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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모로코

모로코 아가디르: 해산물 식당가, 새들의 계곡, 동물시장, 카스바 (여행 178일째)

아가디르 가축시장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모로코 아가디르(Agadir, أگادير)

[1] 해산물: 오늘은 쌍둥이 자매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오전에는 혼자 걸어 다녔다. 사람들이 파도 타는 모습을 보며 해변을 따라 걷다가, 관람차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후에는 큰 도로를 따라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자동차, 자전거, 공사중인 건물, 공사가 끝난 건물 등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 북쪽 언덕 방향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항구가 나왔다. 별 목적없이 왔지만 구경해보고 싶어서 주위를 얼쩡거리는데, 어떤 모로코 아저씨가 말을 건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부터 시작해서 친밀감을 쌓은 아저씨는 항구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나를 어시장으로 데리고 갔다. 어시장을 구경하는건 언제나 흥미롭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통에 담겨서 거래되고 있는 모습. 시장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고, 한가한 시간이었는지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아저씨는 내가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도 모르고 각종 생선과 갑각류를 가리키며 엄지를 세운다. 내가 괜찮다고 하자 이번에는 해산물 식당가로 데리고 간다. 식당가는 알록달록 간판이 예뻤지만 영업 시간이 아닌지 음식을 먹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해산물을 싫어한다(보는 것만 좋아함). 그래서 아저씨는 나를 어느 가게로도 삐끼칠 수 없었다. 삐끼질이 실패하자 아저씨는 투어를 시켜준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하셨다. 가계부에 아무 기록이 없는걸 보면 돈을 드린 것 같지는 않다. '돈을 쓰지 않으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약간 씁쓸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해변의 유성우

옷가지를 한군데에 모아 놓고 축구하러 간 사람들

조개껍질 모으기

'아가디르의 런던아이'라는 관람차

해산물 식당가 풍경

파도타기

[2] 새들의 계곡(La vallée des oiseaux)과 미니열차: 오후에 쌍둥이를 만나 새들의 계곡(밸리 오브 더 버즈)으로 갔다. '새들의 계곡'은 아가디르에 있는 작은 동물원의 이름이다. 우선 동물원 입구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를 타고 아가디르를 한바퀴 돌았다. 두 사람은 하나라도 더 구경시켜주려고 애를 쓰는데, 내가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반응하자 "옛날에는 그렇게 말이 많더니, 뭐 이렇게 조용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냐"며 갈구기 시작했다. 반면 나는 두 사람이 떠들어 주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게 너무 좋았다. 예를 들어, "미니열차를 탈 때는 모로코 공주처럼 우아하게 바깥의 서민들에게 손을 들어줘야 한다"면서 느릿느릿 손을 흔드는데, 너무 웃겼다. 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기들 건물을 사용하면서 돈이 없다고 임대료를 1년째 안 내고 있는 '미스터 아바장고'가, 변호사를 고용해 자기들에게 소송을 걸었다며, 그 망할새끼 때문에 미치겠다고 욕을 하는데, 그것도 너무 웃겼다. 

짧은 열차 관광이 끝나고 새들의 계곡에 입장했다. 동물원은 무료화 된 이후로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새들과 동물들은 더럽고 열악한 환경에 무기력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꽤 우울한 풍경이었다. 앵무새, 홍학, 공작, 염소, 캥거루 등의 구속된 생물들과 바깥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나 참새같은 자유로운 생물들. 그 우울함과 느긋함은 눈으로도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동물원 자체는 별 볼일 없었지만, 좋은 친구들과의 추억 때문인지 '새들의 계곡'이라는 이름에는 아직까지 좋은 느낌이 남아있다.)

[3] 식사시간: 점심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감자말이(랩, wrap)와 밀크쉐이크를 사서 해변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키가 큰 걸인이 와서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돈을 주지 않자 걸인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빌라와 살리마의 통역을 들어보니, "너희들은 식당에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왜 나는 안주냐"는 말이었다. 혼자 피자를 먹던 부인이 뭐라고 식당 직원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다. "내가 돈을 낼테니 저 사람에게 음식을 주라"는 말이었다. 화를 내던 키 큰 걸인은 부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우리처럼 야외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렸다. 나빌라와 살리마는 걸인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났다. "무슬림은 모두 가난한 사람을 도울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저렇게 뻔뻔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어. 이건 정말 나쁜 태도야." 두 사람이 말했다.

음식을 가지고 바닷가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랩에서 소스가 흘러나와 좀 지저분하게 먹어야 했지만 맛있었다. 지나가던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자, 한국인이었냐고(중국인인줄 알았다고) 놀라시며 반가워하신다. 다같이 하하호호 짧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새들의 계곡의 염소

La Vallee Des Oiseaux

[4] 동물시장: 다음에는 시장 구경을 했다. 시장(수크, Souk El Had, سوق الاحد)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개 있었고, 입구마다 숫자가 적혀 있었다. 쇼핑에 책정된 예산이 없으니 시장에 들어갈 때에는 별 열정이 없었지만, 두 사람에게 여러가지 전통의상, 물품, 풍습들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니 시장의 잡동사니들도 신기해 보였다. 모로코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며 재미있게 구경했다.

시장 한 구석에는 정말 흥미로운 구역이 있었으니, 바로 동물시장이었다. 이곳에서는 도축되어 빨갛게 가죽이 벗겨진 고깃덩어리들이 아닌 살아있는 동물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철장이나 포대자루에는 주로 닭이 들어 있었고, 토끼, 칠면조 등도 보였다. 아까 갔던 동물원(새들의 계곡)에 우울증에 빠진 현대인 같은 동물들이 있었다면, 여기에는 팔다리가 묶이고 사슬에 매인 전쟁포로 같은 동물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고기 손질을 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5] 카스바 (성새[城塞], Agadir Oufella, أگادير أوفلا): 마지막으로 간 곳은 언덕 위의 성채 유적지. 이 카스바가 있는 언덕에는 신, 국가, 국왕(الله الوطن الملك [Allah, al-watan, al-malik])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밤에는 글자에 불도 들어 온다.

الله الوطن الملك (Allah, al-watan, al-malik)

나빌라와 살리마 말로는, 이 언덕은 불량학생들의 아지트라고 한다. 두 사람도 어렸을 때 종종 올라왔다고 한다. 언덕 위에서는 햇살을 맞으며 아름다운 도시 풍경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사진찍기용 낙타도 몇 마리 보였다. 

성채(카스바)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폐허만 남아 있어서 그리 볼만한 것은 없었다. 1960년 아가디르에서 12000명 이상(당시 아가디르 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진도 5.8의 지진이 있었는데, 그 당시 카스바도 큰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 지진으로 인해 아가디르는 처음부터 다시 세워져야 했다고 한다. 쌍둥이들은 유적지를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이런 역사적인 장소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언덕 위의 매점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백색의 아가디르. 도시 정책에 따라 흰색으로만 건물을 칠할 수 있다고 했던가?

사진찍기용 낙타가 쉬고 있다.

폐허

예쁜 쌍둥이 엄마와 기념사진

[6] 작별시간: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밤버스를 타러 버스터미널로 갔다. 쌍둥이가 사람들에게 타구니트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냐고 물어봐 주었다. 두 사람은 '타구니트'라는 곳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압둘가나'라는 남자를 만났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데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쌍둥이가 압둘가나에게 나를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하하... 이 친구가 스무살이고, 쌍둥이 자매가 서른살이라니, 나이가 뒤바뀐 것 같다. 압둘가나 덕분에 두 사람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엔 경계했는데 좋은 친구같다. 아가디르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압둘가나는, 이제 방학인데다가 곧 누나 결혼식이 있어서 고향 마을로 돌아간다고 했다. 시간이 되면 자기 마을에도 꼭 놀러오라고 했다. 

아가디르에서의 행복한, 엄마 품속과 같은 시간을 마치고, 아기가 젖을 떼듯, 병아리가 어미닭의 품을 떠나듯, 쌍둥이 엄마 품을 벗어나 타구니트 행 버스에 오른다. 꿈만 같은 시간이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린다. 마치 면접장에 들어가는 듯한 떨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무서운 걸까 아님 새로운 만남이 두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