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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알마티 - 아스타나: 광활한 초원 (여행 33-34일째)

2016년 8월 20일 알마티 - 아스타나행 버스


[등장인물]

아스카: 알마티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알리: 아스타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본명은 다우렌(Dauren).


1. 알마티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아스타나행 버스는 오후 2시여서 시간이 좀 있기에 젠코프 성당(Zenkov's Cathedral,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은 목조 건물)과 판필로프 공원(28공원이라고도 불리는,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의 판필로프 사단의 28인을 기리는 공원)에 다녀온다. 


아스카네 집으로 돌아오니 아스카가 전날 밤 친척 모임에 갔다가 챙겨온 음식을 차려주지만, 고기 음식이 대부분이라 감자만 조금 먹었다. 아스카에게는 육식을 피한다고 말한적 없이, 그동안 아무거나 먹다가 갑자기 고기를 안 먹는다니까 이상하게 생각한다. 주는 대로 먹을걸 그랬다. 하하. 


2. 그동안 너무 잘 챙겨준 아스카와 작별한 후, 사이란(Sairan)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슈퍼마켓에서 빵과 음료수, 과자를 사고, 버스 터미널에서 감자떡같은 빵도 두 개 사서 버스에 오른다. 버스의 온 창문에는 새빨간 선팅이 되어 있어 암실처럼 어두컴컴하다. 그동안의 지루하지 않던 기차, 버스 여행과는 다르게 밖을 구경하는 재미도 없고(옆 아저씨는 그래도 창 밖을 보신다), 책을 읽기에도 너무 어두워 지겹고 힘들다. 다리가 옆 아저씨와 닿고, 엉덩이에서 땀이 난다. 


오후 2시에 출발해서 처음 휴게소에 들른 것이 오후 6시쯤. 화장실이 대단하다. 광활한 스텝(Steppe, 나무가 없는 평야 지대)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오아시스같은 작은 식당과 조잡하게 목재를 이어 붙여 만들어 놓은 화장실. 마치 핵전쟁 후 인류 문명이 파괴된 후의 황량한 세상을 보는듯 하다. 여기서 사람들이 식사하는 동안, 터미널에서 사온 감자떡을 뜯어 먹고 물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암흑 속으로... 꿈속과 현실을 오가며 뻐근한 목과 어깨를 주무르고, 다리를 좌석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며 시간을 흘려 보낸다. 새벽에 군인이 버스에 올라타 신분증 검사를 한다. 옆자리 아저씨가 짤막한 영어로 여권을 꺼내라고 알려준다.


2016년 8월 21일 아스타나


3. 아침이 되고도 버스는 몇 시간을 더 달린다. 20시간 버스를 타니까 하루가 그냥 사라지는구나. 버스에서 내리고 GPS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두 명이 뭐라고 말을 걸더니 서로 깔깔 웃기 시작한다. 러시아를 못한다고 하고, 도망치듯 터미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2GIS 지도 앱 덕분에 중국에서보다는 길 찾아가기가 훨씬 쉽다.


알리 집을 찾아서 호출해 보니 응답이 없어서, 전화를 건다. 기본요금이 없는 알뜰폰인데도 자동로밍이 되고, 현지로 거는 통화비는 1분에 600원 정도 하는것 같다. 막 쓸 수는 없지만 필요할 때만 쓰면 유심카드를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알리가 현대 엑센트를 끌고 와 차 안에서 인사해 온다. 좋아, 이제 살았다! 알리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알리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으로 간다. 짐을 풀고, 인사하고, 샤워하고 나오니, 달달한 우유죽과 과자, 빵으로 성대한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알리는 카자흐스탄이 소련의 밀 공장이었다며 빵의 품질을 자부한다.


이날의 아스타나 구경과 신기한 만남들은 다음 포스트에 이어서...


알마티의 오래된 아파트. 아스타나의 새로 지어진 반짝거리는 건물들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목조건물 젠코프 성당(Zenkov's Cathedral)


젠코프 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장식


판필로프 공원(28인 공원)


공원 근처에 있던 녹색 시장(Green Market)


아스타나로 가는 길. 끝없이 펼쳐진 스텝(steppe)


평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잡한 화장실 별 모양은 여성(женщина, 젠쉬나)의 앞글자 'Ж'이다. 즉 여자화장실 표시.


화장실 벽 왼쪽의 'Ж' 표시는 여성, 오른쪽의 'М'은 남성(мужчина) 표시이다.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는 꼬마 승객들


광활한 초원과 뾰족뾰족하고 거친 풀



인류 문명이 무너진 후 남아있는 폐허같은 느낌의 화장실이 좋아서 계속 찍었다


화장실 뒷쪽에는 배설물과, 휴지와,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다.




다시 답답한 버스에 오른다.


다음날 아침. 아스타나에 도착한 후 알리를 기다리는 중. 귀여운 꼬마가 잠시 놀아준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알리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집. 아침을 차려주시고 우유와 설탕을 탄 따뜻한 차를 몇 잔이고 계속 권하셨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시는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열심히 적어 둔다.


알리 어머니 집의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