페인 특산품 느낌이 나기 때문에 선물하기 정말 괜찮은 물건이었다.

[2] 어제 저녁에 내가 버럭!한 이후로 친척형은 삐져서 나에게 말을 안하고 있었다. 다툼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행가방의 차이: 나는 10kg짜리 배낭 하나를 가지고 6개월째 여행을 하고 있었고, 친척형은 한달 여행을 위해 20kg짜리 캐리어 두 개와 10kg짜리 아이스박스 하나를 가지고 왔다. 여행가방의 무게는 그 사람이 물질적으로 들고 다니는 짐의 무게 뿐만 아니라 정신적 들고 다니는 짐의 무게 또한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 저것 바라는게 많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는 친척형의 여행가방만 들어준 것이 아니라 각종 요구사항(한국쌀로 지은 밥을 먹고 싶다, 해산물 요리를 먹고 싶다, 스타벅스 머그컵을 사고 싶다 등)도 들어줘야 했고 짜증이 누적되어 있었다.

오만과 편견: 여행능력(언어+길찾기)이 좀 더 나은 내가 일반적인 사무처리(음식주문, 숙소예약, 계산, 후기 등)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보니 친척형이 사소한 일도 모두 나에게 의존하게 되었다(포크 좀 달라고해, 콜라 좀 달라고 해, 이 음식은 뭐야, 화장실 어디냐고 물어봐 등). 이게 반복되면서 나는 자신이 노예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한편, 친척형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은근히 무시하며 오만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버럭!: 위와 같은 맥락에서도 친척형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아이슬란드행 비행기를 탈 때 짐이 너무 많으니 네 가방의 짐을 빼서 음식과 함께 아이스박스에 넣고, 아이스박스를 기내수화물로 들고 타라"는 말을 듣자, 내 영역(가방)까지 침범당한다는 생각에 격렬하게 반응했다(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개들도 비슷하게 반응한다). 웃으며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인데 그날의 인내력은 다 소모해 버렸는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친척형 입장에서는 말 잘 듣던 애가 갑자기 신경질을 내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3] 이런 상황에서 톨레도로 갔다. 가기 전에 차에 한나와 지훈이를 태웠다. 한나는 이틀 전에 같이 밥을 먹었던 아이고 지훈이는 한나가 숙소에서 만난 제주도 아이였다. 한나는 어떻게 혼자 여행할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맹맹-하면서도 어린 학생답게 발랄하고 귀여웠고, 지훈이는 또이또이하고 시원시원해서 어디에 내놔도 걱정이 안 되는 스타일이었다. 두 아이들 덕분에 재미도 있었고 나와 형 사이의 어색한 침묵도 눈에 띄지 않았다.

[4] 톨레도. 여기도 지나간 모든 아름다웠던 도시들처럼 참 아름다웠다. 그러면서도 톨레도 만의 빛깔(갈색과 베이지색)을 띄고 있었다. 도시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였다. 도시로 통하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남쪽 언덕의 전망대(Mirador del Valle)에 올라가 톨레도를 1차 예습했다. 다음으로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호텔(Parador de Toledo)에 올라가 커피를 시켜 마시고 호텔 전망대에서 톨레도를 2차 예습했다. 호텔 카페에는 다른 한국인 무리도 있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같이 택시를 잡아 타고 올라온 것 같았다. 예습을 모두 마친 후에는 언덕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 중세에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듯한 갈색도시에 입성했다.

[5] 알카사르(Alcázar de Toledo) 근처에 있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 톨레도 대성당(Santa Iglesia Catedral Primada de Toledo)으로 향했다. 다양한 각도로 뻗고 뒤틀어진 골목길은 방향감각을 잃기 딱 좋았다. 톨레도 대성당은 입장료가 비싸서(10유로?) 겉에서만 보고, 대신 민박집 아저씨가 추천한 예수회 교회[Iglesia de los Jesuitas (San Ildefonso)]를 찾아갔다. 손에 지도와 GPS가 켜진 핸드폰을 들고도 길을 헤맸다. 예수회 교회도 입장료가 있었지만 훨씬 저렴했고(2.5유로?) 2층 종탑에 올라가서 구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6] 만만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은 후에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는 산토 토메 성당(Iglesia de Santo Tomé)에 들렀다. 유명하다는 그림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이라는 그림인데 많은 관광객들이 그림을 보고 있었고, 관광객들을 인솔하는 가이드들이 각각의 언어로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천상과 지상에 대한 설명, 그림 속에 등장하는 화가와 화가의 아들, 톨레도의 시민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림을 보고 나와서 도시 서쪽에 있는 수도원(Monasterio de San Juan de los Reyes)까지 갔다가 다시 꼬불꼬불 골목길과 사람들이 붐비는 대성당 옆을 지나 알카사르 앞 전망대로 돌아왔다. 며칠 혹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돌아다녀도 심심할 것 같지 않은 예쁜 도시였다.

[7] 한나가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서 톨레도를 한참 빙빙 돌았으나, 돈키호테 기념품을 파는 가게만 잔뜩 보이고 케이크를 파는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인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찾기가 힘들었다. 마드리드로 돌아와 한참을 더 돌아다닌 후에야 케이크 파는 곳을 찾았다. 당근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커피와 코코아 등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알고 보니 한나는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친척형이 내 생일이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한나에게 케이크 먹고 싶어하는 연기를 시킨거였다. 생각없이 있다가 감사를 한 방 먹었다. 아침부터 나에게 말 한마디 안하면서도 생일을 챙겨주는 형, 연기까지 해 가며 케이크 가게로 끌고 온 한나, 아무런 눈치도 못채고 따라다니며 말상대를 해 준 지훈이 모두 너무 고맙고 좋은 사람들이다.

[8] 한나&지훈이와 헤어지고 친척형과 둘만 남아 공항 근처의 호텔로 가는 길에 형한테 죄송하다고 했다. 이유가 뭐든 내가 그런식으로 짜증낸 건 실수였다. 이렇게 죄송하다고 한마디 하는 것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중고등학생때 친구와 싸운 후 먼저 사과할 때나 처음 히치하이킹을 시작할 때처럼 두근거렸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는 강한 내면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아무것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었다. 형은 무덤덤하게 반응했지만 어제부터 이어지던 불편한 침묵은 사라졌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렌트카를 반납하러 공항에 갔다가, 택시를 타고 돌아와 호텔에서 짧은 잠을 자고, 새벽에 다시 공항으로 갔다. 어제 저녁 버럭!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추가화물은 항공사 직원이 무료로 처리해줬다. 결국 쓸데없는 걱정으로 두 사람 사이에 감정만 소모한 꼴이 되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에 아이슬란드 행 비행기에 탔다. 


늠름한 톨레도의 자태

전망대에서 톨레도 예습 중

좁은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톨레도 대성당의 종탑

각종 기념품을 파는 공방/예술품점/기념품점

꿀(miel), 와인(vino), 식용유(aceite), 빵(pan), 치즈(queso)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과정이 그려진 엽서.

올리브 열매를 따서 기름을 짜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톨레도 대성당. 좁은 골목길을 마주하고 있어서 사진 찍기가 어렵다.

회전목마

예수회 교회에서 본 톨레도

도시 전체가 예뻐서인지 크레인도 별 위화감을 주지 못한다.

성당에 있던 사진. 인간의 삶은 성스럽다(La vida humana es sagrada).

Monasterio de San Juan de los Reyes

Mirador Del Azor

식당에 근사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