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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모로코

모로코 헬프엑스: 타구니트, 사막의 집, 여행자들, 베르베르인 (여행 179일째)

(배경음악: Morocco Berber Music)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모로코 타구니트(Tagounite, تاكونيت) 부근

[1] 타구니트: 새벽은 계속해 아침을 향해 달리고, 7시 15분쯤, 해는 떠올랐지만 아직 공기가 으스스할 무렵, 버스는 목적지인 타구니트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곳이 최종 목적지여서 승객이 모두 내린 후 버스는 시동이 꺼졌다. 도착한 곳에는 버스터미널은 커녕 정류장 비슷한 것도 없어서, 버스에서 내리자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한 가게 앞의 벤치에 잠시 앉아서 기다렸는데, 곧 가게가 문을 열 시간이 되어 비켜줘야 했다. 공기가 차가웠다. 마을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쓰레기를 태우며 그 옆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쓰레기는 대부분 종이나 비닐봉지 종류여서 활활 타올랐지만, 계속 쓰레기를 넣지 않으면 금방 사그라들었다. 나도 불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쓰레기의 온기를 쬐었다.

헬프엑스(helpx) 호스트인 "무하마드"에게 전화를 몇 번 걸어도 1시간 뒤, 30분 뒤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올 생각을 않는다. 기다리다 보니 2시간, 3시간이 지났다.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더 좋은 호스트가 탐나기도 해서 어디 다른 곳에 연락을 해볼까 하는 갈등도 생겼다. (이 마을에서 누가 헬프엑스를 유행시켰는지, 주변에 호스트가 상당히 많았다.) 맘 좋은 가게 점원에게 전화기를 빌려 나빌라살리마에게 "무하마드"가 안온다고 고자질을 했다. 두 사람이 대신 전화해주겠다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버스를 타고 아가디르로 오라고 안심시켜줬다. 오갈데 없는 신세. 약간 버려진 듯한 기분과 함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 세상에 날 필요로 하는 곳은 없구나! 몇 번의 통화가 오고간 끝에 "무하마드"가 이번에는 진짜로 온다고 했다. 마침내 파란 옷에 파란 터번을 두른 남자가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 나를 찾았다. 남자의 이름은 유나스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헬프엑스에 호스트로 프로필이 올라와 있는 "무하마드"는 영어를 못해 계정을 사촌(?)인 유나스에게 맡겼고, 나와 지금까지 연락하던 사람은 유나스였다. 그리고 유나스는 "무하마드"에게 나의 존재조차 알리지 않았다! 그럼 유나스는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갔을까?

타구니트의 건물

타구니트의 길바닥

짓다가 만 듯한 건물

[2] 사막의 집과 여행자들: 유나스의 오토바이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래색의 단층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앞에 서양인들 여러 명이 햇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다들 웃는 얼굴로 신참을 맞아 주었다. 자리에 껴서 이런저런걸 물어봤다. 다들 헬프엑스를 통해 이곳에 온 것은 맞는데, 이상하게도 연락한 호스트들의 이름은 서로 달랐다. 헬프엑스를 통해 오는 여행객이 적은 시즌이다보니,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우리를 모두 한 곳에 몰아둔 것으로 추측했다.

서양인 여행자들은 총 7명이 있었는데, 남녀 커플 3쌍과 여자 한 명이었다. 토비아스(Tobias) 커플(사람들에게 매듭공예[마크라메, macrame]로 지갑, 팔찌 등을 만드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음), (Will) 커플(캐나다인, 반지의 제왕을 읽고 있었음), 안토니(Anthony) 커플(히치하이킹, 히피느낌 커플)은 여기서 1-2주일 정도 지냈고, 소피라는 여자는 여기서 9개월 동안 지냈다고 한다.

[3] 구덩이(holes): 토비아스 커플은 곧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고, 윌 커플, 안토니 커플과 함께 작업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3시간(보통 오전) 땅 파는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자유롭게 쉰다. 그리고 음식값으로 하루에 5유로 정도를 낸다. 호스트는 작업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따라가서 일을 배웠다. 곡괭이, 삽 등의 연장으로 땅을 파는 일이다. 대추야자 나무 주위로 선이 그어져 있는데 그 선을 따라서 땅을 깊이 파면 된다. 이곳에 수도관을 설치할거라고 한다. 

땅을 파는 노가다인데 여자들도 빼지 않고 무척 열심히 한다. "첫날에는 너무 무리해서 다음날 몸을 못 움직였어.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여자 한 명이 조언을 해준다. 한 명이 곡괭이로 땅을 부수면 다른 한 명이 삽질로 흙을 퍼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하늘은 새파랗고, 땅에서는 모래먼지가 올라온다. "홀즈(Holes, Louis Sachar)"라는 구덩이 파는 아이들에 관한 소설이 떠올랐다. 하지만 소설과는 다르게 작업을 감독하는 사람도 없었고 구덩이 할당량도 없었다. 다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열심히 일하고 편하게 쉬었다. 호스트들은 작업하는 것을 확인하러 오지도 않았고, 우리끼리 자율적으로 일을 했다. 심지어,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을 모아 밥값을 받고, 사막투어를 시키려고 노동력이 필요한 것처럼 꾸며 놓은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면 지루하고 괴롭다. 

일이 끝난 후에는 작업장 창고 옆의 물탱크에 올라가 사방으로 뻗은 광야를 감상했다. 고요하고, 광활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점심시간에는 한 상에 둘러앉아 숫가락을 하나씩 들고, 그릇 하나에 수북히 담긴 밥을 함께 퍼먹었다. 얼룩말 시체에 달라붙은 하이에나들처럼 니꺼 내꺼 구분 없이 사이좋게 먹었다. 다들 맛있어한다. 좋은 사람들이군. 같이 작업을 했던 윌 커플과 안토니 커플은 오늘 사막투어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나에게도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나중에 두 커플을 태우러 온 차를 보니, 너무 작아서 내가 간다고 했어도 자리가 없었을 것 같았다.

사막투어하는 두 커플이 떠난 후에는 좀 쉬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에는 닭 네마리, 토끼 한마리, 당나귀 한마리가 있었다. 

외로운 검정 토끼 한마리

모포를 털어서 햇볕에 말리고 있다

귤껍질과 닭들. 수탉은 늙어서 걸음걸이가 우스꽝스러운데도 아직까지 허세를 부린다고 무하메드가 말했다.

안뜰. 바람을 피하면서도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사막투어를 하는 두 커플을 태우러 온 자동차

차가 좀 작다

사막 식물

[3] 사막 민족 베르베르(Berbers): 이곳의 주인(호스트)은 아흐메드라는 키가 크고 잘생긴 베르베르족 남자인데, 항상 묵묵해서 나와는 거의 대화를 안했지만,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 모바일 핫스팟을 열어 인터넷 빌려줬다. 나를 이곳에 태워다 준 파란 옷의 유나스는 훤칠하게 생겼지만 빠진 앞이빨이 금으로 떼워져 있고 목소리가 얇아서인지 약간 어리벙벙한 느낌이 들었다. 유나스는 나를 데려다 주고는 사라져 버려서, 나중에 마을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말고는 볼 기회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가장 친했던 무하메드가 있다. 무하메드는 35살인데 보기에는 더 나이들어 보이고 조용하면서도 밝고 묵직하다. 이빨은 뿌리가 다 까맣게 변했고(설탕이 들어간 차를 많이 마셔서 그런듯) 결혼하기엔 너무 늦었다지만 여전히 결혼하고 싶어한다. 영어도 잘하고 대학도 졸업했고 박식한데 조그만 사막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걸 보면 인생은 정말 알쏭달쏭. 어쩌면 내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베르베르족 (출처: 위키피디아)

[4] 이야기 시간: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는 것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 이야기. 이곳은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여기서 오랫동안 지낸 소피는 비가 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마을은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소란스러워진다고 한다. 아이도 어른도 바깥으로 나와서 비를 맞으며 소리지르고 웃음을 터뜨린다고. 물을 잘 관리해야 대추야자든 뭐든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물 때문에 싸우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전갈 이야기. 소피가 전갈에 물려서 아흐메드가 오토바이에 태워 마을까지 가서 치료를 위해 더 큰 도시로 보냈던 일. 소피는 그날 자기가 죽을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식민지배 이야기,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무슬림들의 신실한 신앙심은 정말 놀랍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기독교에 대한 의구심과 반발심을 가져온 나의 경험과는 대조적으로, 무하메드나 아가디르의 쌍둥이 자매 등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굳건하고 진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다. 한국 사람들(마라케시에서 만난 한손 남자, 세계일주 중이고 현재 모로코에 있는 대학선배 부부)에게 정보를 전달했으나 오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날 저녁. 어마어마한 월출을 봤다. '밝은 달'보다는 '어두운 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