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분수쇼, 티파티 (여행 34일째)

2016년 8월 21일 아스타나

 

[등장인물]

알리: 아스타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본명은 다우렌(Dauren). 

바키: 알리의 친구.

아잣: 알리의 친구. 아이누라의 남자친구.

아이누라: 알리의 친구. 아잣의 여자친구.

아얀: 리투아니아에서 공부 중인 학생. 방학동안 아스타나로 돌아와 노래와 춤 공연을 한다.

 

1. 어떻게 하루가 이렇게 길고 꿈같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신비로운 꿈이다. 알리(다우렌)의 어머니 집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다가, 알리가 아스타나 투어를 시켜준다. 이심 강(Ishim River)의 북쪽에서 시작해 다리를 건너니, 놀이기구가 돌아가고 많은 가족들이 소풍 나와있는 아스타나 공원(Astana Park)이 나온다. 거리의 악사가 러시아 민요 카츄사(Katyusha, Катюша)를 연주하고 있다. 대학교 응원가로도 개사되어 사용되는 곡이어서 음이 귀에 익다. 

 

"소비에트 시절의 맛이 어떤지 알고 싶어?" 알리가 묻더니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노인에게로 가서 두 개를 산다. 입에서 하얗게 녹는 달콤한 우유 아이스크림이다. 알리의 말투에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이 남아있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도 소비에트 정부에게 받은 거야.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때가 훨씬 좋았다고 해."

 

공원을 통과해 커다란 카자흐스탄 국기가 걸린 광장(Мемлекеттік рәміздер алаңы)에 도착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서커스장, 파란색 돔의 건물, 노란색의 아스타나 타워 건물이 보인다. 동쪽으로 다리를 건너서 강을 따라 돌아온다. 이심 강 한켠에는 음악 분수쇼를 위한 동그란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도시 곳곳에서 2017년 아스타나 엑스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2. 늦은 오후에는 알리의 친구 바키를 만나러 나간다. 바키의 아버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척들이 비디오 메시지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알리의 직업이 영상 촬영 및 편집이어서 알리에게 부탁을 했단다. 장소를 여기 저기로 옮겨다니며 열 다섯명 정도 되는 가족들 하나하나의 메시지를 녹화하고, 단체로 촬영한다. 촬영하는 것을 따라다니면서, 가끔 바키나 바키의 동생이 서툰 영어로 질문을 해오면 대답해 준다.

 

"랩 좋아해?" 바키의 동생이 묻는다.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좋다고 하자 누구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이거 곤란하군... 대답을 못하고 있자, "투팍(2pac)? 에미넴(Eminem)?" 이렇게 물으며 모범 답안을 알려준다. 거의 15년 전에 들었던 에미넴의 노래를 떠올리며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에미넴이 좋다며 즉석에서 랩을 보여준다. 하하 재밌는 친구들이다. 어두워지는 거리를 걸으며 카자흐스탄 청년들과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니 참 재미있다.

 

3. 어두워지고 나서는 오후에 갔던 이심 강변에 다시 가서 분수쇼를 본다. 쇼가 한 번 끝날 무렵 도착해, 자리를 잡고 다음 쇼를 기다리는데, 왠 아리따운 카자흐 여자가 옆 자리에 와서 앉는다. 그러다가 나와 다우렌이 대화하는 것을 조금 듣더니,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다.

 

"너 한국인이었어? 카자흐 사람인줄 알았어."

 

분수쇼가 시작되자 말 타는 영상의 의미나 카자흐스탄 전통 악기가 나오는 부분을 알려준다. 또 한국에 대한 무한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이런 저런걸 물어 온다. 너무 친근한 데다가 너무 미인이고 우리 자리 옆에 우연히 앉은 것까지 어쩐지 수상해서, '오호라, 알리가 친구를 불러서 장난을 치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알리도 조금 놀란 상태였다. 이 친구의 이름은 아얀. 이 근처에서 공연을 막 마치고 분수쇼를 보러 왔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카자흐인이고, 여름마다 아스타나로 온다고 한다. 알리의 제안으로 같이 피자집에 간다.

 

피자집에서는 피자와 콜라가 아닌 피자와 차를 마시는 신기한 문화를 처음 접한다. 차에는 보통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고, 절대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밤늦게 만나면 맥주를 한 잔만 마시고 끝나지 않듯이, 홍차를 한 잔, 두 잔, 세 잔... 계속 시켜 마신다. 

 

알리의 친구 두 명이 피자집에 왔다. 아잣이라는 친구는 쉴 새 없이 이런 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반면, 아잣의 여자친구 아이누라(달빛이라는 뜻)는 조용히 앉아 있다. 아잣이 "이름"의 중요성이나 애니미즘, 토테미즘과 같은 카자흐 전통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4.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알리가 좋아하는 케밥집에 들른다. 케밥집에는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 한 분이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 알리가 나를 소개시켜 준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신기하게 생각하는 아저씨. 그러다가 나이 이야기가 나와서 나이를 맞춰보라길래 예의상 조금 젊게 30살로 불러줬다. 그런데 이 아저씨 24살이란다! 아저씨가 아니라 동생이다. 아... 정말 찡하고 죄책감마저 든다. 벌써부터 삶에 찌들어 폭삭 나이들어 버린 소년. 자기가 주인이었다면 돈을 안 받았을 거지만 그저 일하는 직원이라서 미안하다고 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년. 케밥은 맛있었지만 많이 먹어서 약간 속이 거북하기도 하다. 다우렌의 집으로 돌아와 함께 물담배를 피우며 음악을 듣는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그저 이 흐름에 따라 춤을 추듯 흘러가자.

 

 

길가에 쓸쓸히 죽어 있는 비둘기

 

이심 강변의 건물

 

아스타나 공원 쪽으로 이심 강을 건너는 다리

 

아스타나 공원

 

광장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파란 돔의 건물(예식장과 파티용으로 쓰이는 듯 하다)과 노란 색의 아스타나 타워

 

카자흐 칸국(Kazakh Khanate)의 마지막 칸(Khan), 케네사리 칸(Kenesary Khan)

 

저녁에 이곳에서 분수쇼를 볼 수 있다.

 

알리 어머니 집의 고양이

 

 

알리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아파트. 소비에트 시절부터 이곳에서 사셨다고 한다.

 

 

이심 강변에서 아스타나의 야경

 

분수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