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프라하 - 베를린: 바나나와 빵의 여행 (여행 109일째)

2016년 11월 4일 금요일

이동경로: 슬로바키아 니트라(Nitra) -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 체코 프라하(Prague) - 독일 베를린(Berlin)



배경음악(새창): Warcraft 2 - Orc 2


이른 아침. 페테르의 집에서 나와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은 갈 길이 멀다. 버스를 타고 니트라에서 브라티슬라바로 갔다가, 체코의 프라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로 한번 더 갈아 타야 한다. 버스는 총 세번을 타지만, 버스표는 하나로 연계된 것으로 며칠전 온라인으로 20유로(25500원)에 구매했다.


아침 일찍부터 버스를 타야 하는데 페테르의 집은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약 1시간 거리.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가방을 메고, 소리없이 페테르루시 할머니에게 작별하고 언덕길을 내려왔다.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바나나 5개빵 1킬로그램을 샀다(1.36유로). 어젯밤 테스코에서 세일하는 빵 10개를 사서 루시 할머니에게 절반 드리고 남은 것도 있기 때문에 오늘 하루 굶을 걱정은 없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바나나와 빵을 먹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싸게 얻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바나나이다. 그리고 바나나와 빵은 들고 다니면서 먹기도 편하다. 밥이나 면은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도 없고 오래 보관하지도 못하는데, 빵은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이틀이나 사흘동안 두고 먹어도 문제가 없다. 바나나는 값이 쌀 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들과는 달리 물에 씻을 필요도 없고 껍질을 벗기는 것도 쉬워서 여행자에게 최적인 음식이다. 이번 여행에서 바나나와 빵을 하도 먹어서, 나중에 여행기를 쓰게 된다면 제목을 <바나나와 빵의 여행>으로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먹은 음식이 바나나와 빵 뿐일 때도 있다. 바로 오늘이 그랬다.


여행자의 식량.


니트라의 버스 터미널.


니트라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한 것이 11시 30분. 프라하로 출발하는 버스는 12시 15분에 출발한다. 즉, 45분의 자유시간이 있다. 앞으로 이곳에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에, 45분동안 가만히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기는 싫었다. 지도를 보니 1.2km 거리에 블루 처치(Blue Church of St. Elizabeth)라는 곳이 보인다. 가는데 15분 오는데 15분 계산하면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구글맵을 보며 파란 교회를 찾아 좁은 길을 급하게 걷는다. 


파란 교회를 찾았다. 창문에는 멋진 성화가 그려져 있다. 햇빛이 비출때 안에서 보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입구가 닫혀 있었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문틈으로 내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교회 내부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Wikimedia Commons)


후다닥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 노숙자로 보이는 남자가 잡지를 팔고 있다. <빅 이슈(Big Issue)>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잡지 같다. 잡지의 이름인 노타 베네(Nota bene)는 '주의해서 잘 보라(note well)'는 뜻의 라틴어다. 2001년 몇몇 대학생들이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하지만 잡지는 잘 팔리는 것 같지 않았고 노숙자는 정말 우울하게 서 있었다.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체코로 가는 버스에 탔다. 비행기처럼 좌석마다 모니터가 달려 있는 좋은 버스였다.


버스가 프라하에 가는 길에 어느 도시에 들렀는데, 창밖 언덕에 고딕 양식의 거무칙칙한 교회가 웅장하게 솟아 있었다. 이런 이름모를 도시에 이렇게 말도 안되게 멋있는 건물이 있어도 되는 건가? 기대도 안했는데 너무 멋진 광경을 봐서 놀라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도시는 브르노(Brno)였고, 교회 이름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Paul)이었다. 


놀라서 창밖에 카메라를 대고 찍어 보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은 구질구질해 보인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Paul, 출처: Wiki Commons)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Paul, 출처: Wiki Commons)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Paul, 출처: Wiki Commons)


버스의 프라하 도착 예정 시간은 오후 4시 30분. 베를린으로 출발하는 시간은 오후 6시다. 버스가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서, 처음으로 가보는 체코와 프라하를 조금이라도 더 둘러볼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버스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느릿느릿 굴러간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프라하. 11월의 짧은 해는 이미 들어가 버리고, 이미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은 플로렌츠(Praha Florenc)라는 곳에 있었고, 남은 시간은 약 한시간. 도심 쪽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기에 깨끗히 포기한다. 대신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비트코프 언덕(Vitkov Hill) 위에 올라가 보기로 한다. 프라하를 조금이라도 구경해 보고자 하는 욕심에...


가는 길은 으슥했다. 굴다리 밑에서 출입 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진입로를 통해 언덕길로 접어 들었다.


바나나와 빵을 꺼내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언덕길을 올랐다. 


어느 정도 오르니 강 서쪽편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프라하 성(Pražský hrad)와 일군의 건물들이 보인다. 하지만 너무, 너무 작게 보인다. 안경을 꺼내쓰고 빛나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프라하에 있다'라고 느끼려 노력했지만, 프라하는 개뿔...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것이 저 강건너에 보이지만, 멀다. 너무도 멀다.


이런 풍경이 보였지만, 정말 작게 보였다. (출처:Wiki Commons)


언덕 꼭대기에는 말에탄 남자의 커다란 동상이 있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어떤 연인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혼자 언덕에 올라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도착한지 1시간 만에 프라하를 떠나야 하는 사람도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체코의 장군인 얀 지슈카의 동상이라고 한다. 유명한 사람인것 같다. (창세기전에 나왔던 이름이다.) 사진에는 오른손과 오른발만 보이는군.


위에서 본 얀 지슈카의 동상과 비트코프 언덕. (출처: Wiki Commons)


서둘러 언덕을 내려와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이미 깜깜하다.


베를린 까지는 거의 다섯시간 거리다.


베를린에서는 요나스(Jonas)의 집에서 며칠동안 신세를 지기로 했다. 요나스는 한국에서 2년동안 같이 공부했던 대학원 친구인데 원래 베를린 출신이다. 대학원 동기들 중에 이름이 요나스인 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한명은 키가 거의 2미터였고 다른 한명은 170도 되지 않아서, 각각 큰 요나스작은 요나스로 불렀다. 지금 만나러 가는 친구는 작은 요나스다. 


베를린 버스 터미널에 요나스가 마중나와 있었다. 요나스는 내가 사용할 전철표까지 하나 준비 두었다. 이제 물가가 그나마 쌌던 동유럽은 끝났고 본격적으로 후덜덜 물가가 시작되는데, 전철표를 끊어준게 너무 고맙다. 전철안에는 난동을 부리는 축구팬들이 있었다. 베를린이 경기에서 이긴건지 진건지 술에 취한 남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전철이 흔들릴 정도로 쿵쿵 뛰고 있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집에서는 요나스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요나스처럼 조그마한 체구에 안경을 쓰신 어머니가 친절하게 맞아 주신다. 시원한 탄산수와 통조림 수프를 대접받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베를린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베를린에 있는 동안 어디에 가고 싶니?" 요나스의 어머니가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어디가 좋나요?" 당연히 난 베를린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고, 요나스료루가 있어서 들른 것이기 때문에 대답이 궁색했다.


몰랐는데 베를린은 다른 것 보다는 그저 클럽으로 유명하다는군.


"아주머니는 베를린 출신이신 거에요?" 내가 물어봤다.


"응, 어렸을 때부터 쭈욱 베를린에서 살았단다." 어머니가 대답했다.


"아! 그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도 계셨겠네요?" 베를린에 관해서라면 베를린 장벽밖에 모르는 내가 물어봤다.


"응! 있었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첫 새해(1990년 1월 1일)가 왔을 때 사람들이 또 다시 모였지. 그리고 엄청난 파티를 했어. 나도 태어난지 몇 개월 된 요나스를 안고 그곳에 갔었단다." 대답을 하는 요나스 어머니의 눈이 빛났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출처: Wiki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