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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니트라: 동굴, 언덕, 예술가 가족 (여행 108일째)

2016년 11월 3일 목요일

슬로바키아 니트라(Nitra)


배경음악(새창): Elwynn Forest


오늘 어디어디에 갔는지는 사진을 보면 나오겠지. 그리고 글로 그 마법의 숲과 푸른 언덕을 설명하는건 셰익스피어라도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여기에 적을 것은 순간순간의 감정, 느낌, 깨달음, 그리고 수많은 대화와 사람들에 관한 것일텐데, 막상 그 순간순간에서 벗어나 버리니 막막하군.


페테르의 무동력 글라이더 얘기, 물도 음식도 없이 이틀동안 한 자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던 얘기를 들으면 다시 붙어보고픈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모험왕이 아닌 고독하게 걷는 순례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억지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 보다는 걷고 걷고 걷는 것이, 침묵 속에서 피스필그림(맨몸으로 28년간 도보여행)이나 존 프란시스(플래닛 워커, 17년간 침묵하며 22년간 도보여행)처럼, 그리고 수많은 다른 구도자들처럼 걷는 것이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티(나타샤)는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스러운 영혼이다. 소녀시대의 태연을 신처럼 숭배하고 사랑하는 아이. 일본어 실력도 상당하고, 방에 붙여놓은 그림들을 보면 그리기 실력도 좋다. 도마뱀, 거북이, 귀뚜라미를 키우지만, 집에서 닭은 키울수 없기에 닭인형 '시드니'만 키우고 있다. 학교 가는걸 싫어하고, 영어는 정말정말 잘하고(학교에서 제일 잘한다. 여행을 다니며 아랍어, 영어 등 여러 국가 언어를 배운 아빠 페테르의 영향인듯),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한다. 체육 과목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런 재능있고 맑은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난 얼마나 이런 놀라운 아이들의 존재를 모르고 좁은 세상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걸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맑아진다. K-pop의 전도사여서 동생, 할아버지, 엄마에게까지 퍼뜨렸고, 지금은 온 가족이 K-pop을 듣는다.


오늘 같이 걸었던 산길과 동굴, 길을 뒤덮은 무수히 많은 낙엽들, 아무도 없는(등산객이 단 한명도 없었다!) 산길과 파란하늘. 


매서운 바람. 


곰 이야기(할머니가 호수에서 수영하다 만난 곰과, 삼촌이 수풀에서 마주쳤던 곰). 


폭풍우를 만난 이야기(모험왕 아빠인 페테르와 수풀에서 텐트도 없이 벌벌 떨며 자곤 했단다). 


모기 이야기("저는 모기에 안물려요. 지금까지 한번도 물려본 적이 없어요. 아니, 한 번 물렸었나? 아! 그런데 모기가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는 너~무 싫어요! 그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물리는게 나을것 같아요").


동굴 이야기(속으로 깊숙히 이어지는 동굴, Svoradova Cave, "안에서 사람이 나올것 같아서 동굴이 무서워요. 예전에는 여기서 사람이 살았던 적도 있어요." 나타샤가 동굴 입구 근처로 가지 않으려고 했음.) 등등...


페테르의 언덕 집에서 일어났다. 창문에 예쁜 햇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와! 홀딱 반해버릴 것 같은 그림이다. 페테르가 그린 그림인데 정말 마음에 든다.


페테르가 차로 산입구의 종합병원(Špecializovaná nemocnica sv. Svorada Zobor)까지 태워다줬고, 나타샤와 둘이서 등산을 시작했다. 인간도 짐승도 보이지 않는 고요한 야생의 숲



다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고요하게 빛나는 숲.


전망대에 올라왔다.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니트라.






정상에는 방명록이 있었다. 나타샤와 이름을 적고 그림을 그렸다.


닭, 여우, 무당벌레, 시드니.


페테르의 집. 벽에 연필로 그린 밑그림을 물감으로 칠했다. 페테르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 얼렁뚱땅 대충대충인것 같으면서도 섬세함이 살아있다. 왼쪽에는 나타샤가 어렸을 적 사진(나타샤: "뚱뚱하게 나왔는데 아빠가 걸어놔서 싫어요!")이 있고 오른쪽에는 페테르가 여행 당시 찍은 사진이 보인다.


나타샤의 그림. 침대에 누운 강아지가 별빛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을 보고 있다.


나타샤가 그린 소녀시대 집.


오후에는 나타샤와 함께 시내로 걸어 내려가 페테르의 회사에 갔다. 회사 사람들이 나와 나타샤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페테르가 회사에서 나와서 니트라 성에 데려다 주었다.


저기가 아까 올라갔던 산인것 같다.


하루가 저물어 간다. 페테르가 나타샤를 엄마 집으로 가는 버스 타는 곳에 내려 주었다. 작별. 오늘 함께 많은 곳에 가고 많은 얘기를 나누어서 그런지 헤어지는게 아쉬웠다.


페테르가 다시 회사에 가야 해서 나는 혼자 저녁 7시까지 도시를 돌아다녀야 했다. 해가 일찍 져서 도시는 어두웠고, 아침부터 등산을 해서 몸도 피곤했다.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