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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알마티: 호수 탐험 (여행 32일째)

2016년 8월 19일 알마티 - 빅알마티 호수


[등장인물]

아스카(Askar): 알마티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1. 카자흐스탄 친구가 보내준 신비로운 자연 사진들. 하지만 알마티에서 가려면 여행사를 통하는 수밖에 없다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빅 알마티 호(Big Almaty Lake)에 대중교통과 걷기로 다녀온 사람의 글을 읽었다. 그걸 알게된 이상, 저항할 수 없다. 가방에는 물, 커다란 빵, 해바라기씨, 팔토시와 복면, 모자, 안경, 과자 등을 챙겨 넣고, 아스카네 집에서 알마티 남쪽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2GIS 앱덕분에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이 너무 쉬워졌다). 첫번째 대통령의 공원(First President's Park) 근처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는데, 이미 남쪽으로 병풍처럼 들어선 톈산산맥(天山山脉)이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이 산맥 덕분에 알마티에서는 방향 찾기가 쉽다). 인터넷에서 읽었을 때는 빅알마티 호수 쪽으로 가는 버스가 1시간에 한 대 있다는데, 이미 이삼십명은 되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온다. 


2. 종점에서 내리니, 두근거리는 모험이 시작된다. 히치하이킹을 할까 생각도 했는데, 일단 걷는 무리가 보이니 따라 걷는다. 게다가 그토록 바라던 풍경과 만년설로 덮인 산꼭대기가 보이자 걷는 것도 그저 즐겁다. 계곡물은 우윳빛이면서도 청명하고, 들꽃과 햇빛, 소나무와 풀이 돋아난 산에 넋을 잃고 여기 저기 사진을 찍는다. 빅알마티 호수까지는 약 15km로 왕복하기에는 꽤나 먼 거리. 얼마나 걸어야 될지 알 수 없어 약간 두렵지만 아스카네 집에서 일찍 출발한 덕에 시간이 넉넉하다는 생각으로 일단 전진한다.


똑같은 풍경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지만 아무래도 사진 찍는 것을 멈추기 힘들다. 걷던 사람들은 금새 개울가에 자리를 찾아 들어가 버렸고,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냇가에서 고기를 굽고, 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고 있다. 나는 계속 걷는다. 자전거를 타고 옆을 스쳐 올라 갔다가, 쌩-하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계속 걷는다. 생각보다 경사도 없고, 걷는 속도가 괜찮아 안심하고 걷다 보니 저 멀리 수도 파이프가 보인다. 이 파이프는 빅알마티 호수에서 알마티 시로 식수를 공급하는 파이프로, 이 파이프만 따라가면 빅알마티 호수에 도착할 수 있다. 파이프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도로가 자동차를 위해 지그재그로 나 있어, 걸어가자면 한참이 걸릴 것 같다. 


'흠... 저렇게 돌아가면 몇 시간은 더 걸릴 것 같고, 이족보행의 장점을 살려 산길을 가로질러 보자.' 이런 멍청하고 위험한 생각이 떠오른다.


우윳빛 물이 흐르는 개울가로 내려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나무 다리를 건너고,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지름길을 찾아 산을 기어 올라간다. 바위와 나무 뿌리와 눈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잡고, 네 발로 기어 올라간다. 


'저 언덕만 넘으면 아스팔트 길이 뻗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환상에 빠져 있다.


사람이 다녀서 생긴 길인지, 그냥 풀이 나지 않은 땅인지 헷갈리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길이 없다. 구글맵을 보고, 길에 가까운 방향을 잡아 보니, 경사가 70도는 되어보이는 산비탈이 떡하니 막고 있다. 하릴없이 네 발을 써 기어 올라가지만 일단 올라가면 내려오는게 불가능한 각도다. 엉금엉금 1미터씩 기어 올라가다 보니 이동 속도도 현저하게 느려져서 추세로 가다가는 영영 길을 못 만나거나 여기 어딘가에 갇혀 버릴 것 같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막연한 믿음과 '그딴게 어딨어'라는 두려움 속에 비탈을 사족보행하다보니, 희미한 길이 나왔다가, 없어졌다가, 사방이 막힌듯 하다가, 사람의 흔적(담배꽁초, 쓰레기)이 보였다가, 다시 아무것도 없다. 마침내 찻길을 만났을 때는 배를 만난 표류자처럼 반가워 한다.


3. 길을 좀 따라 올라가니 거대한 수도 파이프를 만난다. 그 옆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니, 파이프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 보여, 나도 위로 올라간다. 뒤쳐져 걷던 여자분이 인사를 하고, 앞에서 걷던 남자분도 인사를 건넨다. 파이프 위를 따라 걸으니 훨신 걷기 쉽지만, 꽤나 먼 길이다. 이빨로 해바라기씨를 까, 껍질을 뱉어 내고 씨앗을 씹으며, 굴다리 밑을 지나치고, 한참을 걸어 호수 진입로에 도달한다. 그리고 알라스(alas)! 에헤라! 어허야!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아무래도 차들이 다니는 다른 길이 있거나, 인터넷 어딘가에서 읽은 대로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나 보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전혀 없다. 솔직히 여정이 단축되어 즐거운 마음도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이미 세시간 반째 보고 있다. 무얼 더 바라랴.


파이프를 따라 내려오다 보니, 아까 올라온 찻길 말고 파이프를 따라 계속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것도 쭉 뻗은 직선 길이! 이끼와 나무뿌리를 밟고 험난하게 올라온 것과는 달리 매우 쉽게 내려간다. 그 후부터는 완만한 내리막이어서 다시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하늘, 물, 나무, 산 구경을 한다. 아직도 모여 앉아 소풍을 즐기는 가족들아, 먼저 내려 가겠소! 



앞으로의 여정을 알지 못한채 그저 행복하게 걷기 시작한다


알마티의 옛이름은 '알마-아타(Alma-Ata)'인데, 카자흐어로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사과가 유래했다는 연구가 있다(관련기사).


지름길을 찾기 위해 개울을 건넌다


돌아올 수 없는 개울을 건넜다


한참 산속을 헤매다 발견한 쓰레기 더미. 드디어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담배꽁초 하나를 보는 것도 반가웠다


파이프 위를 걷는 것은 훨씬 쉬웠다. 저 끝에 따라 올라오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에메랄드빛과 우윳빛이 뒤섞인 물빛


여기서 조금만 더 길을 따라가면 빅알마티 호수가 나오는데, 군사지역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거의 다 왔는데 아쉽지만 돌아가야지




지루하지 않은 내려오는 길


누군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쭉 따라 올라가시면 됩니다" 이런 뜻일까.


사람이 보이면 너무 반갑다. 산을 내려오던 모녀.


아름다운 풍경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경사가 심한 곳에는 이렇게 계단도 나 있다. 올라갈 때도 이 길을 알았더라면 훨씬 쉬웠겠지.


반지원정대가 걷는 모습이 떠오르는 능선


독수리가 저 하늘 높이 떠있다. 어제 아스카가 준 독수리 고기가 생각나는군.


8월의 한여름이지만 산꼭대기에는 눈이 쌓여 있다.


마침내 다시 돌아온 알마티 시내 풍경


카라반(караван)이라고 적혀 있는 길거리의 조그만 담배가게.



과일이 1킬로당 200-300텡게(700-1000원) 정도로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