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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중국

중국 항저우: 등산, 서호 둑길, 배드민턴 (여행 9일째)

2016년 7월 27일 수요일 항저우


[등장인물] 

제이슨: 태국에서 같이 일했던 중국 친구. 항저우에서 박사과정 중이고 본명은 니하오. 

료루: 제이슨과 같이 일하는 여학생. 발랄하고 예쁘다. 

저핑: 제이슨과 같이 일하는 여학생. 코 옆에 큰 점이 있다.


1. 더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는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제약과 갈등이 된다. 헬프엑스(Helpx)를 통해 청두(成都)에 있는 영어 학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중국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해 주면 대가로 숙식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헬프엑스에 정회원 가입비를 내고 아직 사용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청두 시로 가버리면 기존의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해 한달만에 카자흐스탄으로 빠져나가려던 계획이 틀어지게 되버린다. 선상비자로 30일 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일정이 빠듯해 진다. 


과연 나는 자유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온 것인가 아니면 더욱 더 무언가에 속박되기 위해, 권리와 의무에 예속되기 위해 나온 것인가. 다니엘 수엘로(Daniel Suelo, 미국에서 17년째 돈 없이 사는 남자)의 글(링크)을 읽을 때면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게 되다가도,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사회로부터 받아온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인과관계 = 복수 = 되갚음(credit & debt)"의 부재상태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2. 걷고, 걷고, 걷고, 또 걷고, 아침부터 걷고 저녁까지 걷는다.


일단 위안이 필요하기 때문에 씨티은행을 찾아가 돈을 뽑는다. <인사이드 잡(Inside Job, 2010)>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씨티은행과 같은 국제적인 대형은행에 대해 경멸감을 품어 왔지만,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이렇게 씨티은행 계좌를 사용하고 씨티은행을 찾아다니는 모순덩어리이다. 우리나라 은행에 들어가면 항상 정수기가 있기 때문에, 물이나 마실 수 있을까 했는데, 여기 은행에는 그런게 없다. 목이 마른데 어제는 보이던 차를 마실만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 저녁 제이슨, 료루, 저핑과 함께 걸었던 길을 따라 대나무숲을 지나 산을 오른다. 할머니 한 분이 노래를 하면서 산을 설렁설렁 내려가신다.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중국인 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을 걸까봐 조마조마 하며 산을 오른다. 중국어 못하는데, 대답을 안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어로 "아임 코리안" 이러는 것도 웃기고, 중국어로 "워쓰한궈런!" 이러면 중국어를 할 줄 아는것 같잖아. 그래서 등산하는 사람들과 눈을 안 마주치며 초양대(初陽臺)에 오른다. 어제 다같이 왔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혼자 할일이 없어 시간 떼우러 오니 왠지 비참하고 우울한 기분이 든다. 초양대에서 다른 길로 내려오면서 도교 사원인 포박도원(抱朴道院)을 지나온다.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얼마 되지 않지만 입장료가 있어 그랬던 것 같다. 여기 계신 분들은 노자의 도덕경이나 장자의 장자를 읽으며 그 가르침에 따라 살고 계시려나? 아무래도 그렇진 않겠지.


산을 내려와 호수 주위를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도 갔다가, 어제 제이슨과 함께 걸었던 조용한 구역으로도 간다. 가다가 힘들면 앉아서 쉬고, 사람이 많이 없는 곳에서는 눕는다. 누워 있을 때 공안이 지나다니면 왠지 혼나거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할까봐 괜히 움찔거린다. 이렇게 갈 곳이 없으면, 맘 편히 엉덩이 붙이고 앉거나 누워 있을 곳이 없으면 서럽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특히 목이 마르다는 생각과 덥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처음 보는 곳도 몇 군데 있었지만 별 기억에 남지는 않고,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 것 같다. 


오후 4-5시쯤 되어 돌풍이 불며 하늘이 흐려지더니 천둥소리가 들린다. 힘빠지게 하던 더위가 조금 사그라드니 걷는게 좀 더 편해진다. 서호(西湖)의 북서쪽 끝에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남쪽까지 쭉 내려갔다가, 돌아갈 때에는 호수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둑길 수디(苏堤)를 따라 걷는다. 둑길을 따라 난 가로수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빠 한 명이 자전거에 딸 아이를 태우고 둑길 사이사이로 볼록하게 솟은 다리에서 내리막을 가속해 내려오자, 아이가 신나게 소리지른다. 어린시절과 가족이 그리워지는 행복한 풍경이다.


제이슨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더 이상 갈증을 참지 못하고 음료수를 하나 사먹는다. 목이 말라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는, 라마단 기간에 축구를 한 경기 하고 나서도 물을 안 마신다던 무슬림 친구들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하루종일 찌고 습한 날씨에서 걷다보니, 육체적ㆍ정신적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향이 첨가된 시원한 탄산수를 마셨는데, 꿀물을 마시는 것처럼 맛있다.


3. 저녁에는 다시 제이슨과 만나서 냉모밀 같은 것을 얻어 먹고, 배드민턴을 치러 가자길래 그러기로 했다. 제이슨과는 태국 방콕에서 6개월 동안 인턴을 하며 알게 된 사이인데, 방콕에서는 같은 건물에 살았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주말에 종종 배드민턴을 치러 가기도 했었다. 저핑은 배드민턴을 안 친다고 해서 료루와 나, 제이슨 셋이서 저장대학 체육관 쪽으로 걸어 간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배드민턴 치는 가족이나 아이들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실내 체육관에 도착하니 배드민턴 코트가 수십 개 있고, 사람들이 복장과 장비를 구비해 진지하게 치고 있다. 아...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 제이슨과 료루 말고도 다른 학생들이 많아서 번갈아 가며 팀을 짜서 복식으로 경기하는데, 내가 제일 못하다 보니까 같은 팀이 된 모르는 학생에게 민폐다. 또 긴장을 하니까 더 안되고, 나 때문에 경기 흐름이 자꾸 끊겨서 미안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료루와 제이슨이 격려의 말을 해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했더니 기분은 좋다. 그런데 지난 며칠동안 제이슨과 료루를 보니, 박사과정 학생들인데도 배드민턴 치고, 등산하고, 나와 같이 항저우 구경도 다니고, 한국의 석ㆍ박사 학생들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너희들은 박사인데 별로 공부 안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공부를 많이 하나보다. 료루의 말을 들어보니, 제이슨은 학과에서 공부의 신(神)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지, 중국도 치열하겠지. 저장대학(浙江大学, 절강대학)은 중국 최고수준의 대학인데다가, 제이슨은 나보다 어린데 벌써 박사를 끝내가고 있으니, 시골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내가 방문했을 때 쯤, 항저우에서는 G20 준비가 한창이었다. 정상회의가 있는 동안 항저우를 비우기 위해서 휴가비를 지원하고,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모두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제이슨과 료루 모두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관련기사)


푹푹 찌는 더위와 갈증. 목이 마르지만 마시고 싶은대로 다 사 마시면 앞으로 얼마나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참자.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굵직굵직한 대나무 줄기에 숫자가 적혀있다.



등산로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보는 풍경


도교 사원 포박도원.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한 사상가이고 <포박자>의 저자인 갈홍(葛洪, 283-343)의 사당이라는데, 입장료가 있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용의 허리처럼 구불구불한 담장



좁은 골목길


들어가 앉아 과자를 까먹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쉬고 싶은 풍경이다.


분홍빛깔로 활짝 핀 연꽃


서호의 유람선들



한국에서 가져온 모자를 어디에선가 잃어버렸는데, 땅에 모자가 떨어져 있길래 주워서 쓰고 다녔다. 여행사에서 나눠주는 모자인듯 하다.



차를 파는 것 같다.


차 마실돈은 없으니 경치구경이나 하자.



현대식이면서도 기와가 예쁘게 들어간 호숫가의 집


저 멀리 호수 너머로 탑이 보인다.


누군가가 물병에 아기 물고기를 잡아놓고 물병을 버려두고 갔다. 우리가 <니모를 찾아서>를 볼 때처럼 물고기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이러지 못할텐데.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는 것 뿐만 아니라 보고, 먹이주는 것도 좋아한다.


호수 공원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 아이스크림이든 음료수든 무언가를 사먹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날씨다.


다시 호수 풍경




실제로 보면 더 멋있다.


하루종일 시간을 떼우다가 제이슨을 만나러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