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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독일 & 네덜란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공동묘지, 돔 타워, 베라 (여행 116일째)

Utrecht (Source: GoodFreePhotos)

 

배경음악: Swingrowers - Midnight

 

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바헤닝언(Wageningen) 푸이 방 

 

(오전 9시)

 

하늘이 하늘색이고 나뭇잎이 주황색으로 물든 햇살이 비치는 아침. 다른 말로 하자면 아주 맑은 아침이다. 지난 며칠간 흐리고 비가 내려 하늘 보기가 힘들었는데, 맑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다.

 

푸이를 따라서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에 갔다. 원래는 보통 중국 음식점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음식을 주문하는 대신 미리 조리된 음식을 골라 배식해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아직은 실험 단계여서 음식량 조절도 힘들다고 한다. 대신 새벽 일찍 가게에서 음식을 준비해 두면 주방일이 덜 바빠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가게에서는 각종 식재료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중국 식품도 많이 있지만 태반은 한국 식품이다. 라면, 과자, 음료수, 식재료, 아이스크림 등등.

 

"아빠가 너 갖고 가고 싶은 것 있으면 가져가래." 푸이가 말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하다가,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신라면을 몇 개 받아 챙겼다. 다음에 재워줄 집에 조공할 선물이 생겼다.

 

푸이와 같이 슈퍼마켓 점보(윰보, Jumbo)에 가서 빵을 사고, 공짜 커피를 뽑아 마셨다. 공짜 커피라니... 너무 좋다. 푸이네 가게로 돌아가 푸이가 챙겨 준 음식과 빵을 먹은 후, 푸이 언니가 키우는 민감한 강아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를 집 안에 풀어 놓으면 외로움을 못 견디고 날뛰다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에 억지로 케이지 안에 쑤셔 넣어야 했다. 케이지로 들어가는 강아지가 구슬프게 운다. "깨애깨애! 깨애애애!"

 

푸이가 바헤닝언 대학교를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우리 도시는 별 것 없지만 이 학교는 유명해. 특히 환경이랑 농업 쪽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야. 너도 그 쪽 분야 관심있지 않아? 여기에 지원해봐!" 푸이가 말했다.

 

아... 아무리 평생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이미 학교를 20년 넘게 다녔다. 그리고 하나 배운게 있다면 공부에는 별 소질이 없다는 것을 배웠지.

 

푸이는 바헤닝언 대학교에 다닌 적도 없으면서 신기하게 친구들이 무척 많았다. 확실히 매력적인 아이다. 학교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떼우다가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푸이 아버지는 점심시간에 대학교 건물에 와서 음식을 파신다. 가격이 6유로 정도로 꽤나 싼 편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음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푸이가 줄을 끊고 들어가 아버지에게 음식을 받아 와서 나에게 건네 줬다. 양이 많아서 조금만 먹고 이따가 먹기 위해 챙겨 뒀다.

 

푸이와 함께 앉아 있던 테이블에 어느새 7-8명의 다른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이런 음식이 6유로라니. 너무 비싸." 푸이네 아버지가 파는 중국 음식을 먹던 여학생 하나가 투덜거렸다.

 

"이게 비싸다고 생각해?" 푸이가 말했다.

 

"식재료 값은 1유로도 안 나올것 같은데?" 여학생이 대답했다.

 

"아니, 그것보다 많이 나와. 그리고 6유로에 팔아서 남는 것도 거의 없어!" 푸이가 말했다.

 

"6유로에 팔아서 안남는다고?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여학생이 말했다.

 

"지금 저기서 음식을 팔고 있는게 우리 아빠니까." 푸이가 울것같은 얼굴로 말했다.

 

여학생은 푸이가 음식 파는 사람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다. 한국 물가랑 비교하면 꽤나 비싸긴 하다. 학교에서 먹는데도 한끼에 8000원이니까. 하지만 네덜란드 음식점 물가를 생각하면 저렴한 편인것 같은데...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인가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푸이는 시무룩했다.

 

"학생들은 아빠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한다는 건 생각도 안해. 그리고 우리가 엄청난 돈을 번다고 생각해. 실제로 남는 건 거의 없는데도..." 푸이가 말했다.

 

푸이 얘기를 들으니, 고등학생 시절 매점 아줌마가 갑부라고 친구들과 속삭이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마음대로 넘겨짚고 경멸하거나 숭상해 버린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푸이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공기는 차갑고 햇살은 따뜻했다. 하늘이 맑아서 기분이 좋다. 푸이와 햇볕을 받으며 사진도 같이 찍었다.

 

"아빠가 어제 그 신발 너한테 주래." 푸이가 말했다. "어짜피 잘 신지도 않는 신발이야."

 

극구 사양하다가, 푸이가 정말 강하게 말하기에 받기로 했다. 너무 고마워라. 이제 내 발은 더 이상 찝찝한 물기에 쩔어있을 필요가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도 문제없을 듯하다. 푸이 일가 여러분...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바헤닝언 대학교(Wageningen University and Research) 도서관

 

그리고 위트레흐트에 도착했다.

 

기차표를 살 필요도, 히치하이킹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내 쪼들리는 주머니 사정을 아는 푸이가 도움을 줬다. 푸이는 지금 운전면허를 따려고 연습 중인데, 때마침 오늘 도로주행 연수가 있었다. 선생님에게 허락을 구하고 암스테르담에 가는 길에 위트레흐트에 들러 나를 내려준 것이다. 푸이는 한국에서 같이 공부할 때도 좋은 아이였지만 이번에 1박 2일을 같이 보내면서 완전히 반해버렸다. 정말 좋은 아이다.

 

위트레흐트의 차가운 공기. 콧물을 닦으며 거리의 벤치에 앉아 푸이가 챙겨준 도시락을 먹었다.

 

 

 

 

길을 따라 생각없이 걷다 보니 공동묘지(Cemetery Soestbergen)가 나왔다. '여기에 잠들다(HIER RUST)'로 시작하는 묘비의 문구를 보고 있자니 괜히 찡해진다. 무(無)의 세계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을 영혼들. 

 

 

햇볕이 노랗게 비치던 공원묘지.

 

 

수많은 묘비 중에는 한국 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해 전사한 위트레흐트 출신 병사들의 묘비가 있었다.

 

묘비의 왼편에는 네덜란드 유엔군 마크, 오른편에는 부대 마크(Second Indianhead Division)가 그려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출생일과 출생지, 전사자의 이름, 사망일과 사망지가 적혀 있었다.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 남자들은 1951년-1953년 사이에, 그러니까 갓 스무살이 넘어서, 이곳 위트레흐트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국땅(인제, 서울, 양양, 티본고지[T-bone·연천] 등)에서 전사했다.

 

아직도 이들을 기리는 사람이 있는지 묘비 앞에는 갓 준비한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나무 사이로 햇볕이 노랗게 들어오는 고요한 공동묘지를 거닐다가 나와서 동쪽으로 계속 길을 따라갔다.

 

 

또 다른 공동묘지(Cemetery Kovelswade)가 나온다. 이 묘지는 무슬림 묘지인지 핫산이나 무하마드 같은 아랍 이름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한 쪽에는 어린아이들 무덤이 모여 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몇 년을 살다가 간 아이들의 무덤. 그리고 그 무덤을 장식하는 알록달록한 장난감과 인형들.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괜히 혼자 슬퍼져서 눈물이 난다. 저 멀리 아이의 무덤을 홀로 찾아온 아저씨가 보인다. 더 슬퍼진다.

 

이렇게 슬퍼하다가 갑자기 쉬가 마려워서 공원묘지 구석 으슥한 곳에 가서 쉬를 눈다. (...) 

 

 

 

제대로 구색도 갖추지 못한 묘지도 보인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변변한 묘비도 세우지 못하고 죽은 아이를 묻어 뒀을까.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인형과 장식품들이 더 구슬프다.

 

공동묘지를 나와 위트레흐트 운하를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도시를 구경했다.

 

순전히 베라를 만나러 온 곳이어서 아무 기대도 안 했는데, 너무 아름다운 도시다. 오히려 암스테르담보다 느낌이 좋다. 우뚝 솟아 있는 시계탑 돔 타워(Dom Tower)는 파리의 에펠탑처럼 강렬한 인상을 준다.

 

짧은 해가 떨어져 어두워지는 도시를 방황한다.

 

그리고 걷기, 걷기, 걷기...

 

 

위트레흐트는 아름답다. 돔 타워도 아름답다.

 

위트레흐트 운하와 거리 (Source: Flickr)

 

 

 

 

위트레흐트에 이런 볼거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이 시계탑의 위용에 감동을 받아 버렸다.

 

Dom Tower (Source: GoodFreePhotos)

 

 

어두워지는 도시, 상점가의 아기자기한 불빛, 맑고 차가운 공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베라가 사는 아파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건물 안밖으로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며 수상한 사람처럼 서 있는데, 검정색 네덜란드식 자전거를 타고 베라가 나타났다. 2년 반 만에 만나는데 막상 만나 보니 지난주 수요일 쯤 만나고 다시 보는 기분이다.

 

베라는 아눅(Anuk)이라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사진을 몇번 봤던 친구다. 대학생 때 같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친구라고 한다.

 

아직도 채식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니, 주키니 요리와 리조또를 만든다고 한다. 청바지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베라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내가 거들겠다고 했지만 도와줄게 없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한다. 베라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야채를 썰고 볶는다.

 

식사 후에는 아눅과 셋이서 와인을 마시며 할리갈리를 했다.

 

베라와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니 할 얘기가 없었다.

 

베라가 자기 방과 이어진 조그만 창고 방에 매트리스와 침구를 준비해 주었다. 방이 약간 썰렁하지만 일단 눕고 보니 편안하고 좋다. 유리벽과 커튼 너머에서는 베라가 잘 준비를 하는 소리와 빛이 새어 나온다. 그러다가 불이 꺼진다. 나도 금방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