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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중국

중국 신장 뤄창 - 쿠얼러: 누란의 미녀와 미라 (여행 27일째)

2016년 8월 14일 뤄창(若羌) - 쿠얼러(库尔勒)


[등장인물] 

줄리: 타이완에서 온 여행자. 같이 히치하이킹 중. 중국 친구들은 샤오마오(小猫, 작은고양이)라고 부른다. 

보물사냥꾼들: 지프차를 타고 보물과 유적지를 찾아 다니는 아저씨들.


1. 아침에 일어나 빈관에서 나오는 밥을 먹고 잠을 좀 더 잔다. 아저씨들이 언제 출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줄리만 든든히 믿고 있다. 박물관에 가자기에 따라 나선다. 전혀 흥미도 없고, 정오의 태양은 따갑지만, 그냥 따라간다. 그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갈 뿐이다. 불만도 없고 이견도 없다. 지금 가는 곳은 러우란(누란, 楼兰, Loulan, 현재의 신장-위구르 지역에 존재하던 고대국가) 박물관이다. 박물관 벽면에는 누란의 미녀(楼兰美女, Loulan Beauty, 누란 유적지에서 발견된 잘 보존된 미라. 우루무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습이 새겨져 있고, 여권을 보여주니 무료 입장이다. 줄리를 따라 바로 지하로 내려가서 미라를 본다. 방문객이 없는 텅 빈 박물관, 유리 덮개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미라를 보니 섬뜩한 느낌도 든다.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운 미라들의 모습. 살가죽이 뼈에 달라 붙었고, 눈두덩이는 뚫려 있고, 조그마한 코는 납작하게 붙어 있다. 머리털과 수염은 신기하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 아기들 미라도 있는데, 피부 색깔은 갈색으로 변해 있고 얼굴은 뭉개져 있으나 조그마한 발과 발가락 모양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미라들은 이집트에서처럼 방부 처리를 한 것이 아니라, 건조한 기후 때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천 년 전에 죽은 자들과 지금 내 앞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포옹, 노래, 속삭임, 애정, 웃음, 대화, 사랑의 감정, 이런 것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할까. 눈 깜짝할 사이에 미라가 되어 저렇게 눈두덩이가 패인 시체로 누워 있지 않을까? 무관심하게 방문한 박물관에서 이렇게 놀라운 것을 볼 줄이야! 박물관 주변에는 스벤 헤딘(Sven Hedin, 누란 유적을 발견한 탐험가)의 동상이 있다. 그의 탐험가 정신과 앞으로 다가올 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2. 그렇게 오후의 짧은 산책을 마치고 점심으로 청포도를 먹은 후 보물사냥꾼 아저씨들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리고 아저씨들에게 오늘도 쿠얼러에 가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오후 4시가 되었고, 450km를 히치하이킹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인데, 이상하게 줄리랑 있으면 걱정이 되지 않는다. 시 외곽으로 걸어 나가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데 아저씨들의 지프차가 보인다. 아저씨들과 인사하고 그 근처에서 계속 지나가는 차들을 세워 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어떤 운전자는 줄리를 보고 차를 세웠다가, 내가 다가가니 주유소에 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우리를 지켜보던 보물사냥꾼 아저씨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는데, 잠시 후 돌아오더니 우리를 태운다. 쿠얼러까지는 생각보다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괜한 부담감과, 미안한 마음, 치통을 호소하는 아저씨, 좁은 도로, 운전 교대, 기름 리필, 침 치료(의사인 줄리가 아저씨에게 침을 놓아 드렸다), 무슬림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한참을 달렸는데도 줄지 않는 거리, 머나먼 쿠얼러, 그리고 계속되는 검문소에서의 신분증 검사... 점점 더 꿈 속을 헤매듯이 낯선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계속된다. 


3. 자정이 지나 쿠얼러에 내리고, 아저씨들과 헤어진다(아저씨들은 유적 발굴 준비를 하고 계셨고, 그때까지 중국에 있는 줄리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셨다). 한참을 걸어다니며 캠핑할 곳을 찾는다. 학교는 너무 어둡고 문도 닫혀있어 공원 쪽으로 간다. 줄리가 콜라를 마시고 싶다기에, 적막한 도시에서 아직까지 열려있는 편의점에 들어간다. 음료를 계산하고 가방도 들어준다. 가까워지면 니돈 내돈의 개념과 니짐 내짐의 경계가 흐려진다. 공원에 짐을 풀고 자리를 깔고 방수포로 주변을 덮었지만 너무 덥고 모기가 많다. 공원 한 가운데로 이동해 누워보니 시원해서 모기는 적지만, 새벽을 방황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 불안하다. 결국 줄리가 놀이기구 사이에 근사하게 천막을 덮어 잘 곳을 마련한다. 아늑한 피난처가 완성되어 서너 시간쯤 편하게 눈을 붙인다.


러우란(楼兰) 박물관 벽면에 새겨진 누란의 미녀. 박물관 내부의 미라는 사진 촬영 불가.


길 묻는 스벤 헤딘(Sven Hedin)


멀고도 먼 쿠얼러로 가는 길


무슬림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