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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러시아

러시아 타타르스탄 헬프엑스: 볼가 강과 인어집 (여행 47일째)

2016년 9월 3일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 공화국


[등장인물] 

보바(블라디미르): 헬프엑스(Helpx) 호스트. 일본 담배 회사 영업 사원. 올가의 남편.

올가(올렌카):헬프엑스(Helpx) 호스트. 가정 주부. 블라디미르의 아내.


1. 밥 먹을 때면 주방에 우글거리는 파리. 그리고 침실에서도 시끄럽게 웽웽거리며 달라붙는 파리. 파리가 이렇게 짜증나는 곤충일 줄이야... 수행이 부족하다. 오늘은 보바의 할머니 집이 있는 마을에 간다. 


어디가는 줄도 모르고 차에 탔다가 마을 회관의 우체국에 들러서 올가와 보바가 우체국 직원과 무언가를 하는것을 한참 기다린다. 중국의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이 러시아 시골 구석까지 배달이 온다고 한다. 소년 하나와, 소년의 누나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한 여자가 우체국에 있는데, 소년은 역시나 다른 아이들처럼 무한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낯선 외국인을 쳐다본다. 눈이 마주칠 때까지 몇 번이고 보다가, 눈이 마주쳐 씨익 웃어주면 부끄러운 듯이 미소를 짓는다. 말 못하는 갓난아이들부터 이런 아이들까지는 이렇게나 타인종에 대한 호감을 보여주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인종차별이 생겨나는 걸까. 우체국을 나오며 올가와 보바가 저 사람들 한테는 한국인을 보는게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을 본 것과 비슷할 거라고 말하며 웃는다.


2. 마치 바닷가같은 볼가 강변. 날씨가 흐려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강을 보는 것은 역시 좋다. 고깃배들이 몇몇 보인다. 강변에 차를 대고, 보바와 함께 강변의 가파른 언덕에 오른다. 견과류가 달려 있을 수도 있다고 채집 본능을 보여주는 보바. 하지만 사람들이 이미 다 따갔는지 쓸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언덕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무슨일인지 올가의 기분이 매우 안좋고 보바와 둘이서 무슨 얘기를 격하게 하다가 올가는 차로 돌아오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보바는 올가를 붙잡지 않고 나만 차에 태워서 할머니 집으로 간다. 남녀사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째서 이런 격한 감정들이 생기는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서일까?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 알리와 알리 부인이 전화 통화할 때도 그랬고, 가족은 행복을 주는 만큼 힘들기도 하구나. 너무 가까운 것은 힘들구나.


인어 장식이 들어가 있는 예쁜 집에 도착한다. 백년은 되었다는 집, 보바의 아빠가 태어났다는 집이다. 집 뒷쪽으로는 정원이 길게 펼쳐져 있다. 포도와 배를 맛보고, 좀 더 기다리니 새 차 한대가 온다. 르노 차다. 차에서 내린 정겨운 아저씨 아주머니와 인사하고 뒤따라온 트럭에서 건축 자재를 내리기 시작한다. 무식하게 많이 쌓여있던 목재와 창문틀도 왔다갔다 힘을 빼며 나르다 보니 바닥을 드러낸다. 그리고 고된 노동 뒤에는 달콤한 사과 보드카와 오이, 토마토, 치즈, 빵, 다과와 행복한 담소가 기다리고 있다. 아줌마들은 이렇게 뚱뚱해지는 한편 너그럽고 친절해진다. 모든 사람이 이런 아줌마와 같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


3. 집으로 돌아와 차고에서 보바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 이 차고에 어떻게 아이들 방을 만들건지, 내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해주고 있는지, 그리고 나중에 와서 같이 살거나 일하면 좋겠다는 얘기, 옆의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살면 된다는 얘기, 하지만 미래의 일이니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정말 착하고 편하고 좋은 친구다. 가끔 게으른 것 같을 때도 있지만 그거야 나도 그렇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선한 본성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나에게 이런 식으로 러시아에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제안해 주는 것이 과분하고 감사하다.


4. 엥엥거리는 파리 때문에 정신이 사납지만 이게 모두 모기라고 였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단지 파리라는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대체 왜 달라 붙는거지?


마을을 나와 보바의 부모님 집으로 가는길.


볼가 강변. 고깃배가 돌아와 자동차에 연결되고 있다.


강변 풍경. 우중충한 날씨다.


보바를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다.


언덕위에서 내려다본 강변. 보바의 차가 보이고(한국산), 고깃배를 차에 연결해 돌아가는 어부의 하얀 차도 보인다.


강변 마을 풍경


언덕에서 본 볼가 강


보바 부모님이 사시는 마을


보바의 할머니 집에는 인어 장식이 들어가 있다. 100년 정도 된 집이라는데 집을 지을 당시 새겨 넣은 장식일까?


뒷뜰의 창고와 빨랫줄에 널려있는 카펫


포도와 배를 따먹는다.


우중충하던 날씨가 순간 개이고 보이는 파란 하늘. 뒷뜰로 목재를 나르고 보바의 아버지는 목재를 정리하신다.


햇살이 비추니 분위기가 확 달리진 뒷뜰.


일을 마치고 나서는 맛있는 술, 간식, 차를 먹는다.


돌아오는 길의 들판.


옥수수 밭


저녁에는 밀가루 난을 부치고 그 사이에 감자 퓨레를 넣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