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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물의 길 후기

영화가 길어서 걱정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도 잘 되고 재미있게 봤다.

육탄전이나 거대 어류 혹은 꽃게 로봇에 쫓기는 장면은 어차피 뻔한 전개일텐데 위기감만 주고 질질 끄는 것 같아서 지루했다. 그런데 영화가 12세 관람가인 것을 생각하면, 어린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장면이 정말 많았다. 각종 생물들도 자연스럽게 디자인 되었고 조잡하지 않았다. 바다 부족 족장 딸은 인간이 아닌데도 아주 예뻤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게 봤는데, 주제 의식은 좀 애매하다. 고래(툴쿤) 사냥은, 고래가 크고 지적인 생명이기 때문에, 비장하고 엄숙하게 그려지지만,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제이크 설리와 큰아들의 물고기 사냥은, 물고기(물살이)가 좀 덜 크고 덜 지적인 생명이기 때문에 전혀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다. 1편에 나왔던, 네이티리가 제이크 설리를 위해 늑대 포유류를 살육한 후의 죄책감이나, 2편에서의 다른 탈것 동물들이 사살된 후의 감정이, 물고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물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비건이고 물고기의 생명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아마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표현했다가는, 대중의 거부감이나 반발심이 너무 컸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뭐, 영화 주제가 비건이 되자는 건 아닌 걸로.

바다 민족이 분노한 것도 '가족'인 툴쿤이 살해당했기 때문이고, 제이크 설리도 '가족'이 우선이고, '가족'은 아니지만 혈연인 스파이더와 대령 사이에도 끈이 생긴다. 물론 가족이라는 것이 '나' 보다는 확장된 개념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하급의 이기주의보다는 넓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경계선이 있고 가족 이기주의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가족에 대한 강조는 (잘 팔리지만) 너무 흔하기도 하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 애매했던 것이, 바다 부족의 족장이 툴쿤족(고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예전에는 서로 죽이고, 복수하는 종족이었지만, 결국 그것이 끝없는 혈전으로 이어지고 모두를 파멸시켰기 때문에, 복수하지 않는, 죽이지 않는, 평화의 종족이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예수님과 부처님과 톨스토이와 간디의 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막강한 힘과 지능과 감성과 영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찮은 인간들이 와서 공격해도 티끌만치도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 나는 이것이 강력한 메시지이자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결국은 추방된 툴쿤(둘째 아들과 친해진 고래)이 고래잡이 배에 올라가 그 압도적인 힘과 지능으로 닝겐과 로봇들을 초토화 시킨다. (처음에는 이 툴쿤의 장엄한 희생이라고 생각해서 울컥 눈물이 나왔는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돌아가며, 자기 지느러미가 잘린 것처럼 포경선 선장의 팔도 깨끗하게 절단해준다.) 그리고 이 툴쿤의 공격과 함께 제이크 설리 가족과 바다 부족도 공격을 시작하여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시작된다. 나비족과 생물들이 죽을 때도 가슴이 아프지만, 인간들이 죽는 것도 불쌍하다! 뭣도 모르고 따라와 총질하고 있는 약간 모자란 인간들 아닌가! 그들도 그들을 낳은 부모가 있고 제이크 설리와 큰아들의 활쏘기 추억과 같은, 그들만의 추억들이 많이 있을텐데! 그리하여 숭고한 메시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죽고 죽이는 복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들을 잃은 네이티리는 그야말로 복수의 여신이자 살인귀가 되어 날뛴다. 물론 나와 관객들은 그녀의 편이지만.

대령과 그의 똘마니 해병들이 나비족이 되어서 나비어를 말하고 나비처럼 생각한다고 할 때, 또 그들이 익룡까지 한마리씩 길들여 타고 다닐 때, 어쩌면 이들이 이 과정에서 교화되어 정말 나비족처럼 자연과 교감하는 존재로 새로 태어나지는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런데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듯한 대령이, 영화 두 편에 걸쳐 별다른 내적 변화 없이, 제이크 설리에 대한 복수심만 불태우다가 영화가 끝난다는게 참 유치하기도 하고, 좀 아쉽다. 그나마 한 발자국 진보한 것이, 자기의 인간 아들(스파이더)에 대한 연민이 자신의 복수보다 우선시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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