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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파라과이

파라과이 아순시온: 한인교회, 4시장, 공동묘지 (여행 293-294일째)

2017년 5월 7일 일요일. Isla Francia Hostel, Asunción.

 

몇 주 정도 머무르며 사람들 만나고, 스페인어 공부하고, 책 읽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다. 물가도 싸고, 이번에 알게 된 한인교회 사람들도 친절하다. 정말 사람이 달라지는구나. 한국인들을 제발로 찾아가 만나고, 고기도 오징어도 주는대로 받아먹고, 오전 오후 두 번이나 교회에 가다니.

 

일요일 아침 호스텔 조식. 크레페와 빵에 둘세데레체를 발라 먹고 컵케이크, 바나나, 오렌지를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바늘과 실을 빌렸다. 햇살이 밝게 들어오는 안뜰에 앉아 엉덩이가 터진 사각팬티와 주머니가 터진 험멜 자켓을 꿰맨다. 

 

전날 조사해 둔 한인교회를 찾아간다. 텅 빈 거리와 밝은 햇살. 예배 시작 후 도착해서 건물 입구는 텅 비어있었다. 용기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2층에서 3층 예배당으로 올라가려는데 덜컥 겁이 난다. 내가 공짜 밥 먹으러 온 게 티 날거야. 쪽 팔릴거야. 순간 망설인다. 그냥 돌아갈까? 여기 가서 뭐해, 아침도 잔뜩 먹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도망치고 싶을수록 부딪혀야 한다는 것을 안다. 

 

계단을 올라 예배당 입구에 계신 분들께 인사하니, 장로님이 나에게 어디서 본 적 있다고 아는척을 하며 반겨준다. 교회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쟨 뉘집애여 할까봐 긴장된다. 다행히 교회가 커서 눈에 잘 안 띌것 같다. 

 

지구 반대편 임에도 아주머니들 머리스타일, 옷, 화장이 한국 아주머니들과 똑같다. 아저씨들도 마찬가지. 교회 내부 장식, 꽃꽂이, 십자가, 성가대 가운, 빔 프로젝터 또한 한국 교회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수백 년 전 남미에 지어진 유럽식 성당과 건물들도 이런 방식으로 복붙했나보다. 

 

예배가 끝나고 휙 도망가는 대신 앉아서 기도하듯 눈을 감고 기다리니, 전도사님이 오셔서 챙겨주신다. 전도사님을 따라 식당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늘 메노나이트 신학대학생들이 손님으로 와서 식당에 자리가 모자랐다. 권사님과 여자 집사님들과 말다툼이 붙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권사님에게 “그럼 밥 먹고 있는데 밥그릇을 들고 가라는거여 뭐여, 여기서 앉았응께 여기서 먹어야지.”라고 말하는 아줌마 성도님. 내가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며 슬쩍 웃음이 난다. 

 

전도사님, 장로님, 목사님이 내 주위에 앉으셔서 얘기를 나눈다.

 

전도사님은 이민 온지 18년 정도 되었다. 맞은 편에는 전도사님 여동생과 여동생분의 딸이 앉았다. 아까 율동시간에 혼자서 반짝반짝 제일 잘하던 아이다. 전도사님, 여동생, 부모님까지 모두 아순시온에 살고 계신다. 

 

장로님은 이민 온지 42년 정도 되었다. 몇 년 전인지 몇십 년 전인지 옛날에는 ‘4시장’이 흙바닥이어서 비만 오면 며칠 동안 진흙탕이 되어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다고 한다(현지인들은 그냥 맨발로 다니고). “여기 대단한 한국 사람들 많아. 파라과이 양말 40% 만드는 공장이 있는데, 그게 이민 1세대 한국인이 세운거야.”

 

젊었을 때 칠레 남부에서 40일간 무전여행 하던 썰도 푸셨다. “완전 무전여행은 아니고 100달런가 갖고 갔는데, 히치하이킹도 하고, 노숙도 했지. 사실 나는 한국에서 여행 온 사람이 아니라 파라과이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했어. 칠레 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고 잘해줘서. 진짜 잘해줬어.”

 

목사님은 앞으로 어디로 가냐고 물으셨다. “로마 플라타(Loma Plata)에 사는 메노나이트 집에서 며칠 머물기로 했어요. 그 뒤에는 볼리비아로 넘어갈 예정이에요.” 목사님이 메노나이트 학생들을 가리키며 착하고 신실한 사람들이라고 하신다. 전도사님 말로는 전기도 안쓰고 문명을 거부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는데, 우리 호스트는 카우치서핑을 쓰는 걸 보면 인터넷과 컴퓨터를 쓰는 것 같다.

 

전도사님, 장로님, 목사님 모두 바쁘셔서 곧 홀로 남게 되었다. 식당을 나와 교회를 헤매고 다니다가 메노나이트 학생들과 마주쳐 눈인사를 나눈다. 웃음과 눈이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뻘쭘해서 어디라도 가려고 나왔다가, 죄다 닫혀있는 ‘4시장’을 한바퀴 돌고, 자석에 끌리듯 교회로 돌아간다. 밥 먹고 떡 받은 다음 먹튀하는 것 같아 집에 가기가 좀 그랬고,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무아지경의 찬송을 하고 싶기도 했다. 찬양 인도자 중 한 명은 예의 그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과 모든 걸 받아들인다는 겸허한 미소로 찬양을 하고 있다. 바로 저기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성가대는 중고등부 학생들로 바뀌어 있었는데, 크고 작은 학생들, 모두 예쁘다.

 

[2] 떡을 가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샤코 匠人 에디(Adi)와 호스텔 장인 로렌자(Lorenza), 오스트리아의 데이빗(David)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에디와 롤 얘기를 하다가, 데이빗이 필라델피아(Filadelpia, 내가 갈 예정인 로마 플라타 근처의 도시)에 가는 버스표를 사러 간다 해서 같이 가기로 한다. 덩치도 작고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어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벌써 1년 1개월째 여행중인 베테랑 여행자다. 유럽에서 시작해 한국과 일본을 지나, 멕시코에서 육로와 해로를 통해 남미로 내려왔단다. 나와 정반대 방향의 여행을 했지만, 지금은 같은 방향, 필라델피아와 볼리비아로 간다.

 

데이빗이 에콰도르의 쿠엔카(Cuenca)와 라타쿤가 칸톤(Latacunga Canton)을 추천했다. 이 근처에 가이드 없이 트레킹 할 수 있는 곳이 있단다. 

 

터미널에서 한참 버스표 가격과 시간을 알아보다가, 산타크루즈 가는 버스를 중간에서 타도 같은 가격이라는 실망스러운 얘기를 듣는다. 여권이 없으면 환전을 안해줘서 버스표도 못 샀다. 호스텔의 브라질 손님을 우연히 만나서 같이 버스타고 돌아온다.

 

[3] 브라질 친구는 여주인 로렌자에게 쫓겨나듯 떠났다. 로렌자가 저런 손님은 호스텔에 두기 싫단다. 

 

손님들이 체스하는 걸 구경하다가 로렌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전에 왔던 한국인 손님 중에 세계 여기저기를 다 여행하던 젊은 두 친구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둘 다 이름이 리(Lee)란다. 새벽까지 클럽에서 술 마시다가 취해서 요란하게 호스텔 문을 두드리고, 가짜 칼을 몸에 꽂고 찔린 시늉을 하는 등 별 정신나간 짓을 다 하고 다녔다는데, 로렌자는 그 친구들이 너무 좋았단다. 역시 사람은 재밌어야지. 

 

이렇게 오스트리아 데이빗이나 한국의 리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나처럼 쪼잔하게, 돈에 덜덜 떨며 여행하는게 무의미해 보이고,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뭘 위해 이러고 있는지. 한달에 몇십 만원 더 쓰는게 왜 이리 불안한지. 돈은 600만원이나 남았고, 시간은 4개월 밖에 안 남았다. 한달에 100만원씩 써도 다 못쓴다. 그런데도 아끼겠다고 이과수도 안 가고 한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궁리하고 떨고. 100미터를 15초에 뛰든 18초에 뛰든 11초에 뛰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호스텔이 예쁘다.
아순시온 태권도장
4시장
시장시장
구멍가게
호스텔 고래와 수영장

 

2017년 5월 8일 월요일. 비 온다더니 비 안옴.

 

[4] 아침을 잔뜩 먹고 원정을 떠난다. 씨티은행까지 5km 정도. 거기부터 터미널까지 3-4km 정도. 그리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4시장에 내려 쥬스, 야채, 과일을 좀 산다. 씨티은행에 ATM은 있지만 수수료 1불도 아니고 달러도 아니어서 인출은 안한다. 근처에서 환전이나 한다. 그동안 처치 곤란이던 20달러 + 5파운드 + 220헤알을 환전하니 10만원 정도. 여기 돈으로 50만 과라니 좀 넘게 받는다.

 

여기서 버스비로만 40만이 깨진다니 마음 아프군.

 

또다시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처음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어딘가 황야 같은 곳에서 기약없이 그저 걷고 싶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자.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는데, 고래나 펭귄을 못 본게 대순가. 대신 다리가 하나 없는 예쁜 새를 봤다. 깡총거리는 다리와 갸우뚱거리는 머리. 작고 날카로운 두 눈에는 아무런 원망도 절망도 분노도 좌절도 없었다. 

 

야수처럼 털이 삐죽삐죽 뻗친 아기 고양이가 차 아래 웅크리고 있는 것도 봤다. 집고양이와는 다르게 눈빛에서 야성이 뿜어져 나온다. 태어난지 몇 개월이나 되었을까. 여유도, 자비도, 용서도, 나약함도, 투정도 없는, 공허하면서도 뚫을 듯이 날카로운 눈빛이다. 

 

공동묘지에 잠시 들렀다. 같은 날 죽은 엄마와 딸의 묘비가 있다. 비행기 조종사의 무덤도 보인다.

 

시장의 쓰레기통에는 야채와 과일들이 잔뜩 쌓여있다. 버려진 오렌지 더미에서 깨끗한 놈 하나를 집어먹었다.

 

IESVS NAZARENVS REX IVDÆORVM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which in English translates to "Jesus the Nazarene, King of the J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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