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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파라과이

파라과이 로마 플라타: 메노나이트 마을 (여행 295-296일째)

2017년 5월 9일 흐림

아순시온(Asunción) → 로마 플라타(Loma Plata)

 

[1] 밤새 비가 쏟아졌다. 대화 소리가 안 들릴만큼 시끄러운 빗소리를 들으며, 싸게 산 포멜로를 까먹고 싸구려 맥주를 마셨다. 생각했던 것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 이런 걸로 만족하는 법을 알았다면 한국에서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겠지.

 

맥주에도 안주에도 행복을 주는 힘은 없다. 이런 욕망들이 채워지면 오히려 무언가를 더 채워넣고 싶어진다. 만화책을 보고 싶어진다. 만화책을 보다가 성인 광고가 뜨자 거기에 눈이 간다. 아, 영원한 윤회란 이런걸 말하는가. 결국 배 터지게 먹고 딸딸이를 치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건 기쁨의 시간이 아닌 절망과 패배감의 시간이었다.

 

돈이 없을 때, 돈을 쓸 일이 없을 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을 때는, 가끔씩 세상을 투명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환전하고 현금을 손에 쥐니, 먹을 것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쾌락거리를 찾아 눈이 돌아간다.

 

어제 저녁 슈퍼에서 ‘둘세데레체’ 과자를 사서 길에서 먹던 나에게, 야생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자신에게도 달라고 당당히 (강탈하듯) 요구하던 차창 닦이 청년. 내가 그 과자의 달콤함을 맛보면서, 그 청년에게는 “빵만 먹어도 죽지 않으니 이건 못 줘.”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하면서 너는 못하게 하는 게 가능한가?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털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돈을 쓰는 여행은 어딘가 ‘떳떳하지 못함’이 있다. 고난과 황야를 쫓던 마음은 어디가고 편안함만 찾고 있는지.

 

[2] 아순시온에서 로마 플라타로 이동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 크리스틴 듀익(Christine Dueck)은 메노나이트(Mennonite)이지만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 부류다.

 

[3] 밤에는 크리스틴으로부터 메노나이트 이민 역사에 대해서 들었다. 

 

지금의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메노나이트 집단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세계를 떠돌아 다녔다. 이들은 철저한 비폭력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징집되는 것을 거부했고 그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러시아에서 80년 정착했던 집단은 다시 캐나다로 이주해 50년을 보냈고, 그 중 일부가 파라과이로 이주했다. 

 

몇 년 전 95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크리스틴의 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파라과이로 이민 오셨다는데, 그게 약 90년 전이다. 파라과이 정부와의 약속으로 메노나이트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나중에 메노나이트 이주 당시의 사진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 90년 전 캐나다에서 파라과이로의 대이동은 과연 어땠을까. 노인부터 아이까지 온 가족이 챙길 수 있는 짐은 모두 챙겨서 며칠 동안 배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라과이 정부에게 약속받은 땅을 향해 간다. 길도 없는 늪지대를 지나는 동안 마차 바퀴는 몇 번이나 진창에 빠지고 습기와 더위로 인해 이주민들은 지쳐간다. 그렇게 수 개월을 여행해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양심대로 행할 자유를 보장 받았다. 여기에 주춧돌을 놓고 집을 짓는다. 그들과 그들의 후손이 머무를 땅이다. 

 

그곳이 바로 이곳 로마 플라타이다. 말 그대로 맨 땅에서 시작한 그들은 축산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쌓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크리스틴도 메노나이트 협동조합에서 직업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2017년 5월 10일 흐림

Chaco, Loma Plata.

 

[1] 카우치서핑을 하다 보면, 각종 규칙을 정해놓은 호스트를 만날 때가 있다. 많은 손님을 받다 보니 규칙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흡연 금지’, ‘약물 금지’ 같은 규칙은 아주 흔하다.  

‘샤워 후에는 머리카락 청소하기’나 ‘변기에 화장지 투입 금지’ 같은 좀 더 섬세한 규칙도 있다.  

종종 ‘호스트가 집 밖에 있는 동안에는 손님도 집 밖에 있어야 함’과 같은 규칙도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이다. 미지의 손님이 집주인이 없는 동안 어떤 깽판을 쳐 놓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크리스틴도 이 규칙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틴이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난다기에, 나는 다섯시에 일어나 똥싸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커피를 마시며 아침 일기를 썼다.

아침 식사로 빵과 버터, 치즈, 꿀을 먹으면서 크리스틴과 얘기를 했다. 방금 먹은 치즈와 버터는 모두 크리스틴이 다니는 회사(협동조합)에서 만든거란다. 우유, 요거트, 버터 공장은 이 마을에 있고, 치즈 공장은 여기서 두 마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단다.

[2] 크리스틴의 출근하는 아침 6시 30분에 같이 집을 나왔다.

이른 시간이어서 슈퍼마켓도 박물관도 닫혀있었다. 시간을 죽이려고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볼 것도 없고 갈 곳도 없고 길은 진창이었다. 

공원에서 신기한 새들을 구경하다가 메노나이트 역사 박물관에 갔다. 크리스틴의 사촌 클리포드 듀익(Clifford Dueck)이 여기서 일하고 있었다. 오늘 박물관 방문객은 나 하나였으니 상당한 꿀보직으로 보인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박물관의 사진과 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봤다.

비폭력을 추구하며 살아온 메노파들. 종교와 교육의 자유를 위해 세계 각지를 떠돌며 황무지를 개척해 온 사람들. 

그 후손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하거나 일용직으로 벌어 먹는 파라과이 원주민들에 비해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그 풍족함 덕분에 나같은 여행자도 호의와 친절을 받고 있다.

 

점심시간에 크리스틴을 다시 만나 야채 피자를 얻어 먹었다.


메노나이트 협동조합에는 목장, 도살장, 각종 유제품 공장이 있는데, 도살장 직원만 600명이 있다고 한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매일 800-1000마리의 소가 도살된단다. 메노파 사람들은 왠지 채식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기에 좀 충격이었다.


크리스틴과 클리포드의 대화를 들어보니, 도살장 직원 중 한 명이 의붓딸을 아홉살 때부터 강간해왔던 사실이 얼마 전 밝혀졌단다. 이제 열살인 아이가 임신 6개월째란다. 그 도살장 직원은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비폭력과 종교의 자유로부터 도살장과 강간이 파생되다니. 

예전 러시아에서 내가 얻어먹던 밥이 담배회사 봉급에서 나왔던 것처럼, 지금 내가 얻어먹는 음식들도 도살장 봉급에서 나오고 있다. 세상 일들은 정말 복잡하게 꼬여 있다. 이들의 생계 수단에 동의할 수도 없지만 그것을 심판할 수도 없다. 가축 사육은 이들이 삶을 위해 선택할 수 있던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3] 크리스틴이 '집 밖으로 규칙'을 보류하고 나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에, 온종일 진창길을 배회하는 대신 집에 들어와 편히 쉴 수 있었다. 한숨 자고 만화책도 봤다. 

<헌터X헌터>에 달린 댓글 중에, 이 만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제약과 서약’ 때문이라는 글을 봤는데, 참으로 그렇다. 

현실도 비슷하다. 음식의 제약(채식), 행위의 서약(금주, 금연, 금딸), 돈의 제약(예산), 인터넷 사용의 제약(모바일 데이터 사용 불가), 교통 수단의 제약(육로 이동 원칙) 등이 삶(여행)을 좀 더 어렵게 하는 동시에 성취감과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눈감아 준 작은 욕망이 좀 더 큰 욕망이 되고, 그것들이 절제력을 압도하면서 제약들이 하나 둘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COLONIA MENNO 1927
이 지역의 상징같은 나무다.
개척자들
박물관에 있던 많은 사진들
파라과이 원주민의 사진도 있다.
건축 현장
신기한 동물도 돌아다닌다.
늪지대의 새
사람이 들어가 숨을 수 있다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